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오빠
우리 오빠는 금쪽이다. 아빠와 엄마의 어긋난 부부관계 그리고 아빠의 훈육을 빙자한 폭력이 낳은 금쪽이다. 결과적인 오빠의 모습을 보곤 사람들은 버릇없다고도 얘기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모두 눈으로 봐온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40살이 되도록 건강한 연애를 해보지 못한 오빠가 안쓰럽다. 오빠는 다행히 번듯하게 직장 생활은 잘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연약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 허세가 가득하다. 좋은 차, 멋진 옷차림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급급하다. 해가 갈수록 오빠의 포장지가 두터워 지는게 보여서 한 켠으론 걱정된다. '외면과 내면이 불일치하면 그 괴리 때문에 더 힘들텐데'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나에게 불안한 어린 시절을 선사한 오빠가 죽도록 미웠는데 누구보다 공허한 성년의 오빠를 보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오빠는 여전히 아빠와 갈등 중이고, 할머니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오빠가 증오하는 대상의 공통점은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점이다. 오빠는 엄마를 힘들게 한 악당같은 두 사람을 꾸짖고 혼내는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가장 비극적인 건 앙갚음을 보며 통쾌함을 느껴야 할 엄마는 후련해 하기는커녕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지속되는 갈등을 곁에서 보다가 얻은 병이다. 진단을 받진 않았어도 엄마가 느끼는 손발저림, 어지러움 등의 증상은 불안장애가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 잘 크지 못한 금쪽이 오빠는 엄마를 더욱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금쪽이 오빠 밑에서 자란 나는 사실 상담사가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놀이로 치유하는 상담사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오빠를 헤아려주고 싶은 무의식이 여기까지 이끈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을 도통 이해 못하는 부모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머리를 한 대 콕 쥐어박아서라도 부모를 혼내주고 싶다. 흔히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자식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부모도 많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그저 자신의 위신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부모, 자식의 안녕보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한 부모, 자식을 낳아 평범의 범주에 소속되고자 했을 뿐 자식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부모 등 나쁜 부모도 많다. 아이들을 상담하고 부모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 건 어쩌면 상처받는 나의 오빠를 위로하기 위한 승화의 과정이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