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발리에서 생긴 일
신들의 섬, 발리
디지털노마드의 도시, 발리
자연 끝내준다.
서퍼들의 천국인 파도가 있고, 라이스 필드가 펼쳐져서 초록 초록하고, 산도 있어서 하이킹도 가능. 주변에 자그마한 섬들도 많아서 갈 곳 많고,
날씨 쩐다.
파란 하늘에 햇살이 눈부시게~ 샤라라라 포카리00트 광고 찍어도 됨.
저렴하다.
럭셜 럭셜 한 리조트에서 호화 사치를 부려도 그렇게 비싸지 않으며, 부담 없이 레스토랑에서 밥 먹어도 된다.
사람들 친절하다.
발리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순한가! 생글생글 웃음이 어디서든 돌아온다. 냉랭 무뚝뚝한 북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에 깜빡 죽음.
의사소통이 편하다.
어느 정도 영어는 다들 할 줄 안다. 손과 발을 동원해야 하는 베트남과 다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는 쉬운 편이라서 금방 배울 수도 있고, 일단 꼬불꼬불 외계어로 쓰여있어서 상형문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으로 적혀있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이 느려 터져서 분통이 터진다는 것 만 빼면 (... 뭐 그래도 인도보다는 빠름) 누구나 홀딱 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나도 그 조건들을 듣고 귀를 팔랑이면서 방문했으니까. 아 이런 곳이라면 뭔가 다른 삶이 가능하겠어!!
아마도... 남자 친구랑 놀러 갔다면 발리는 최적의 장소이겠다.
아마도... 혼자서라도 뭔가 그저 요가하고 명상하고 쉬러 갔다면 제법 괜찮겠다.
아마도... 돈지랄을 해서 럭셔리한 곳에서 최상급 서비스를 즐기러 가겠다면 최적이다.
하지만!
난 혼자 터벅터벅 찾아갔으며, 요가와 명상과 쉼을 필요로 한 것도 아니고 (그걸 한 달 동안 할 수도 없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잉? 이거 말고 없음???
아, 그래,
디지털 노마드.
코워킹 스페이스가 우붓에 총 3군데 있다. Hubud, Onion, 새로 생긴 곳인데 이름 까먹음, 그리고 창구에 Dojo 뭐라고 불리는 코워킹 스페이스. 일단 원조격인 Hubud을 중심으로 디지털노마드 피플이 대략 3-50명 정도 거주한다. 후붓을 매일 들락날락하고 각종 커뮤니티 모임에 참여하면서 한 달을 보내면서 제법 흥미롭고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약 4년여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프로그래머 친구처럼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 (???)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최근 1-2년간 퍼진 이 단어 '디지털 노마드'에 혹해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여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혹은 때려치우기 직전에) 발리에서 맥북을 들고 뭔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친구들이 약 80%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들은 어떠한 사람인가 들여다보니 대부분 이러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출신 ->> 대부분 좀 추운 나라 출신
나이는 30대 초중반
약 3-5년간 사회생활을 하다가
아이샹- 이게 뭐임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 조건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날씨 따스한데서 편하게 살고 싶음. 디지털노마드? 나도 해보자 -> 발리로 가자.
그리하여 발리에 도착하여, 삶은 대부분 또 이렇게 나뉜다.
1주~한 달 동안, 경험해보겠음!
~1년 미만, 돈이 떨어져 감, 비즈니스를 만들어보자,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작가? 디지털 마케팅? 요가 티쳐? 보따리 장사? 돈 되는 건 다 해보아요! 창업가 정신! 맨!
~1년 미만, 사랑에 빠짐. (새로운 삶- 끝) (본인도 이 케이스였으면 했는데...)
~3년 미만, 에어비앤비 돌리고 있음, 게스트하우스 차렸음, 발리에 오는 관광객 대상으로 이미 장사를 하여 자리 잡음
그렇다. 디지털노마드 라는 단어를 해부해보면, 결국 자기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work-life balance를 즐기면서 여행도 가끔 하면서 살고 싶어요!라는 열망이 숨어있다.
- 내 고향을 떠나서 (너무 비싸서, 너무 추워서, 삶이 팍팍해서 - 진짜??)
- work-life balance를 즐기면서 (따스한 나라에서 하루에 4-6시간 일하면서-)
- 여행도 가끔 하면서 (가보고 싶은 나라가 너무~ 많아!)
근데 돌아다니면서, location-indepedent 할 수 있는 직업은 사실 한정적이다.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작가, 보따리 장사(..) 정도가 아닐까? 근데 그 직업이 본인의 적성과 얼마나 맞을 수 있을까? 스크린 너머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현장에서 부대끼면서 침 튀기면서 일을 하는 게 더 적성에 맞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노마드로 살 수 있을까? 2년 가까이 돌아다닌 본인의 생각으로는, 노마드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결국 사람은 어느 정도 베이스가 필요함.
난 그다지 디지털 하지도 않고 (아날로그함,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좋음), 노마드한 것을 즐기지도 않구나 (처음엔 재밌었지, 지금은 정착할 곳을 못 찾아서 떠돌아다닐 뿐), 아 망했어요, 뭐 우야면 좋노. 그렇다고 돌아가기는 싫고, 뭔가 대안을 마련하고 싶음!!
뭐 이러한 복잡다단한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푸르디푸른 논밭을 바라보며 토론을 하다 한숨을 쉬는 것이다. 하. ㅅㅂ 내가 원하는 건 뭐지. 뭐 어찌 되었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집단 상담과 수다를 하기엔 적합한 장소이긴 하였다. 그러나 냉철하고 현실적인 고민이나 대안보다는 그런 고민을 하다가, 요가와 명상으로 끝나버려서 허망했을 뿐.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농사를 짓고있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더 현실적으로, 더 진정성 있게 보였다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