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마음을 지켜 나간다면 그 또한 충분히 자기 삶이 될 수 있어!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야구부로 유명한 고등학교라 선수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교실보다 운동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운동의 성적과 기록에 하루하루가 흔들리는 아이들이다. 그중에는 부상으로 갑자기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아이들도 있고, 끝까지 버텨 보지만 결국 고3이 되어서야 ‘이제는 안 될 것 같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리고 멈추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교실 한편에 앉아 있던 그 아이들이 자꾸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슬로프 앞에 선 우희처럼, 더 이상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고민했을 아이들 말이다. 좋아했던 것이 삶의 전부였던 시간 이후에, 다시 자신을 어떻게 불러 세워야 할지 몰라 힘들었을 마음까지도.
이 소설은 대한민국 알파인 스키의 유망주였던 우희가 경기 중 불의의 사고로 시력의 80퍼센트를 잃게 되며 시작된다. 스키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던 우희는 시각 장애인 선수가 되어 '대한민국 최초 알파인 스키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시즌을 앞두고 중요한 존재인 가이드 러너를 구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순간 라이벌이자 지금은 선수의 자리를 내려놓은 또 한 명의 천재 스키 선수 예리가 가이드 러너로 다시 나타난다. 한때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던 두 사람은 사고 이후 전혀 다른 위치에 서게 된다. 우희는 ‘보이지 않게 된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예리는 ‘선수가 아닌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은 여전히 같은 설원을 향해 나아가지만,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달릴 수는 없다. 이 소설은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좋아했던 것이 더 이상 예전처럼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지금은 빨리 타는 게 아니라 같이 타는 게 중요해, 알았지?" -p.42
우희는 남아 있는 시력마저 잃을까 두려워하고, 예리는 선수의 자리를 내려온 이후의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슬로프에서 우희는 오직 예리의 목소리만을 믿고 몸을 던진다.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서지만, 혼자서는 끝내 해내지 못했던 일이 서로의 손을 잡는 순간 가능해진다. 이 소설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속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두려움을 공유하고 용기를 얻는 일에 가깝다. 우희는 좌절을 독으로 방치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에너지로 바꾸는 법을 배우고, 예리가 곁에 있기에 넘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예리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나서 달리면 되니까.
"사고 났을 때, 뭐가 제일 힘들었는 줄 알아? 꿈이 사라졌다는 거였어. 눈이 안 보인다는 거보다 그게 더 미치겠더라고. 내 인생이 거기서 끝난 거 같아서." -p.121
‘활강’은 멈추지 않고 설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려오는 스키 방식이다. 속도나 방향을 얼마나 능숙하게 조절하느냐보다, 균형을 잃지 않은 채 끝까지 내려가겠다는 결심이 더 중요한 방식이다. 한 번 내려가기 시작하면 중간에 쉽게 멈출 수 없고,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끝까지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활강>이라는 제목이 이 소설과 참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우희의 삶도, 예리의 삶도 결국 활강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희는 스키를 내려놓지 않기로 선택했고, 예리는 선수라는 자리를 내려놓았지만 가이드 러너라는 새로운 위치에서 다시 설원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방식과 역할은 달라졌지만, 내려가겠다는 결심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해도, 바람이 거세도 지금의 나로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까지 내려온다면, 좋아했던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그 또한 충분히 자기 삶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얼마나 보이는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관심도 없지?”
정곡을 찔렸는지 강예리가 조용하다.
“너 없이도 혼자 학교 잘만 다녔어. 적응 잘하고 있는 사람 괜히 들쑤시지 말고 나한테 신경 꺼. 그딴 동정 하나도 안 고마우니까.”
“야, 그건 동정이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은 도움 주는 거, 그게 동정이야.” -p.64
우희와 예리는 같은 슬로프 위에 서 있지만 전혀 다른 불안을 안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자각, 그리고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말들에 대한 예민함은 분노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깝다.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되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정체성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 잘해 왔던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버티게 해 온 기준이 분명했던 사람일수록 이 감정은 더 선명할 수밖에 없다.
“예리야…… 나 아무것도 안 보여.”
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연신 내 등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괜찮은 게 없는데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그 말을 뱉는 예리도 듣고 있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예리의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p.117
해결책도 조언도 없이 그저 옆에 서서 함께 숨을 고르는 순간.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건네는 ‘괜찮아’라는 말은 우희에게 다시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지지가 된다. 라이벌었던 두 사람은 이 순간을 통해 서로를 밀어내거나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동료가 된다.
그리고 슬로프가 아닌 일상의 삶에서도 우리에게 이 '괜찮아'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당장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해도 지금의 나를 설명할 언어가 없어도 나를 응원해줄 누군가가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다.
"나는 선택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에 대비하느라 움츠러드느니, 불행이 찾아와도 아쉽지 않을 오늘을 살겠다고. 원치 않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패럴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금메달을 따지 못할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감히 상상도 못할 큰 불행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또 일어서면 되니까. 내 곁에는 기꺼이 나와 함께 그 도전을 이어나갈 든든한 동료가 있으니까. 몇 번을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일어서서 다시 또 꿈을 꿀 테니까. -p.176
삶은 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순간들을 이미 여러 번 지나왔고 상처 받고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단단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일들이 생기면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한참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직 그런 마음의 근육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멈춘 이후의 시간이 더 막막할 수밖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수밖에.
하지만 우희와 예리가 자신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성장을 바라보며, 그 흔들림에서도 자신의 좋아했던 마음에서 완전히 내려오지 않으면 조금 방향이나 속도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내 삶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흔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시 잘 달리라는 말 대신, 또 한 때 전부를 걸고 실패하거나 멈춰서서 자신이 좋아했던 무언가를 내려놓아 상처를 안고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내려와도 괜찮다고. 그 또한 충분히 자기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