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정 Sep 18. 2022

2. Rest of Piece

말랑한 우주의 토끼와 거북이

  여기. 눈이 멀만큼 어둡고 끝을 상상하기 무서울 만큼 커다란 우주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주는 말랑해서 시간도 공간도 잘 구부러지지요. 


 그곳에 토끼와 거북이가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경주를 시작합니다. 그것이 동화의 법칙이니까요. 하지만 우주의 법칙에 중력은 없어서, 궤도를 돌거나 둥둥 떠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토끼는 박차를 가해도 가볍게 거북이를 제치고 달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다 거북이를 앞질러도 그것은 토끼가 빠른 탓이 아닙니다. 구부러진 시간의 무릎을 밟고 점프한 덕분이지요. 점처럼 보이던 작고 하얀 행성에 도착하자 달리기에 피곤해진 토끼는 잠이 들고… 


 여전히 거북이는 꾸준히 엉금엉금 우주를 헤엄칩니다. 왼 다리와 오른 다리를 휘젓습니다. 그러나 그의 갈퀴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토끼는 저 멀리 있고, 힘이 빠져 다리를 늘어뜨리자 오히려 토끼를 향해 밀려갑니다. 토끼를 역전하다가도, 등 뒤의 중력에 당겨져 끌려갑니다. 토끼가 잠에서 깰 때까지, 거북이는 결승선에 닿지 못했습니다. 결승선은 어디 있는 걸까요? 우리는 우주의 어느 좌표에서 헤엄치고 있는 걸까요? 

 그들은 의심을 품습니다. ‘왜 우리가 이곳에서 경주를?’  



 

 작은 별 무리가 흘러넘치는 은하수가 다가옵니다. 둘은 별의 물살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우주 먼지로 조각배와 노를 만들어 은하수를 건넙니다. 태양이 다가와도 겁먹지 않고 선탠을 합니다. 그러다가 토끼와 거북이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들은 사랑을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사랑은 그들의 경주만큼이나 무의미합니다. 그만큼 영원하겠지요. 

어느새 태양은 저 멀리 가버리고, 이 별 저 별의 중력을 겪지만 끝내 우주에 남은 둘은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그렇게 그들은 쎄쎄쎄를 합니다. 두 손이 맞닿고 두 눈이 맞닿을 때마다 우주에는 별이 하나씩 없어집니다. 얼마나 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찰나였을 겁니다. 시간은 말랑말랑하고… 게다가 사랑할수록 짧아지니까요.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저 멀리서, 다 헤진 붉은 리본이 떠내려옵니다. 그것이 경주의 결승선이라는 사실은 그들 기억에 희미해져 있을 겁니다. 호기심 많은 토끼는 리본을 건드립니다. 

 

 그러면 경주가 끝나고, 토끼는 우승할 것입니다. 


 토끼에게 우승 상품인 금빛 트로피가 건네집니다. 토끼가 트로피를 움켜쥐자, 트로피는 금빛 로켓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토끼는 로켓에 매여 어딘가로 향합니다. 그곳은 달입니다. 달에 착륙한 토끼는 매캐한 우주 먼지에 둘러싸여 울기만 할 것입니다. 거북이가 그리울 것입니다. 거북이도 마찬가지로 이 난데없는 상황에  머리가 빙글 돌 것입니다. 그래서 거북이도 울 것입니다. 

그 눈물과 소리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깊은 아우성을 만들어 낼 거라는 것도 모르고.


 그렇지만 달에는 달토끼가 있을 것입니다. 달토끼들이 곧 우주 먼지에 둘러싸인 토끼를 찾을 것입니다. 찾아서 절구 방망이 쥐여주고 떡 찧는 법 알려줄 것입니다. 토끼는 곧 울음 멈추고 친구들과 함께 떡 찧으며 살 것입니다.

 근데 거북이는 무엇을 할까요, 이제? 이곳저곳 흘러 다니다 이끌리는 행성이 생겨 그곳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중력을 뿌리치고 계속해서 우주를 흘러 다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을 살겠지요. 사랑이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쎄쎄쎄하는 우주거북과 우주토끼 from @puppet_tommy


매거진의 이전글 1. 소단원의 막을 내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