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에서 식재료 이름 앞에 ‘胡(오랑캐 호)’가 붙으면, 중국 대륙에서 난 것이 아니라 외부 민족, 즉 오랑캐로부터 들어온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 ‘胡’가 붙어 있으면 외국에서 유입된 식재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과(胡瓜)’라는 표현 역시 외국에서 들어온 채소라는 뉘앙스를 지니며, 한족의 시각에서는 타 민족을 다소 낮춰 보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胡’라는 글자를 불편하게 여긴 인물들도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석륵(石勒)입니다. 그는 중국 오호십육국(五胡十六国) 시기에 흉노계 갈(羯)족 출신으로, 노예 신분에서 출발해 도적 무리의 두목이 되었고, 이후 조나라(赵)를 세워 화북 일대를 정복한 군주가 된 인물입니다. 그의 조상이 흉노족이었기 때문에,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그 역시 ‘오랑캐’에 해당하는 존재였습니다.
이 때문인지 석륵은 ‘胡’ 자가 들어간 단어를 매우 싫어하였고, 특히 ‘호과(胡瓜)’라는 표현을 꺼려 ‘胡’를 ‘黄(누를 황)’으로 바꾸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던 중 오이의 특징에 주목했고, 오이가 익으면 노랗게 변한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황과(黄瓜)’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중국에서 오이를 ‘황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편, 당시 외국에서 들어온 식재료를 나타내는 표현으로는 ‘胡’ 외에도 ‘安(편안할 안)’이라는 글자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석류는 당시 ‘안석류(安石榴)’라고 불렸습니다. 여기서 ‘안(安)’은 오늘날 이란 지역에 해당하는 ‘안식국(安息国)’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석류 역시 외래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에는 다양한 외국 식재료들이 중국 대륙으로 유입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조리법이 등장하며 다양한 요리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중국인들의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관심과 열망도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재료를 제외한, 어떤 식재료들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지(茄子)입니다. 가지는 영어로 ‘Eggplant’라고 불리는데, 오늘날 길쭉한 가지를 보면 왜 ‘달걀’을 의미하는 ‘Egg’가 포함되어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는 원래 가지의 형태가 달걀처럼 둥근 모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개량을 거쳐 현재와 같은 길쭉한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농서인 제민요서(齐民要书) 의 기록에 따르면, 가지는 인도에서 처음 수입된 것으로 전해지며, 당시의 가지 역시 달걀처럼 둥근 형태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지를 주로 무쳐 먹는 방식으로 조리하지만, 중국에서는 기름을 충분히 사용해야 가지의 풍미가 살아난다고 여겨 튀기거나 볶는 방식으로 요리가 발달해 왔습니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인 홍루몽에서도 가지를 기름에 조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중 ‘가상(茄鲞)’이라는 요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요리를 언급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4~5월에 가지를 따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썰어 햇볕에 말립니다. 그 후 살이 오른 암탉을 푹 고아낸 국물에 말린 가지를 넣고 찐 뒤, 다시 햇볕에 말립니다. 이 과정을 아홉 번 반복한 후 항아리에 보관하고, 요리할 때 기름에 볶아 사용합니다.”
이를 들은 유 노파는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닭을 열 마리나 넣어서 만들었는데, 맛이 없을 리가 있겠어요!”
이처럼 기름을 활용해 가지의 풍미를 극대화한 ‘가상(茄鲞)’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각지에서 사랑받는 요리 중 하나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시기에도 다양한 식재료가 중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네팔부근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시금치(菠菜)입니다. 중국인들에게 여름철 대표 채소를 꼽으라면 시금치(菠菜)와 미나리(芹菜)를 떠올릴 정도로, 시금치는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식재료입니다.
중국은 국토가 넓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시금치의 특징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북방 지역의 시금치는 비교적 크고 길며, 남방 지역의 시금치는 상대적으로 짧고 작은 편입니다. 다만 지역과 관계없이 지나치게 자란 시금치는 질겨서 먹기 어렵다고 합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는 채소나 과일을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질긴 시금치를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졌습니다.
“시금치는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먹을 수 있고, 부추는 거의 수명이 다할 때 베어 먹으며, 만두는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다.”
(长吃菠菜,老吃韭菜,一年到头吃饺子)
하지만 오늘날에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더 이상 질긴 시금치를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과거를 경험한 중국의 노인들이 지금의 부드럽고 풍미가 좋은 시금치를 맛볼 때마다 세월의 변화를 실감할 것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시기에 들어온 식재료는 시금치 외에도 매우 다양하지만, 이를 모두 다루기에는 분량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살펴보고, 다음에는 송나라 시기에 어떤 식재료가 유입되었는지 이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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