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 쓰기가 없는 중국어2

by saluteThee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루쉰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그가 살았던 시대적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루쉰이 활동하던 중화민국 시기, 즉 1912년부터 1949년 사이만 하더라도 중국 사회에서 지식인에 대한 예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글을 쓰며 생계를 이어가던 문인들에 대한 금전적 대우는 오늘날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한 편이었습니다.

루쉰

반면 오늘날 글을 쓰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대개 걱정 섞인 시선부터 보내곤 합니다. 글을 써서 받는 원고료만으로는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이미 보편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단지 사회 분위기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변화 속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민국 시기,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 세대가 젊었을 무렵만 해도, 중국어에서 원고료를 뜻하는 표현으로 지금처럼 稿费(가오페이-비용,돈의 느낌이 강함)라는 단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당시 사람들은 보다 낭만적이고 우아한 뉘앙스를 담은 稿酬(가오처우-보수,대가,처우의 느낌이 강함)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 두 단어는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와 뉘앙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페이,비용 비)는 小费(샤오페이-팁)에서 보듯이 비용이나 지출, 혹은 보상의 의미를 지닌 비교적 중성적인 단어입니다. 반면 (처우,갚을 수)는 酬谢(처우씨에-사례하다)처럼 상대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어, 훨씬 품격 있고 고상한 느낌을 줍니다. 당시 원고료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단순한 ‘비용’이나 ‘대가’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보다 존중의 의미가 담긴 단어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稿酬? 稿费?

이처럼 원고료를 뜻하는 중국어 표현을 살펴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민국 시기보다 더 이전의 시대에는, 원고료를 더욱 우아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민국시기 이전에는 원고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润笔(룬비-윤택할 윤, 붓 비-젖은 붓), 혹은 어순을 바꾼 笔润(비륜)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글을 쓴 대가로 받는 보수를 ‘붓을 적신 것에 대한 대우’라고 표현한, 매우 완곡하고 시적인 표현입니다.

사실 이 표현의 유래는 『수서(隋書)』, 즉 수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 문제(隋文帝)가 정역(鄭譯)을 관직에 복귀시키라는 조서를 작성하도록 이덕림(李德林)에게 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황실의 명을 전달받은 관리가 이덕림에게 찾아와 조서 작성을 기다렸으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그가 붓을 들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붓이 말랐잖습니까?


“笔干了.”(붓 비, 마를 간, 마칠 료)

(붓이 말랐잖습니까?)

그러자 이덕림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합니다.

“不得一钱,何以润笔?” (아닐 부, 얻을 득, 한 일, 돈 전)-(어찌 하, 써 이, 적실 륜, 붓 비 )

(돈 한 푼 받지 않았는데, 어찌 붓을 적신단 말입니까?)

수 문제는 크게 웃으며 그의 당당함과 기개를 높이 평가해 충분한 금전을 하사했다.

이 말은 결국 수문제의 귀에까지 전해졌고, 이를 들은 수 문제는 크게 웃으며 그의 당당함과 기개를 높이 평가해 충분한 금전을 하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일화에서 비롯되어, 글을 쓴 대가로 받는 보수를 가리키는 말로 润笔이라는 표현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대에서 민국 시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원고료를 표현하는 방식은 점차 완곡하고 우아한 표현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실무적인 표현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이 변화와 함께 문인과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대우 역시 점차 예전만 못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문인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면서 표현이 담백해진 것인지, 혹은 표현이 담백해지면서 그 가치마저 가볍게 여겨지게 된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글을 쓰는 노력과 그 결과에 대한 존중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실력 있는 이들은 글쓰기를 떠나거나 아예 붓을 놓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장과 작품의 수준 역시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조금씩이라도 개선할 방법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민국 시대 문인들이 실제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호였던 루쉰 선생의 사례를 통해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중국어에 띄어쓰기가 없던 시대에 루쉰 선생이 글을 쓰며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몇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본래 이 글에서 해당 내용을 함께 다루려 했으나, 원고료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다 보니 글이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부득이하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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