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파리.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이륙 시간은 저녁 6시 반. 오후 3시까지는 뭔가를 할 수 있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 앵발리드로 향했다. 원래는 노병을 위한 양로원이었으나, 지금은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프랑스 군사 박물관이다. 대다수 관광객들은 나폴레옹의 무덤에 더 중점을 두고 이 곳을 방문한다. 그럴 만도 한 게, 입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작은 팡테온같은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나폴레옹의 무덤이다. 그 건물을 지나야 비로소 매표소가 나온다.
내가 관심있던 건 나폴레옹의 무덤보다는 박물관의 전시 스타일과 내포된 이념이었기에 나폴레옹 무덤에는 눈길 한 번만 주고 지나갔다. 짐을 맡기고 처음 들어선 곳은 무기가 전시된 곳. 시대별로 대표적인 칼, 총 그리고 화약무기까지 볼 수 있다. 무기 자체에 관심은 없기에 건조하게 지나쳤다.
다음으로 간 곳은 프랑스 전쟁을 설명하는 공간. 16세기, 17세기 전쟁부터 확인할 수 있지만,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러다 프랑스 혁명의 서막,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나오자 그제야 발걸음이 느려졌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을 놓고 역사 박물관인 까나발레와 앵발리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까나발레가 혁명에서 정치적 사건과 인물에 중점을 뒀다면, 앵발리드는 혼란스런 혁명기 시절 전쟁들과 장군들에 초점을 맞췄다. 제국주의 프랑스의 식민지 장군들도 제복과 함께 친절히 설명돼 있다.
그리고 등장한 나폴레옹 1세. 프랑스인들에게 나폴레옹의 의미는 특별하다. 혼란을 진압하고 나타난 불세출의 영웅으로 그의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에 수많은 전쟁 승리를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그 시절 다양한 전쟁들과 워털루 전투 패배 후 나폴레옹 시대의 폐막까지 볼 수 있다. 물론 시대별 제복들과 함께.
본질적인 것을 규정하는 걸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군대의 본질적 속성에 '보수성'이 녹아있다는 말을 딱히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영국의 전쟁박물관처럼 앵발리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이 어떻게든 자기 자식 군면제 받게 하려는 노력 좀 그만 했으면 한다.
유럽 전쟁 박물관에 세계 1, 2차 대전이 빠질 순 없다. 세계 대전이 설명돼 있는 공간에 갔는데 구성과 퀄리티는 영국의 박물관이 훨씬 낫다. 딱히 특별한 건 눈에 띄지 않기에 휘리릭 지나쳤다.
박물관에서 나와 드디어 나폴레옹의 묘지로. 들어가는 순간 한기가 느껴진다. 내부 구조도 팡테온과 상당히 비슷하고 1층 홀 중앙과 지하가 연결된 뻥 뚫린 공간에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 찬란했던 그의 재위 시절만큼이나 웅장하고 엄숙한 대리석 관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팡테온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팡테온을 추억하며 무덤을 걷다 보니 어느덧 한 시. 이번 파리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만족스럽게 즐기고 싶기에, 얼른 밖으로 나가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쌀국수집에 도착하니 두 시. 메뉴는 국물이 있는 국수와 없는 국수 두 개 뿐이다. 가격은 둘 다 8유로 쯤. 하나씩 시켜 후루룩 국수를 들이키는데, 이럴수가 지금껏 먹어본 쌀국수 중에 단연 최고였다. 뭐 그 맛이 기억속의 쌀국수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건 아니지만, 1등임은 확실하다. 국물이 없는 얇은 면발의 쌀국수도 콩가루의 고소함과 레몬의 상큼함이 어우러져 훌륭했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가격. 한국의 쌀국수 체인점만 가도 한 그릇에 만원은 받는다. 개인적으로 프랜차이즈 쌀국수는 맛으로만 봤을 때 가성비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쌀국수와 같은 가격에 더 맛있고 푸짐한 양이다. 파리에서. 가게가 크지 않기도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난 두시에도 손님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그럴만하다.
국수를 먹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오페라 역으로 갔다. 파리에서 비행기는 처음 타 보는데, 오페라 역 근처 르와시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 내에 샤를 드 공항으로 간다더라. 마침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출발 직전의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서는 30분 동안 무료와이파이도 이용할 수 있다.
너무 서둘렀나. 비행기 이륙 두 시간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전날에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하니 시간이 탑승 수속을 밟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노트북은 와이파이를 못 잡고, 유럽식으로 느린 핸드폰을 붙들고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는데 배가 고파온다. 쌀국수 양이 아무리 많았더라도 국수는 국수인건가. 성나기 직전의 배를 달래려 음식을 파는 곳에 갔는데 너무 비싸다. 그래도 입속에 뭔가는 넣고 싶어 초코머핀을 하나 구입했다. 물도 없이 꿀떡꿀떡 머핀을 집어삼키니 어느덧 비행기 탑승시간.
이번엔 유럽 내 비행이지만 KLM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표를 찾을 당시 가장 싼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앉자마자 30분을 졸다 깨니 승무원들이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잽싸게 받아먹고 음료수도 마셨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저녁과 함께 먹을 음료수까지 추가로 받았다.
파리를 떠나며 아쉬웠던 건 총 12일 이상 머물렀으면서 퐁피두 센터에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뭐 언제부터 미술에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냐마는 오르셰와 퐁피두를 제대로 비교하며 느껴 보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다. 어짜피 주말을 이용하면 파리는 언제든지 올 수 있기에.
바토무슈를 타고 마지막 밤을 마무리 했었는데 강변에 멋진 건물들이 아름다운 조명에 비춰지니 장관이었다. 낮 만큼이나 파리의 밤도 아름다웠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느강은 폭이 그렇게 넓지 않다. 그렇기에 배를 타고 양쪽 강변을 바라볼 때 건물과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져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역시나 파리는 파리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