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의 내가 꿈꿨던 집
얼마 전 아들 딸 모두를 분가시킨 부모님은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며 가까운 곳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엄마는 인터넷의 힘을 빌려 텃밭에 이것저것 심고 재배하며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보내고 강아지가 흙을 밟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계속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집 관리나 편의사항에 대해서는 불편투성이였을 텐데 엄마는 삶에 더 만족하는 것 같았다. 마당에 나가 풀을 뽑고 밭에서 재배한 파, 고추, 깻잎 등을 이웃 사람들과 나누며 성취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엄마는 '어디서' 살아야 할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을 뒤늦게 얻은 것 같았다.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의 두 저자들처럼.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은 건축가 이울훈과 건축주인 국어 교사 송승훈이 경기도 남양주에 한옥 '잔서완석루'를 함께 지으며 나눈 이메일을 엮은 책이다.
"이일훈 선생님, 선생님과 집을 짓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송승훈 선생님. 그럼 제가 질문 하나 할까요?"
그런데 이 뒤에 이어지는 질문을 내 예상을 완전히 비껴 나간다.
송 선생님은 어떤 집을. 꿈. 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아마도 나라면 "발코니 확장을 한 30평대 넓이에 방 네 개 정도는 있어야 해요. 한강이나 탄천을 끼고 있어 언제든 산책을 나갈 수 있으면서 교통도 편리한 곳을 선호하고요. 방에서 엘리베이터를 부를 수 있거나 주차장 위치를 감지하는 첨단 시설이 구비되어 있으며 이왕이면 최근에 지은 브랜드 아파트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지금은 저평가되었지만 앞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나중에 팔 때 이익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송승훈 건축주는 어떤 집을 꿈꾸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구름배 같은 집이고 싶습니다.
땅의 바람길을 아는 집이면 좋겠습니다.
진짜 환상의 콤비다. 비용은 묻지 않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라고 묻는 로맨틱한 건축가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구름이 머무는 절' 이란 의미로 등장한 운주사雲舟寺를 인용하는 이상적인 건축주. 첫 장부터 이런 대화가 툭 튀어나오니 좀 당황스럽지만 신선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이 지은 집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지금은 교육과정에서 사라진 실과 시간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구상하여 우드락으로 모형을 만든 적이 있다. 건축에는 관심도 없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에게는 집에 대한 확고한 주관이 있었다. 없는 손재주로 설계 도면을 그리고 설계에 맞게 우드락을 자르고(바닥에 대고 칼질을 하다 장판까지 자르는 바람에 엄마한테 엄청 혼나기도) 본드로 붙여 며칠 만에 완성한 집은 2층으로 된 전원주택이었다. 1층에는 10명 정도가 쓸 수 있는 긴 식탁을 놓고, 2층은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통유리 창을 설치했으며 거실 전체를 서재로 만들었다. 책과 삶이 어우러진 공간이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생각한 미래의 집이었던 것이다. 지금 꿈꾸는 집과는 전혀 반대인 셈이다.
인테리어와 관련된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들어가며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 놓은 집들을 볼 수 있다. "진짜 예뻐요." 하고 댓글을 달면서 판매처나 견적에 대해 묻기도 하고, 나 또한 신혼집을 능력껏 꾸민 후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평소 동경하는 스타일의 집이 나오면 '나도 저렇게 꾸며야지'라는 생각에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폴더를 따로 만들어 저장하기까지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 분위기는 이웃에 위세 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비웃음과 풍자가 진보성을 가졌지만, 지금은 온통 세상에 비웃음 천지여서 너무 많은 비웃음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때로 우리의 꿈을 맥 풀리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시대가 비웃음의 과잉이라 보고, 작은 실천이라도 감싸 안는 따뜻한 손길이 구원의 동아줄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싫어하는 말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예 하지 말아라' 입니다. 제 삶의 기치는 '대충 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입니다. 각자 힘닿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서로 그것을 북돋아 줄 때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p.30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의 비범한 건축가와 이상적인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집은 고급스럽고 모던하며 넓어 보이는 집, 즉 100%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집'이었는데, 이 책에서 건축주는 이웃에 위세 부리지 않는 집을 원한단다. 주변 집보다 우리 집이 훨씬 좋아보였으면 하는 게 사람 마음인데 주변을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진짜 이상적인 사람이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900일 동안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이메일을 읽을수록, 내가 원했던 삶의 방식이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다. 허영심만 번지르르 흐르고 있었으니, 나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 책 덕분에 '집'과 '집을 짓는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가 제시한 도면에 건축주가 "이대로 합시다."라며 계약서에 서명한다고 집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집에서 살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살지'를 충분히 고민해야 진짜 나에게 맞는 집을 지을 수 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모리 교수가 제자들에게 전하는 말을 새겨듣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얻을 수 있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그 절반은 자고 있는 것과 같지.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p.92
나는 향이 좋은 커피 한 잔을 들고 거실의 넓은 창을 통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앞마당의 넓은 테이블에서 살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곳. 일상에 쫓기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삶.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그런 모습이다.
+ 얼마 전, 독서포럼에서 송승훈 선생님을 만나뵙고 이 책에 사인을 받았어요!
발표 준비보다 더 떨린 게 송승훈 선생님을 만나뵙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