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조(稷)는 좁쌀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기업 샤오미(小米)의 이름 역시 바로 이 좁쌀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중국의 좁쌀은 대부분 노란색이지만, 검은색·오렌지색·붉은색·자주색 등 다양한 색을 지닌 품종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곡물 안에도 다채로운 구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菽(콩 숙)’이라는 한자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 글자는 바로 모든 콩류를 아우르는 단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콩을 한자로 ‘豆(두)’라 표기하지만, 이 豆 자는 한(漢)나라 시대 이후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글자이며, 그 이전에는 菽(숙)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 중국 사회에서 곡물과 콩은 이미 체계적으로 구분되어 인식되고 있었던 것입니다.이제 중국의 가장 이른 시기의 주식이었던 오곡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으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곡물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을까요? 가장 이른 시기의 요리법은 무엇이었는지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요리법은 ‘굽기(烤)’였습니다. 식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불을 피운 뒤 식재료를 직접 불에 노출시켜 익히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즉각적인 조리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굽기가 최초의 요리법이었다는 사실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불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은 가장 강력한 도구였고, 그 불을 통해 음식을 익히는 일은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요리법은 ‘삶기(煮)’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불에 직접 노출시키는 방식을 넘어, 용기나 그릇을 만들어 물에 끓여 익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단계였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조리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류의 생활 방식과 물질 문화의 발전을 함께 보여주는 전환점이었습니다.
중국의 가장 이른 조리용기는 鬲(솥 력)입니다.
鬲의 형태를 보면 세 개의 다리가 있으며, 깊이가 비교적 깊고 배 부분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구조가 나타난 이유는 당시에는 오늘날의 가스레인지나 인덕션처럼 균일한 화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불은 일정하지 않았고, 열은 고르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불균형하게 타오르는 화력 속에서도 열이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물에 삶는 방식을 택하였고, 그에 맞추어 이러한 형태의 용기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흙으로 빚어 제작하였으나, 점차 열의 효율성과 내구성을 고려하여 금속 재료로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곡은 삶는 조리법이 없었다면 삼키기조차 쉽지 않은 식재료였습니다. 물론 구워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텁텁함은 이루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삶기라는 조리 방식을 고안함으로써 새로운 조리 용기가 등장하였고, 곡물을 보다 쉽게 조리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건강과 수명 또한 점차 향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리 기술의 발전이 곧 삶의 질의 변화를 이끌어낸 셈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삶는 과정에서 솥 위로 올라오는 수증기를 관찰한 중국인들은 또 하나의 조리 방식을 고안해 냅니다. 바로 ‘찜(蒸)’입니다. 증기로 쪄 먹는 방식은 식재료의 본래 형상을 비교적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며, 원재료의 신선한 맛을 살릴 수 있는 비교적 정교한 조리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두를 삶아 먹었을 때와 쪄 먹었을 때의 식감과 풍미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조리법이 등장하면서 주식인 오곡뿐만 아니라 각종 육류 역시 쪄 먹기 시작하였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고기 요리가 탄생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윈난성의 대표적인 찜 요리인 汽锅鸡(qì guō jī)를 비롯하여 汽锅排骨(qì guō pái gǔ), 汽锅羊肉(qì guō yáng ròu) 등은 모두 이러한 조리 방식에서 발전한 음식들입니다. 다만 이 시기까지의 중국 요리는 여전히 기본적인 가열 조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한(漢) 시대에 들어 서면서 중국 요리는 한층 다양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한무제 시기, 사신 장건(张骞)이 서역(西域) 지역으로 파견되었다가 여러 문물과 함께 다양한 식재료를 들여오면서 중국 음식 문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유입된 석류, 샹차이(고수), 포도 등과 더불어 오이(黄瓜)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오이는 처음부터 ‘황과(黄瓜)’라 불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오랑캐들의 외’라는 뜻의 ‘호과(胡瓜)’라 불렸습니다. 여기서 ‘외’는 오이나 참외류의 채소를 가리키는 옛말입니다. 이후 이 명칭이 황과로 바뀌게 되는데, 그 변화의 배경에는 또 다른 역사적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곡물의 명칭에서 시작하여 조리 방식의 발전, 그리고 서역 문물의 유입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름 하나, 조리법 하나가 단순한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교류를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과가 어떻게 황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 역시 다음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P.S. 오늘 내용이 흥미로우셨다면, 제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된
제 채널의 〈홍위병: 마오쩌둥을 믿은 세대의 몰락 – 중국 문화대혁명 전사들의 후회와 눈물〉 영상도 함께 시청해 보시길 바랍니다.
홍위병 인터뷰 후반부까지 담아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