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모로코에서 농장을 차례로 3군데를 방문하고, 지칠 대로 지쳐서 지인분의 집에 머물면서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디를 가야 하지? 뭘 해야 하지?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끔찍했다. 백지 같은 나날들이 무서웠다.
갈 수 있는 곳들은 어찌 보면 참으로 많았다. 아직 모로코 북부를 방문해보지 않았고, 아름답다는 셰프샤우엔도 가보지 않았고, 하다못해 마라케시에 있는 인근에 있는 다양한 유적지들도 있었는데, 그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았다. 어느덧 여행도 1년째에 접어들고 관광지나 화려한 리조트는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라면이면 몰라도...)
참담했다. 방문했던 모든 농장, 생태 공동체들에서 실망을 반복했다.
내가 문제인 건지 아니면 그냥 현실은 결국 그런 건지, 난 그저 그런 인간인 건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특히 마지막 생태공동체는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곳이었다. 만든 사람들도 30대 후반, 기존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모로코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 그리고 자리 잡은 횟수도 이제 3년. 나에게도 함께 이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하지만 그저 여기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될까 말까 한 인터넷, 아라빅을 할 줄 못하니 그저 아무 말도 안 통하고, 미소를 방긋방긋 짓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고, 농사일도 집 짓는 일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건 너무 미비하게 느껴질 뿐이고, 뭐랄까. 노력해서 될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더라. 농장, 자연과 함께하는 삶? 좋지! 자연인으로 사는 거? 좋지! 생태공동체, 하나하나 내 손으로 만들어서 사는 삶? 좋지! 하지만 한 달 이상 그걸 지속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안 되는걸? 산속에 있다 보면 고립되어있는 것 같아서 답답한걸?
그저 나에게 숨쉬기처럼 익숙한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세상에서 맴돌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누군가의 블로그를 맴돌면서 난 이제 뭐하지, 어쩌지, 어디를 가지, 난 여기에 왜 있지 중얼거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심지어 건강까지 바닥을 치니까 그저 먼지만큼이나 초라한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해서 난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눈물을 계속 훔치면서 하얗게 밤을 지새우다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되지도 않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전화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둘 전화를 걸어서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한 시간씩 해대다가.
아, 그래 난 사람이 너무 좋다.
여기선 망할 불어 (아프리카에선 영어가 아니고 불어를 써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영어는 제4외국어쯤 되니까 영어 하는 사람 만나기가 아주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대화가 안되니 도통 살 수가 없다.
사람 찾아 가자. 농장이고 뭐고, 공동체고 뭐고, 생태가 어쩔씨고 모르겠고,
안 되겠어. 한국은 너무 멀고, 일단 가까운, 친구가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 가자! 그래서 모로코를 떠나 베를린을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최고의 선택이었지. (히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