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최근 몇 년간 인생 반추
이러한 연말정산류의 글은 처음 써본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른 새해를 기다리는" 행위를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연말이라는 것은, 남들이 하도 난리를 치니까 나도 덩달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속으로 엄청나게 투덜거리면서 카운트 다운을 하고 열두 시 종을 땡 치면 냉큼 집으로 달려가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부모님을 모시고 무려 남미, 페루 여행을 무려 일주일이 넘게 다녀오고 나니, 내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을 이룩한 듯한, 한 획을 그은듯한 느낌이 든다. 심지어 일주일 동안 싸우지도 않았다! (원래 가족여행은 한 번쯤은 싸워야 정상이라던데!!!) 여행에 제법 잔뼈가 굵은 나도 (가장) 걱정되고 두려워하던 (!) 가족여행이었는데 순조롭게 아무 문제없이 마무리를 짓고 나니, "다 이루었다"를 외치고 지나온 인생을 반추해야겠다는 생각, 뭔가 대형 몬스터를 때려잡고 레벨 업그레이드를 한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최근 인생을 반추해보니 뭔가 맴이 짠하다.
정말 냅다 전력질주를 하며 살지 않았나! 남들 보기에 팔자 편하게 세계 여행을 하는 여편네겠지만, 내 밥벌이 궁리,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 나 자신에 대한 궁리에 속을 다글다글 볶으며 지내왔다.
- 2015년은 모든 걸 집어던지고 실험을 시작한 시간,
- 2016년은 제대로 실험을 하면서 삽질의 무한반복과 시련의 연속 (ㅠ_ㅠ),
- 2017년은 파트너를 만났고 (니꼴라스)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 2018년은 그 프로젝트가 (노마드 코더) 무럭무럭 자라나는 시간(수강생 6천 명 돌파!)이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2016년이다! 막상 실험을 시작한 2015년이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2016년부터는 몸도, 마음도, 지갑도, 영혼도, 그냥 모든 것이 얇아지고 가난해지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때 브런치에 토하듯이 글을 적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고파서 치앙마이 쉐어하우스를 열었고, 그때 찾아온 인연들 중에 하나가 지금의 파트너인 니꼴라스였다. 즉,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동시에 마치 마법처럼 모든 것이 시작된 시기인 셈이다.
그 당시는 낭만적이기만 하던 약 1년여의 세계여행이 끝나고 참혹한(!) 현실의 벽과 마주친 시기였다. 영혼이 탈곡기에 탈탈 털린 것과 같던 그 시기에도 나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1. 멋져지려고, 유명해지려고 애쓰지 말자.
2. 볼품없고 모자라도 '나만의 고유한 것'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에 애쓰자.
3. 불안하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그래서 덥석 내가 하고 싶지도 않았던 일은 하지 말자.
4. 내 밥벌이는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계산한다.
5. 부지런하게 이 모든 삽질을 기록하자.
사실 1번부터 3번까지는 결국 한 가지 메시지 - "가장 나 답게 사는 일" 이 절대 과제였던 셈이다. 이는 여러 직업을 오가며, 나에게 맞지도 않는 모자를 이것저것 쓰며 불편해했던 경험 때문이다. 특히 나라는 인간은 남들의 시선, 기대 등에 오락가락하는 인간인지라 결국 극단적으로 모든 걸 때려치우고 (!) 한국을 떠나, 이에서 자유로워진 후에야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혼자인 순간들이 외롭고,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무서웠던 건 내 마음이 말하는 대로 살지 않을까 봐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물론 이내 알게 된 것은, 내가 뭘 원하는지 영 도통 모르겠다는 사실이었지만...
그래서 나의 원칙을 지키며 2018년도 잘 살아왔나?
2018년도 잘한 일을 꼽자면 3가지이다.
1. 한 달에 한번 사이드 프로젝트를 끝까지 해낸 것
2. 매일매일 요가를 한 것
3. 가족여행을 한 것
남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12개월 12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 것이다. 어떠한 달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고민하다가 억지로 짜내서 한 적도 있었는데, 그게 유튜브였다. 현재 노마드 코더 채널 구독자 수가 드디어 1만 명을 넘었으니! 이 모든 것이 사이드 프로젝트 덕분이다!
건강의 중요성은 2016년도 영혼이 가루가 되면서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다.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
가족과 나름의(?) 화해를 한 것이 아마도 통틀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딸자식을 그래도 이해하려 노력하시는 부모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18년도에 싸돌아다닌 국가는 대략 7개국 정도 된다.
1월 ~ 2월: 태국. 치앙마이
3월: 서울. 한국
4월: 이탈리아
5월: 에스토니아
6월 ~ 7월: 터키. 이스탄불
8월 ~ 9월: 그리스. 아테네
10월 ~ 12월: 서울. 한국
12월: 콜롬비아. 보고타
그리고, 항상 돌아오는 곳은 한국, 서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 떠날 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어찌 되었든 한국이더라. 돌아올 곳이 생긴 지금, 여행이 끝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여행' 말이다. 흔히 말하는 여행보다는....'여정'에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말이다. 그 긴 여정이 마침내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아서 안도가 되고 기쁘다. 아직 그 여정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영혼이 털릴 때마다 읽고 또 읽었던 이 글을 남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1902~1963/터키)
린은 현재 보고타, 콜롬비아에 체류하고 있어요 (2019.1 기준). "노마드 코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이것저것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는 게 취미입니다!
노마드 코더 : http://nomadcoder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