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by 김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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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의 날 공휴일에 칼립소는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18년 7개월을 채운 삶을 이렇게 마감했다. 근래 알갱이 사료를 먹지 못해도 습식사료는 잘 먹었고, 캔 따는 소리만 들려도 빨리 대령하라며 야옹거리며 재촉했던 게 불과 엊그제이다. 초고령 나이인 만큼 몸도 마르고 근육도 빠지긴 했어도 여전히 소파나 캣타워 오르는 것도 문제없었고 홍채도 반짝반짝해서 여전히 내 눈에는 귀여운 내 새끼였다. 이랬던 칼립소가 3일 전부터 먹는 양이 확 줄더니, 100g도 안 되는 습식사료를 이틀이 지나도 다 먹지 못했다. 게다가 사흘 밤 내내 내 곁에는 오지 않았다. 혼자 구석에서 자신의 담요 위에 앉아 있고 내가 쓰다듬어주면 그제야 그르렁 거리며 기분 좋음을 표현할 뿐. 주말 끝나자마자 동물 병원 예약 잡아서 체크 한 번 해야지 하고 다짐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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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방학이라 다른 가족들은 시댁에 가 있고, 예정된 일거리를 마치고 뒤늦게 합류하려던 공휴일 아침, 앙제로 내려가는 기차 시간표에 맞춰 집 청소도 하고 짐을 싸려던 차였다. 칼립소는 숨을 이상하게 쉬기 시작했다. 혀를 내밀고 입을 열며 온몸이 들썩거리는 거다. 종종 구강으로 호흡하는 걸 보았지만 이번처럼 혀를 길게 내밀고 숨 쉬는 거는 처음 보는 거라 덜컥 겁이 났다. 당황한 나는 왜 그러냐는 말만 연발하며 립소를 안았지만 오히려 그 포즈가 더 불편했는지 가슴은 더욱 격하게 오르내렸다. 조심스레 다시 내려놨더니 칼립소는 구석에 숨어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숨은 조금 전보다 안정된 듯 입은 다물었어도 온몸이 요동치는 건 여전했다. 이미 부모님 댁에 내려간 애 아빠까지 동원해 집 근처 동물 병원 응급실 전화를 돌렸고 연락이 닿은 한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대기하고 있는 동물들은 많았지만 칼립소의 과호흡, 나이를 감안한 응급실에서는 우선으로 진료를 해줬다. 도착할 당시 상태로는 피검사도, 엑스레이도 안 되는 상태라 산소호흡기를 끼고 상황을 지켜본 뒤 검사를 하겠다는 병원 측 진단에 보호자는 집에서 대기하라 지시했다. 나는 차가운 병원 케이지 안에 홀로 두고 병원을 나섰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 무거운 발걸음에도 한 끼도 먹지 않아 시장기가 도는 내 몸뚱이가 혐오스러웠다. 아랍 슈퍼에서 초코바를 하나 사 먹고 집에 돌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 위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병원에서 제대로 돌봐주긴 하는 거야. 왜 보호자를 집으로 보내는 거지? 숨만 이상하게 쉬었을 뿐 제 발로 이곳저곳을 슬렁슬렁 다녔잖아. 완전히 기력을 잃은 것도 아닌데 괜히 낯선 공간에 둬서 칼립소를 더 스트레스받게 하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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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플 정도로 누워서 잡생각과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하다 밤 9시 반,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 칼립소는 여전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검사도 무의미한 상황이라 편히 보내주는 게 낫겠다는 의사의 통보였다. 심장질환으로 그들은 예측했다. 어젯밤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칼립소와의 이별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몇 날 며칠 앓은 것도 아니고 노환으로 기력을 잃은 것도 아니었는데! 집에서 입던 옷 위에 패딩을 걸치고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산소호흡기를 뗀 칼립소는 여전히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며 숨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완전히 무너졌고 다리에 힘이 풀려 진료실 바닥에 주저앉은 내 곡소리 같은 오열은 온 병원에 울려 퍼졌다.

몇 분간 날 달래주던 수의사는 안타깝지만 보내줄 준비를 하자며,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요청하고 차분하게 마지막을 위한 주사를 준비했다. 총 두 번의 주사를 놓을 텐데, 첫 번째 주사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것. 두 번째 주사는 편안한 잠에 들게 하는 주사란다. 첫 번째 주사를 맞고 아직 숨이 남아 있을 동안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지만, 수의사는 그 순간이 칼립소에게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라며 되도록 빨리 편안하게 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막상 칼립소와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지만 머리는 하얘지고 할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내뱉을 수가 없었다. 쓰다듬는 내 손길에 칼립소는 눈을 꿈벅꿈벅하기도, 고개도 살짝 돌렸지만 이내 온몸이 축 늘어졌다. 핑크빛 주사액이 담긴 거대한 주사를 놓자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칼립소의 심장은 멈췄다. 몸은 뻣뻣해지고 있어도 체온은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여전히 따뜻한 칼립소를 두고 나는 병원 밖을 나와야 했다.

우리의 마지막 30분이 차가운 병원 진료대가 될 줄이야. 지난 이틀 내내, 특히 어제는 야간까지 일하느라 제대로 쓰다듬어 주지도,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이렇게 허무하게 작별을 하다니. 진료실 밖, 대기실에서 내 울부짖음을 그대로 들은 사람들은 문밖으로 나가는 나를 보며 꾹 입을 다물고 숙연한 채 자신의 반려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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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정이 다 되어가는 어둑어둑한 거리에는 할로윈 장식이 가득했다. 서늘한 동네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한 생각만 자꾸 반복해서 든다. 칼립소는 18년의 묘생 중 나와 함께했던 13년이 행복했을까? 내겐 힘겨운 타지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아이 덕분이었다. 부족한 나를 집사로 간택해 주고 집에 돌아오면 야옹야옹 반겨줬던 가족 이상의 존재. GE가 태어나면서부터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는데 칼립소는 초고령 묘가 되어 외롭게 삶과 죽음을 오고 갔을 생각을 하면 맘이 미어진다. 깊은 밤, 종종 빈 벽을 보며 울던 그 하울링이 고통을 견디지 못한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숨기고 구석으로 숨어버린 고양이의 그 본능마저도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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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칼립소와 며칠은 더 함께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조차도 인간의 미련이겠지. 무지개다리 너머에서는 평안하길 바랄게. 내 오랜 친구이자 가족인 칼립소. 고마웠고 사랑해.

7583955360_IMG_1185.JPEG 포스팅 내 립소의 사진들은 시간을 거슬러 내려간다. 아래로 갈수록 더 어린 날인 셈.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시간 앞에서, 허망한 자만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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