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헛딛고 패배해도 끝내 무언가 만드는 삶
예전에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를 읽으며 나는 소름 돋을 만큼의 동질감을 느꼈다. 누가 "뭐 먹으러 갈까?" 물을 때 0.1초 만에 떡볶이를 떠올리는 본능, 신라호텔 코스 요리보다 3천 원짜리 시장 떡볶이를 같이 맛있게 먹어줄 남자가 좋다고 했다가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았던 기억. 자유부인이 되어서도 근사한 브런치 대신 떡볶이집을 찾는 나의 '떡볶이 외길 인생'이 그녀의 문장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진부할 수 있는 떡볶이라는 소재로 어쩜 이렇게 신선하고 다정하게 글을 쓸까 감탄하며, "다음 끼니는 무조건 떡볶이다!"를 외치게 했던 그녀. 그런 요조가 이번에는 조금 더 깊고 단단해진 목소리로, 하지만 여전한 위트를 담아 펴낸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산문집을 읽었다.
이번 책의 제목인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은 곧 예술가를 지칭한다. 싱어송라이터로서 곡이 써지지 않아 겁이 난다고 나직하게 고백하면서도, 그녀는 결국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애정이 클수록, 마음이 깊을수록 우리는 더 자주 발을 헛딛고 패배한다. 하지만 예술가는 그 실패의 자리에서 기어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 마치 떡볶이 국물에 삶은 계란을 으깨어 '쉐킷쉐킷' 비벼 먹으며 오늘의 허기를 달래듯, 그녀는 삶의 실패들을 버무려 근사한 문장과 노래로 재탄생시킨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창조해 내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그녀의 문장을 통해 배운다.
전작에서 보여준 떡볶이 덕후의 면모가 귀엽고 친근했다면, 이번 책에서의 요조는 훨씬 깊은 시선을 보여준다. 사고로 떠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억지로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그 슬픔을 하나의 필터 삼아 세상을 바라보기로 한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또한 제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만난 세상의 부조리, 거리 위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얼굴 좀 펴"라고 쉽게 말하는 대신, 무엇이 그들의 얼굴을 구겨지게 만들었는지 묻는 태도. '나'라는 좁은 세계를 넘어 타인과 사회의 아픔 곁에 기꺼이 서고자 하는 그녀의 성장은 읽는 내내 든든한 위로가 된다. 다정함이란 결국 타인의 구겨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봐 주는 마음이 아닐까.
이제 그녀는 예술가가 나약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영양제를 챙겨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삶의 근육을 키운다.
"나는 그 틈에 조용히 서서 여기까지 올라온 태도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모든 걸 이렇게 하자. 책방도 음악도 글도, 내 나머지 인생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이렇게 하자.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눈을 오랫동안 꾹 감았다." (p.157)
이 문장을 읽으며 작가인 나를 가만히 돌아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 번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성실함'과 '유연함'일 것이다. 무리해서 허벅지가 터질 듯 달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숨을 고르며 끝까지 걸어가는 태도. 그것이 내가 지향해야 할 지점임을 깨닫는다.
"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내면서 살고 싶다." (p.114)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나서 곧장 떡볶이를 먹으러 달려갔던 것처럼, 이 책을 덮고 나서는 나의 '실패'들을 조금 더 사랑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오늘 저녁은 떡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