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과(한국어,중국어 통번역학과)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다 보면 중국어 시역(視譯) 연습을 하게 됩니다. 통역대학원마다 평가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면접 과정에서 시역을 통해 피면접자의 외국어 실력과 순발력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영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시역이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문장 구역, 혹은 Sight Translation이라고도 하며, 문장을 눈으로 보면서 즉시 다른 언어로 통역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겉으로 보기에는 글을 보고 바로 통역하는 것이 듣고 통역하는 것보다 쉬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사람에게도 시역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한국인과 중국인 스터디 파트너들과 함께 시역 연습을 하며 느낀 점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외국어를 한국어로 시역하는 과정을 가장 어렵게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우리말이 익숙하고 쉬워 보이지만, 상황에 맞는 정제된 표현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고, 순간순간의 뉘앙스를 살려 말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어가 쉬운 언어인 것도 아닙니다. 중국어는 몇 개의 알파벳만 익히면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특히 중국어 시역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점은 원칙적으로 띄어쓰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디에서 문장을 끊고, 어떤 단위로 단어를 나누어 해석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결국 이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언어 감각과 독해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숙달하는 방법 역시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읽고 반복해서 연습하며 문장을 의미와 맥락에 따라 나누는 감각을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중국어는 심지어 문장부호조차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조차 글을 이해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국어의 특징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더욱 지식을 함양하고자 유명한 선생님 한분을 집으로 모셔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소문난 구두쇠였고, 선생님을 모신 첫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약속한 월급은 드릴 수 있으나 저희 집에 음식이 넉넉하지 못해 대접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미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는 공손한 말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식사 비용을 아끼려는 의도라는 것을 선생님은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그 후에 선생님은 즉석에서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었습니다.
“無雞鴨亦可 無魚肉亦可 青菜一碟足矣”
이를 글자 띄어쓰기 없이 해석하면
‘닭과 오리가 없어도 괜찮고,
생선과 고기가 없어도 괜찮으며,
채소 한 접시면 충분하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 문장을 본 부자는 속으로 ‘고기 반찬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흔쾌히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첫 수업을 마친 뒤 선생님이 받아든 밥상에는 채소 반찬만 올라와 있었고, 이를 본 선생님은 크게 화를 내냈습니다.“어찌 고기 반찬 하나 없이 채소 요리만 대접을 합니까?”
당황한 부자가 계약서를 내밀자,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 하였습니다.
“아아...내가 쓴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닭고기가 없을 때는 오리고기로 대신해도 괜찮고(無雞 鴨亦可), 생선 요리가 없을 때는 고기 반찬으로 대신해도 괜찮으며(無魚 肉亦可), 여기에 채소 한 접시를 곁들이면 충분하다는 뜻이오.(青菜一碟足矣)”
띄어쓰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자는 결국 반박하지 못하고, 이후 선생님께 고기 반찬으로 융숭하게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중국어에서 띄어쓰기와 문장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어려움이 중국어 학습자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중국 문학의 거장 루쉰과 관련된 일화 역시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