저자 전원경
예술비평을 전공한 저자가 시공사와 요절한 예술가 11인의 평전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의 교정을 마치면서, 이 책은 연이은 출간계획으로 서둘러 20일간 세 도시를 방문했던 목적이 뚜렷한 여행기(예술가의 거리 2016.5. 인쇄)이다. 저자의 예술비평경험을 통해 세부적으로 주제를 파고드는 지식과 글 속에 녹아있는 저자의 시각에 주목하게 된다. 런던 비엔나 파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여행했던 나의 여행시간을 잠시 추억해 보는 기회도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저자처럼 준비하지 않고 같은 여행지를 다녀온 나의 여행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방문목적지 기후에 따라 시기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숙박 잠자리와 미각을 염두에 둔 미식여행도 있다. 온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세대 간 고려해야 할 것도 많으리라. 가성비, 가심비도 만족해야 찜찜하지 않은 법이다. 부부가 함께 하는 여행이 나로서는 최선일테지만 부부간에도 취향이 썩 잘 맞는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래서 여행은 혼자 하고 싶지만 준비와 안전등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쉽지 않다. 차라리 TV에서 방영해 주는 세계테마 기행을 앉아서 보는 것도 방법 아닌가. 집 떠나면 고생인 것을 한 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니다.
여행을 하더라도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를 생각 좀 해야겠다. 나의 취향과 비슷한 이가 쓴 여행기록이야말로 계획수립에 도움이 된다. 이 책과 함께 시공사에서 출간한 시리즈 '세계로 떠나는 매혹의 예술여행'은 3권의 책으로 발간되었는데 제1권 나를 매혹시킨 화가들(박서림)과 제3권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김규원)는 유럽의 축제를 다루었다. 그들의 식견과 시각을 읽고 요약해 두어 TV를 통해서 던 실제 여행이던 알찬 여행을 떠나보자.
파리
-1806 나폴레옹 개선문 착공하다. 카페 푸케(망명작가 레마르크의 자전적 소설인 개선문 : 망명 외과의사 라비크는 자신을 고문했던 하케를 숲으로 유인하여 살해한다. 여가수 조앙과의 사랑을 나누던 시절에 등장하는 카페이다)와 샹젤리제거리
-몽마르트르의 집합 아틀리에 세탁선船 (두목 피카소, 미라보다리의 아폴리네르와 로랑생, 브랑쿠시, 자코브, 살몽, 모딜리아니)은 가난한 젊은 화가들의 이야기가 잉태되던 곳이다. 르느아르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시골풍 무도회장이 있는 포도밭 그림이다. 피갈驛앞 물랭 루주(=빨간 풍차라는 뜻, 샹송의 여왕 피아프와 이브몽땅의 사랑과 연민)
-생라자르驛 기차 증기를 그리는 모네와 마르모탕 모네미술관(해돋이-인상,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 1879, 카미유의 초상)
-몽소공원 방돔광장 성 마들렌성당
쇼팽과 연상의 남장여인 조르주 상드. 마들렌성당 1849 쇼팽 장례식에서 돌아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한 고국폴란드 흙 한 줌을 관 위에 뿌리다.
-미라보 다리와 카페 드 플로르
파리 서쪽 맨 끝 190m 녹색 철제다리로 볼품은 없지만, 미술평론가였던 아폴리네르의 보석 같은 시로 유명한 곳.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중략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머무네
-보헤미안, 카르티에라탱(라틴 구역)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서 푸치니 라보엠의 무대(내 이름은 미미) 젊고 꿈이 있는 예술가들, 삶은 언제든지 멋진 꿈으로 바뀔 수 있다.
-알록달록 빨간 입술 물총의 1983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퐁피두 센터.
비엔나
-베토벤 파스콸라티 하우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집 첫 번째 사망직후 데스마스크와 장례식직전 데스마스크가 너무 달라 악성베토벤이 아닌 진짜 불행한 인간으로 만난다. 신념을 가진 인간은 무한히 강한 존재라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베토벤은 그곳 산책길을 걸으며 전원교향곡을 썼지만 유서를 써놓은 대로 귀가 멀어있어 미카에라교회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궁핍한 생가에서는 16명의 형제가 태어났으나 11명은 어려서 죽었다.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바위 위의 목동을 캐슬린 배틀의 노래로 들을 수 있었다. 1828.11.19 죽기 전 쇼버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는 쿠퍼의 라스트 모히칸과 스파이 파일럿, 그리고 개척자들을 읽고 그의 다른 책을 빌려줄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시립공원의 숲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동상이 바이올린을 켜는 금빛으로 대리석 아치 안에 포토제닉 하고, 여름에는 매일 저녁 콘서트가 열린다. 성슈테판성당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 링 스트라쎄를 가로지르는 그의 기념관 도나우 왈츠 하우스에는 턱시도도 전시되어 있는데 1899 31세 사망 시 조문객이 10만 명이었다고 한다.https://youtube.com/watch?v=0xCIfvWrsBU&si=0HVHlLUx5RalPQkq
https://youtu.be/1hCpnXj-znk?si=pljYm1FTvB9qx3pd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
-카페 첸트랄은 1868년 오픈하였는데 높이 솟은 궁륭지붕 탓으로 웅장하다. 젊은 비엔나파 작가와 예술가들의 본거지이지만, 젊은 미술학도 히틀러, 러시아혁명을 주도한 망명정객 브론슈타인도 있었다. <카페 첸트랄의 보물>이라는 소책자에 찾은 아인슈페너는 Coffee with whipped cream served in a glass로 소개되어 있는데 비엔나커피에 해당하는 셈이다. 물 한잔도 함께 제공된다. 인근 뮤지엄 쿼터 안에는 황궁의 마구간터를 개조한 곳으로 레오폴트 미술관 등이 있고 광장에 자리 잡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동상 건너편으로 미술사,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제체시온 베토벤프리체
도시전체가 모차르트와 클림트 일색인 듯한데 벨베데레 상궁과 제첸시온이 더욱 그렇다. 클림트가 초대회장을 맡은 비엔나분리파의 건물이 제첸시온이다. 이슬람사원에 사 건축물의 모티프를 따와 황금빛 돔을 머리에 얹고 있다. 건물 외벽에 베르 사크룸(성스러운 봄)이 적혀있다. 이 말은 분리파의 회지 타이틀이기도 하다.
로댕이 격찬한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체>는 3면에 둘러싸여 있다. 1902년 클림트는 분리파 21명과 함께 베토벤을 주제로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베토벤 프리체는 교향곡 9번 4악장을 묘사한 작품이다. 1,2,3부가 나뉘어 있는데 잠언 같은 소주제 즉 행복을 위한 도전, 나약한 인간성의 고통, 자비와 야망, 적대적인 힘, 시인, 갈색의 괴물과 메두사의 자매인 고르곤으로 시작된 벽화는 오른쪽으로 흘러가며 활기차고 밝게 변화하여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으로 끝난다.
https://youtu.be/ulksSxfi8es?si=Lc_CXK37uNsG3LxO
런던
-글로브극장 1599년 문을 연 원형노천극장은 청교도혁명을 일으킨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1642녀 폐쇄되었다가 1996 재개관하였다.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있던 딸의 추천으로 2층발코니에서 연극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다가 졸았던 추억이 새롭다. 극장 페리 선착장을 통해 연극을 보러 오는 데 2000년 지은 보행자 전용 밀레니엄 브리지와 마주한 테이트모던은 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테이트 브리튼의 분관으로 피카소 달리 마그리트 로스코 등 컬렉션 수준이 대단하다.
-키츠하우스는 <나이팅게일에게>의 시인 존 키츠가 살았던 두 집이 하나로 붙어있는 세미디테치드이다. 옆집에 이사 온 18살 패니와 나비처럼 딱 사흘만 살았으면 좋겠다던 편지를 남긴 채 폐결핵으로 25세 요절했다. 헬렌켈러도 사흘만 눈을 뜰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떠올랐다. 키츠는 1820.2.3 런던에서 늦은 밤 햄스테드까지 마차삯을 아끼기 위해 합승마차의 2층 노천좌석에서 찬바람으로 귀가한 날 각혈하였고, 폐결핵으로 죽은 동생을 간호했던 경험으로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인근 조지안양식의 근사한 저택 켄우드하우스는 미술관 영화 노팅힐촬영지이다.
-셜록홈스박물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와 왓슨은 1881~1904까지 베이커 가 221b번지에 살았다고 했지만 실제 주소는 없고 창작이었는데도 1990년 오픈한 박물관을 매년 150만 관광객이 방문한다.
120년 전 런던 속 작품의 묘사내용은 현재에도 지명이 그대로인 듯 마차대신 택시로 바꾸어도
똑같다. 얼룩끈의 비밀, 배스커빌의 개는 대표작이며, 첫 장편인 주홍색 연구, 공포의 계곡은 미국 몰몬 교도와 서부의 무법천지를 다루었는데 영국인의 시각을 드러낸다
-헨델하우스 박물관도 하얀 집과 벽돌집으로 된 세미디테치드 하우스로 브룩 가에 있다. 독일 하노버태생이지만 1727년 영국에 귀화했고 웨스터민스터 성당에 묻혔다. 21일 만에 완성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할렐루야 코러스에서 조지 2세가 벌떡 일어나 들었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1865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조끼를 입은 토끼가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보기도 하면서 사라지는 토끼굴을 따라 들어가는 앨리스의 환상적인 모험이야기다. 필명 루이스 캐럴인데 수학교수인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교수의 철자를 바꾸어 만든 이름이다. 브론데 자매들이 필명을 남자이름으로 쓰면서 B를 성으로 쓴 일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크라이스트 처치칼리지에서 평생을 학생 강사 교수로 지내며 학장의 딸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도지슨 교수의 초상이 있는 그레이트 홀에는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식당으로 등장한다.
-케임브리지 뉴넘칼리지 오차드
장편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쓴 울프의 시대에는 케임브리지 대학 청강생 신분이었다. 800년 전통의 캐임브리지에서 여성 졸업생을 배출한 것은 1948년부터 시작되어 뉴넘칼리지는 여성전용대학이 되었다.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공간과 년 500파운드의 고정수입이 있어야 한다. 여성의 경제력은 참정권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정신질환에 유명작가로서 긴장감까지 견디기 어려웠던 울프는 양쪽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우즈강에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창작이 멈추어질 때 예술가는 살아있는 기분마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