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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정 Nov 23. 2021

2. 옮겨 적은 일기가 노래가 되었다.

손서정 첫 싱글 <같은지구> 작업기

 앞선 글에 공개했던 <같은지구 ver. Denmark>를 쓰고, Musik Og Teaterhøjskolen 재학 중 덴마크에서 공연을 몇 번 했다. 다들 대체 무슨 가사냐며 궁금해했지만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일단 설명하려면 한국의 pear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기에...

시인 차도하와 함께 했던 <목소리 여름호> 메일링에 노래 데모와 라이브 영상, 그리고 짧은 글을 보내며 한국에도 노래를 전했다. '메일링 서비스가 대박이 나서 그 수익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덴마크 Totlund 지역 신문에 실린 서정 공연 사진

 짧은 덴마크 유학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공연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연애도 했다. 애인은 라이브 공연만 하는 나와는 다르게 로직(음악 제작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내 음악을 음원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걔가 음원을 내려고 한다길래 나도 음원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이 때인가보다 했다. 14살부터 만든 노래들을 꺼내보았다. <같은 지구>를 가장 먼저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덴마크에서 느꼈던 세상이 각별했기 때문이다. 와중에 녹음을 해주겠다는 H님을 만났다.

 

  일단 녹음 날짜를 잡아놓고, 편곡을 시작했다. 내 일기장을 옮겨 적은 노래 <같은 지구>를 평생 박제될 음원으로 내려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내가 보았던 세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나 이해했으면 했다. 같이 작업실을 쓰는 지은에게 <같은 지구>를 들려줬다. 지은은 뭔가 노래가 끝나는 느낌이 안 든다고 했다. 그리고 가사 말미에서 왜 북유럽의 해가 지지 않는지 궁금해했다.(-북유럽 여름에는 해가 안 져! 이 날이 미드섬머 날이었어서 새벽까지 하늘이 밝았어. -그래? 나는 몰랐지!) 그래서 코러스를 더했다. 코러스에는 가장 중요한 뜻을 담고 싶었다. 내가 그래서 이 노래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생각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대로 두어도 되는 세상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서로 상처를 받지만, 그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추가된 코러스는 이렇다.

같은 지구에 있어도
함께 세상을 느낄거여도
서로는 서로의
비누방울 안에서

 



 그러나 이렇게 코러스가 완성되고 나니, 왠지 우울해졌다. 이렇게 평생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냉소적인 노래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의 비눗방울 안에 살더라도, 그게 꼭 나쁜 게 아닌데. 그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할 텐데. 비눗방울을 불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반짝거리는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 부분의 가사를 조금 바꿨다.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들로 시간을 나눴고
커튼을 치고 등을 돌려봐도
햇빛은 같은 이불속에 있었네

 그리고 마지막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는 지구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래서 마지막에는 합창을 넣기로 했다.


 이렇게 6분 30초의 대곡이 완성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변인들에게 곡을 들려주었다. 좋은 평도, 나쁜 평도 있었다. 이번 싱글 준비를 지켜보던 더보울스(The Bowls)의 서건호가 노래가 너무 길다며, 좀 자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의 가사를 빼도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 거다. DOF2D에게 전화해서 징징거렸다.(언니 나 어떡하지... 내가 만든 이 가사 어느 부분도 자를 수가 없어... 이 노래 아무도 안 들으면 어떡하지...) 그러자 다음날, 언니가 과감하게 벌스의 한 부분을 뺀 <같은 지구>를 들려주었다. 생각보다 음악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빈 이야기를 메꿔야 할 지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노래의 뒷부분에 백보컬을 추가해 내가 벌스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완성된 <같은 지구>의 가사 최종본이다.


<같은 지구> 가사 최종본

스시 사쿠라 스프링롤 스튜 스튜
스시 사쿠라 스프링롤 스튜 스튜

생각해 보지도 않은 말을 말했다 말했다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세상을 말했다 말했다
한 개의 거짓도 없이 말했다 말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에게 말했다

하나를 말하면 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는 노란색 동그랗고 하얀 꽃
밤은 검은색 반짝이는 작은 별
겨울은 함박눈과 칼바람
여름은 쏟아지는 장맛비

같은 지구에 있어도
함께 세상을 느낄 거여도
서로는 서로의
비누방울 안에서

배는 노란색
밤은 검은색
겨울은 함박눈
여름은 장맛비

시골의 기숙사
커다란 민들레
겨울의 장맛비
북유럽 자정의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들로 시간을 나눴고
커튼을 치고 등을 돌려봐도
햇빛은 같은 이불속에 있었네


가사에 등장하는 커다란 민들레. 덴마크 민들레는 유난히 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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