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앞에 선 나에게, 고전이 속삭인 말

― 『논어』와 『주역』이 건네는 용기

by 린박

깊은 강 앞에 선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한 발 내딛기조차 두려운 나날.

그 강은 너무 깊고, 차가웠다.

나는 건널 수 없다는 확신처럼

그 앞에서 한동안 울고만 있었다.


그 순간, 먼 시간 속에서 걸어온 한 문장이

내 안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深則厲 淺則揭.”
(심즉려 천즉게)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넌다네.
『논어 제14편 헌문(憲問) 』


이 짧은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내 눈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왜 울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

나는 건너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원했기에,

건너지 못하는 현실이 슬펐던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울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내 마음이 건너편을 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늘은 그런 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그에 따라 이미 어떤 계획이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막혔다는 건, 변화를 위한 징조


마음이 움직이니,

또 다른 먼 시간 속에서 온 문장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극에 이르면 바뀌고,
바뀌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
『주역』


막힘(窮)은 끝이 아니다.

‘이제 바뀌어야 할 때’라는 신호다.


흔히 우리는 막혔다는 이유로 포기하지만,

오히려 막힘은 변화의 문 앞에 서 있는 상태다.


그리고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눈물에서 온다.


감정에서, 간절함에서, 움직임에서 온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이미 정체가 끝났다는 신호다.

움직임이 시작되었기에,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니, 기억하자


지금의 멈춤은

운명에 내장된 ‘침묵의 추진력’이다.


당신이 울고 있다는 건,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자신을 맡긴 자에게 길이 열리는 것이다.



나에게 던지는 두 가지 질문


하루는 울음을 멈춘 뒤

조용히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지금 내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 강을 건너고 싶은 걸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내 발밑 물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길은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먼저 열리는 법이다.




강 앞에 선 당신에게


혹시 지금,

건너편을 바라보며 울고 있나요?


괜찮습니다.


눈물이 멈추면,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은 물결을 잔잔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물결은 언젠가 당신을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논어』와 『주역』은 말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하늘은 길을 내준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울어도 괜찮습니다.


그건 이미 건너기 시작한 당신의 방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