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그저 좋으면 좋은 대로 눈에 담았던 세상의 문이 닫히면. 어른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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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문은 꽤 일찍 닫혔다. 물론 내가 원해서 어른의 세상을 향해 힘차게 발을 디딘 건 아니었다. 그래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고, 대한민국의 장녀 딸로 태어났다는 뻔한 클리셰까지. 그저 서로가 좋았던 선과 지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들 또한 두 아이들을 어른의 세상으로 가게 만든다. 모든 것이 내 문제라는 책임감, 버겁지만 어른스러워야 하는 상황,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해야 하는 어른들. 떠오르는 기억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봐야 하는 이야기였다. 닫혀 있던 문을 자꾸만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우리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 즈음 무너져버렸던 건 딱 한 마디의 대사.
“그럼 언제 놀아?”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렇게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 나도 그렇게 이야기했으려나. 수많은 이유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우리는 언제 놀고 웃을 수 있는 거야? 하고. 러닝타임 동안 지나간 대부분의 장면들이 그랬지만, 특히나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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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 틈 사이로 기억나는 사소하지만 또렷한 것들 중 하나는 ‘피구’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 여자 아이들에게 피구는 단순한 운동이나 놀이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선택하고, 누군가는 선택을 기다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다행인지 운동신경이 좋았던 나는 늘 누군가를 선택하는 쪽에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순간이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누군가가 선의 언저리에 있다가 금을 밟고 나가면, 나는 늘 묘하게 불편했다. 마치 이 작은 놀이가 하나의 세상이라도 된 것처럼 크게 느껴졌고, 그 세상에서 내가 저 아이를 밀어낸 것만 같아서.
선과 지아가 라인 밖에 서 있는 장면에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묘한 불편함은 어쩌면 그 작은 두 개의 네모 칸이 어른의 세상과 너무 닮아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밖으로 밀려난 사람, 끝까지 아등바등 버티는 사람, 여유롭게 그 안에 있는 사람. 우리는 늘 그중 하나가 되고, 언제든 다른 쪽으로 밀려나거나 올라가는 그런 어른으로 버티고 있으니까.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 피구라는 건, 그래서 좋았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커다란 운동장을 떠올리며 두 개의 작은 네모 칸을 그렸다.
운 좋게도 선택하는 아이 었던 나는, 어른이 된 지금 그 안의 어디쯤에서 어떤 역할로 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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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하자.”
한 마디면 충분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우리들에게도. 어쩌면 아이의 세상에서도, 어른의 세상에서도 관계와 역할이라는 건 그렇게 단순한 걸지도 모른다. 자꾸 잊게 되지만, 그렇게 생겨난 ‘우리’ 에게 이런저런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충분히 괜찮다. 잊어버렸지만, 그랬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다시 닫혀버린 문을 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적어도 한 번쯤은 긴 말 없이 그냥.
그렇게 ‘그냥’ 하고 넘기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오면, 다시 이 영화를 꺼내보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