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검색 최적화나 트렌드 따위 상관없이 나만의 실험과 감정을 기록하던 시간. 어찌 날것을 나눠도 다 될것 같은 편안한 공간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브런치를 한창 재미있게 사용하던 2020-22년 사이 나는 세 아이의 출산과 육아, 퇴사와 프리랜서 전향, 사업 도전 다양한 인생의 변곡점에 서있었다. 가장 큰 변화인, 회사를 그만두면서 동료=친구였던 세계를 벗어나, 마음과 상황을 깊이 나눌 상대가 없었는데 그때 딱 브런치 라는 공간을 나의 대나무숲처럼 이용했던 것 같다.
지난 3년간 내가 기록하는 공간은 브런치에서 블로그로 이동했다. 주로 기획하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로서 일의 궤적을 기록하고, 일적 영감을 보기 좋게 담아, 니즈가 있는 사용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로 쓰는 곳이다. 그렇기에 딱히 나의 감정이나 그때 그때의 분위기를 담을 일이 없게 됐다. 다행히 그 사이 나는 프리랜서지만 컨설팅펌 그룹에 참여하게되면서 동료들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생기고, '일'이라는 (이제야 깨달은) 나의 벗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살고있다. 퇴사 후 몇 달은 이제 영영 일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여러 실험을 거친 끝에 나는 일을 통해, 배우고 좌절하고 성장하며 효능감을 느끼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이 70이 되어도, 나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객관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일의 영역을 펼치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그리게 되었다.
어릴적부터 끄적이는 일을 참 좋아했던 나인데, 나다운 글쓰기는 오랜만이다. 물론 지난 3년간 블로그 글쓰기만큼은 매주 2-3번은 하려 노력했다. 블로깅은 일감 따기 바쁜 프리워커의 낚시대 같은 존재인데 그것도 글쓰기라 할 수 있을까? 영업하려고 쓰는 글에 나의 무드나 진짜 생각을 가득 담았을리는 만무하다. 그건 고수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정서가 투영된 글이 진짜 글이라면 나는 그간 전혀 글을 쓰지 않은 셈이다. 가뜩이나 지식이 가장 싼 요즘같은 AI시대에 쓸모없는 글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느라 글을 쓰는 것보다 생각을 기획하는 일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글쓰기는 내가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다듬어야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게을리 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자유롭게 글을 쓰던 그때가 문득 생각난다 나의 감정, 흐름.. 누가 나의 기승전결이 후지다고 흉볼까 보고 또 보는 글 말고. 그냥 독백하는 글 말이다. 지금처럼 줄 글로 기록해가는 나의 글. 그런 글을 쓰는 일은 상상속 너른 바다에 몸을 맡기고 마치 유영하는, 실제 나와 다른 수영천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과거의 글의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가 애쓴 것들, 방황하고 휩쓸렸던 한때의 나의 조각들이 다가온다. 그게 참 반갑다. 그래서 나다운 글쓰기도 인생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확신이 든다.
재작년부턴가. 애매한 프리가 되느니 안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프리랜서로 스스로 당당한 수준이 아니면 좌초된다 나를 겁박했다. 나를 위한건지, 동인으로 만들어낸건지, 사실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그러했다.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내 의사결정에 대한 일말의 후회. 사실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나를 설득하고 싶었다. 내 결정엔 문제가 없었다고- 그걸 증명하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나보다.
최소 내 두 발로, 내 이름 석자로 일을 따고 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의 크기를 떠나 나로서는 일적 독립을 이뤄낸 나름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겉에는 그럴듯해보여도 마음 쓸리는 일도, 밤사이 문득 떠올라 싱숭생숭한 장면이 없었을리 없지만. 괴로운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질때 나름의 리추얼을 만들었다. 까무룩 잠든 다섯살 둥이들의 작은 발을 만지는 것. 한 없이 작은 두발이 더듬을때 그 어떤 상황에도 다행인 건, 아이들이 우리 곁에서 잘 자라고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가장 소중한 존재- 내 아이들에게 지금 이시점 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고, 그런 나를 온화하게 지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곧 아이들에게 최최최ㅡ최선임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매순간 내가 인지하는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2025년 9월 2일, 늦여름 화요일 오전이다. 아이들을 셔틀에 보내고 방에는 줌회의를 하고 있는 동갑내기 내 남편, 나는 거실 내 나름의 워크스테이션에서 커피한잔을 두고 쓰고 있다. 다음주에 진행할 마케팅 강의안도 준비해야하고, 그 다음주 워크샵 컨텐츠도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은 한가롭다. 물론 일감이 적어서 한가한것도 있지만, 또 새롭게 무언가 준비할 여유가 생기는 설레임 그게 좋다. 공상과 기획이 취미고 재능이니 감사하다. 사실 그보다 더 설레이는 건, 내일은 공들여 주문한 슈로스바 스탠드형이 설치된다. 한달은 가지고 싶어서 꼼냥 대던, 드디어 집에서 만나게 된다. 뭐 사고 설레긴 오랜만이다. 아이들 낳고 아껴쓰느라 사치할만한 소비는 이번이 처음인듯 하다. 훗날 빨래대가 되어 있지 말기를 바라며... 미래의 나님이 이 글을 봐야할텐데.
여기까지만 놀고, 이제 일 해야겠다.
감사한 2025년 마지막 여름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