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퉁이에서 만난 고전의 문장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모퉁이를 돌 때 내게 다가와 주는 고전들'이라는
표지의 문구에서 전해지는 애정이 반가워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마음이 분주해졌다.
정보가 넘쳐나고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대신 결정해 주는 시대에,
굳이 오래된 책들을 들춰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 책은 명확히 말해준다.
삶의 모퉁이를 돌다 문득 벽에 부딪혔을 때,
혹은 마음이 힘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이겨낸 단단한 생각의 힘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곁에 숨 쉬는 일상의 이야기
"이쪽에도 저쪽에도 마음을 둘 수 없을 때, 생각에 무게추를 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다. 그럴 땐 오래된 책일수록 좋다. 최소한 10년은 된 책, 때로는 2천 년도 더 된 책. 긴 시간 수많은 승객이 지나친(내리지 않고 그저 지나기만 한 승객이 훨씬 많은) 오래된 기차역 같은 책들 앞에서, 나는 지나가는 여행자가 된다. 그 역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에 마음을 잠시 빼앗기고, 이름 붙여본 적 없는 무언자가 조금은 채워진 채 나는 다음 기차에 올라 다음 역으로 떠난다." -p.14
이 문장처럼 작가는 고전을 낡은 유물이 아닌, 지금 우리 곁에 숨 쉬는 일상의 이야기로 전한다.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어느 날 이 책이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들려주는 방식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특히 작가는 『오셀로』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손절해야 할 사람'에 대한 흥미로운 시선을 던진다.
비극적인 고전을 읽으며 인간관계의 기술을 떠올리는 이런 접근을 보면,
아마 셰익스피어가 무덤에서 돌아누울지도 모르겠다는 재치 있는 표현에 웃음이 터졌다.
작가는 유일하게 손절하는 유형으로 『오셀로』의 '이아고' 같은 사람을 꼽는다.
타인의 불신이나 불안을 교묘하게 조장하여 관계를 망가뜨리는 사람.
고전을 단순히 문학적 성취로만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내 곁의 사람을 거르는 눈으로 연결하는 저자의 방식은
고전을 살아있는 지혜이자 삶의 이야기로 전달한다.
사실 고전에 대한 화두가 잘난 척이나 배운 척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작가도 알고 있다.
"허영이면 어떤가, 그 안에 즐거움이 있는걸. 허영심이 없었다면 나는 고전소설을 읽기 위한 노력을 훨씬 덜 기울였으리라고 확신한다." -p.9
나와 같은 마음을 담은 이 솔직한 고백에 마음이 깊이 동한다.
읽기의 세계는 단번에 열리지 않는다.
시간을 들이고 반복하며 비로소 문학이 품은 오래된 숨결에 닿게 된다.
작가는 고전을 읽을 때 창작자의 삶이 얼마나 롤러코스터 같았는지 생각한다고 한다.
과거의 기록이자 현재를 비추는 거울
"항상 좋았던 삶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비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사람의 특징을 만들어낸다. ‘매일’이라는 물방울을 떨어뜨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돌덩이를 다스려보려 한 사람들을 보는 일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잘 살게 한다. 정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정답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p.9
이 문장을 읽으며 고전은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나를 비추는 거울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마음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오래된 이야기들,
성장통을 겪는 동안 잠시 기대 쉴 수 있었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묵직한 무게추가 달리는 기분이다.
특히 한 권의 고전을 음악이나 영화, 산책, 그림 같은 일상의 장면과 연결하는 저자의 다정한 시선 덕분에
독서가 종이 위의 활자를 넘어 삶의 연장선으로 기분 좋게 다가온다.
평소 이다혜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이번 책은 문학뿐만 아니라 만화와 자기계발서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넓은 시선이 고전의 문턱을 낮춰주어 더욱 반갑다.
어린 시절 숙제처럼 읽었던 문장들이 마흔이 넘어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들이 이제야 내 삶과 겹쳐지는 기분이다.
장바구니에 고전을 담게 만드는 마법
누군가에게 고전은 여전히 어렵고 지루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다정한 책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장바구니에 고전 몇 권을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곁에 두고 삶이 흔들릴 때마다 한 장씩 아껴 읽고 싶은,
따뜻하고 든든한 책.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