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도 ‘백촌막국수’ 같은 공간이 있나요?
의사 출신 저널리스트 박재영 작가가 오랜 시간 발로 뛰며 건져 올린 맛집 이야기다. 이 책은 단순히 어디가 맛있다는 식의 식당 소개서가 아니다. 저자가 사랑하는 공간에 얽힌 내밀한 에피소드부터 맛집이 가지는 사회학적 고찰까지, 그야말로 한 미식가의 지적 탐험기가 꽉꽉 눌러 담겨 있다.
나에게도 맛집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을 아기띠에 안고 비장하게 남편과 줄을 서며, 1시간 이상을 기다려 밥을 먹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육아에 지쳐 인생의 낙이 없던 시절, 그저 맛있는 것이라도 입에 넣고 싶었던 절박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먹는 데 도통 흥미가 없어 빨리 가자고 보채는 아이들과의 맛집 탐방은 내게 육아의 고충만을 얹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맛집의 맛도 결국 '거기서 거기'로 느껴졌다. 너무 빨리 미식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싶지만, 이것은 필시 육아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남편과 뜻이 맞는 맛집이 하나 있다. 바로 강원도 고성의 백촌막국수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할 때부터 매주 속초와 강릉을 드나들며 놓치지 않고 들렀던 곳이다.
테이블링 서비스도 없던 시절, 한 시간 반 넘게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어두고 근처 동광산업과학고 운동장에서 아이들 킥보드를 태우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선하다. 남편과 나는 수육과 막국수를 먹고 아이들에게는 이유식이나 맨밥을 먹였었는데, 이제는 네 가족이 당당하게 막국수 네 그릇에 수육 대자를 시켜 먹는다. 2017년부터 10년째 이어온 우리 가족만의 미식의 역사다.
맛집 하나를 더 알게 되는 것은 삶의 범위가 그만큼 확장되는 일이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족스러운 식사 한 끼를 함께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두께가 조금은 두꺼워지는 일이다. - p.68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리고 (작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기쁜 일이 생겼을 때이기 때문이다. - p.162
대부분 음식점은, 우리의 인생처럼 사실 거기서 거기다. 모두가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진심이 있고 매력이 있다. 진짜 행복은 평범함에서 온다고 하지 않나. - p.170
이 책은 가벼운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아무튼’ 시리즈 특유의 결을 잘 살리고 있다. 시니컬한 블랙 유머와 작가의 당당한 에고가 곳곳에서 묻어나, 읽고 나면 나만의 맛집 지도를 다시 그려보고 싶어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아무튼 시리즈를 개인적으로 좋아해 많이 읽어봤지만, 이 책은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에게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족과의 추억이 떠올라 고양된 행복감을 주는, 그런 인생 맛집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 덧붙이는 사심
아무튼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나도 한 권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술, 아이돌, 떡볶이... 나의 흥미 분야는 이미 다 선수(?)를 뺏겼지만, 가만 보니 <아무튼, 여행>이나 <아무튼, 필사>, <아무튼, 육아>, <아무튼, 교사>, <아무튼, N잡>은 아직 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편집자님들, 저 여기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일단 일 더 벌이지 말고, 밀려 있는 원고부터 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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