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국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값싸고 질 좋은 음식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났다는 점이었습니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워낙 맛있는 음식의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단짝이었던 독일인 친구와 함께 근처 사천요리 식당, 란저우 라면집, 당나귀 고기 요리 가게를 찾아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시켜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당시 거리로만 나가도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중국에는 굶어 죽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언제부터 이렇게 다양한 식재료를 먹기 시작했고 요리를 해왔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식재료들은 본래부터 중국에 존재하던 것들이었을까요? 이번 시간에는 다양한 중국 식재료와 요리와 관련된 역사와 이야기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사마천(司马迁)은 “백성(사람들)에게 먹는다는 것은 하늘만큼 중요한 일이다”(民以食为天)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중국인들에게도 먹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우리에게 『史記 사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사마천의 이 말은, 중국 사회에서 식(食)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줍니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잘 이해 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고조선에서 찾듯이, 중국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상나라(商)와 하나라(夏)에서 찾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중국인들은 어떤 식재료를 주식으로 삼았을까요? 이 시대와 관련된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五谷丰登(오곡이 풍성하게 알곡을 맺다), 五谷杂粮(오곡 등 각종 곡식)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오곡이 주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곡(五谷)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사료(史料)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편적으로 ‘稻黍稷麦菽’(쌀, 기장, 조, 보리, 콩 종류)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이 가운데 당시 중국인들은 ‘기장’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기장을 으뜸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시경(诗经)』에 수록된 「硕鼠(클 석, 쥐 서: 커다란 쥐)」라는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시는 지나치게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는 사람을 ‘커다란 쥐’에 비유한 시입니다.
『诗经』의 「硕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硕鼠硕鼠 无食我‘黍’”
(큰 쥐야, 우리가 기른 기장을 먹지 말아다오)
~생략~
“硕鼠硕鼠 无食我‘麦’”
(큰 쥐야, 우리가 기른 보리를 먹지 말아다오)
~생략~
“硕鼠硕鼠 无食我‘苗’”
(큰 쥐야, 우리가 기른 곡식을 먹지 말아다오)
(苗는 본래 ‘싹’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곡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한자입니다)
이 시에서도 기장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글에서 소개했던 쭝즈(粽子) 역시 본래는 이 기장으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모함을 받아 상심한 끝에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자살하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장으로 밥을 지어 강물에 던지며,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 대신 그 밥을 먹기를 기원하였는데, 점차 세대를 거치면서 모양을 만들어 지금으 쭝즈와 같이 밥을 뭉쳐 던져 주었다고 합니다.
중국역사에서 오곡중 기장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 보았는데요 다음시간에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쌀과 보리가 아닌 조(稷)와 콩(菽)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