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슬럼프, 여행 슬럼프, 업무 슬럼프,.... 종류는 많다.
슬럼프.
말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고구마를 먹은 거처럼 답답스러워지는 그런 단어가 있다. 슬럼프가 바로 그것이다. 우울증이라고 말하면 너무 크고, 무섭고, 슬럼프라고 말하면 아. 다들 겪는 그것이기에 가볍긴 한데 느낌은 마치 365일 동안 슬럼프인 것 같은 느낌 같지 않은 느낌이라서 뭐 거시기스럽긴 합니다만.
슬럼프 극복의 방법은 무엇인가.
연애 슬럼프도 온 것 같고. (그 인간 얼굴을 봤는데 뭔가 짜증스러움)
여행 슬럼프는 언제나 있고. (그 무엇이든 대단한 것을 보아도 그냥 감흥이 없음)
업무 슬럼프는 태어났을 때부터 (.. 응?)
그러나 짝꿍은 슬럼프가 뭐임? 먹는 거임? 이런 표정을 하고,
맨날 너무나 신나게 하루를 맞이하시고-
너무나 신나게 일을 항상 해서-
짜증이 났다.
그렇다. 나의 이 눅눅하고 쳐지는 이 상태를 이해할 수 없으니 당연히 짜증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몰아세우듯 물어보았다. 넌 슬럼프가 없느냐!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그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편집하고, 올리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
나의 슬럼프 극복의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없다.
없고, 다만 나의 리액션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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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럼프가 온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거부한다.
뭔가 오래 앉아서 일을 해보겠다고 끄적끄적, 아우성을 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뭔가 일이 된다고 나 자신에 주문을 건다. 된다 된다 된다를 외치고. 동기부여가 잘되는 영상 이런 거를 나도 모르게 찾아서 보면서 힘을 내려고 한다. 노동요도 신나고, 막 마감에 쫓기는 듯한 그런 걸 들으면서 잠시 버프를 먹는다.
2. 안된다. 난 역시 쓰레기야 하면서 그냥 다 포기함.
버프는 대략 1-2일을 버티고 그냥 뻗는다. 하기가 싫다. 재밌는 것도 안 보인다. 왜 사냐 싶고 그냥 받아들인다. 자책 모드로 바로 돌입하여 자기반성의 일기 같은걸 써보기도 하고, 친한 친구에게 괜스레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만약 그 사람도 뭔가 일을 잘 안 하는 것 같고, 나랑 비슷한 상황이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반대의 케이스라면 전화를 짧게 끝낸다.)
3. 바닥을 찍는다.
이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 다른데, 주로 짝꿍한테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들입다 성질을 내면서 소리소리를 질러서 싸운다거나, 아니면 어디론가 휭- 사라져서 카페 같은 곳에 처박혀서 일도 안 하고 멍하게 클릭질을 한다거나, 안 하던 게임을 다운로드하여서 6-8시간 열심히 게임을 한다거나, 미드를 정주행 한다거나, 술을 급 드링킹 한다거나, 여하튼 이상한 행동을 한다.
4.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3번의 행동은 항상 뭔가 죄책감을 주는 행동이므로 특히 타격이 크면 클수록 거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바로 성실하고 착한 어린이로 돌아와 정상적인 패턴으로 돌아간다. 3번의 행위가 무엇이냐에 따라 슬럼프가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다. 거대한 사고를 쳤을 경우, 아 슬럼프고 뭐고 으악 하면서 바로 정상적인 착한 어린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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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포인트는 내가 보기에 3번의 사고를 그나마 생산적이고 정상적인 범위에서 쳐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인 이상 그게 되는가. 괜히 바닥을 찍는다는 표현이 나오겠는가. 뭐 이때 생산적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거나 이러면 차암- 좋겠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못하고, 그냥 매우 성격이 괴랄스러워지기만 한다.
운동을 한다거나, 나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준다거나, 이딴 해결책들을 들어보았지만, 그렇게 잘 된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쓰겠소- 저 위의 쓰레기 사이클을 몇 번 돌리다 보니, 현실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1. 그나마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자.
괜히 짝꿍한테 쏟아붓지 말자. 그러다 짝꿍 도망가면 큰일 남.
2. 그리고 건강에 해를 끼치지 말자.
너무 열심히 게임을 하면 눈이 아프다. 허리도 아프다. 건강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노노.
위의 두 가지가 아닌 괴랄스러우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행위들은 다음과 같다.
- 갑자기 물건 정리를 겁나 열심히 한다. 필요 없는 거 다 버려버린다. 버리고 나서 후회한다.
- 쇼핑을 한다. 이쁘지만 사실 필요 없는걸 갑자기 덜컥 지른다. 사고 나서 후회한다.
- 마감이 바로 코앞에 있는 일, 중요한 일을 안 하고, 그냥 당기는 일, 하고 싶었던 일을 막 제멋대로 해버린다. 지금 브런치 글을 쓰는 것처럼. (!?!?!?!?)
근데 이럴 때일수록 글빨이 잘 오르는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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