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Heinrich Marx(이하 맑스)를 부정적으로 말할 때...
Karl Heinrich Marx(이하 맑스)를 부정적으로 말할 때 자주 인용되었던 말이었다.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무자비한 공산당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말의 앞뒤를 자름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게 된다.
흔히 오해받는 맑스의 말 중 하나가 바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맑스시대(19C)에 아편은 마약이 아니라 진통제였다. 마르크스 자신도 엉덩이의 종기 때문에 아편을 진통제로 복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종교를 어떻게 묘사했는지는 아래를 참고하기 바란다. “인민의 아편” 전체 구절이다. 마르크스의 종교 관련 입장이 머리 꼬리 다 잘린 채로 얼마나 왜곡돼 왔는지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영혼 없는 세계의 영혼”이라고 인정했단 말이다. 인간의 본질이 참된 실재를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종교는... 인간 본질의 판타지적 현실화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반대하는 투쟁은 간접으로는, 그 영혼의 향기가 종교인 세계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천대받는 사람들의 탄식이요, 몰인정한 세계의 인정이요,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그것은 대중의 아편이다. 행복에 대한 미망을 대중에게 주는 종교를 폐지한다는 것은 대중의 현실 행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조건에 대한 미망을 버리라고 대중에게 요구하는 것은 미망이 필요한 조건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가 그 후광인 현세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그러니까 현대어로 번역하자면 ‘종교는 인민의 진통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위의 참고 자료를 보아도 그렇고 맑스의 사상은 철저히 유물론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종교가 마약(=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이든 진통제(=종교의 순기능)든 결국은 종교를 통한 위안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지향한 발언일 것이다.
나는 종교에 대하여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개인적으로 종교서적에 대한 연구는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구약성서, 탈무드, 불경, 코란 등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수메르 신화 정도의 대서사시를 읽는 느낌이랄까? 초기 인류는 제정일치 사회가 많았다 보니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많으면 역사적인 식견도 넓힐 수 있고, 세계 다양한 민족들의 성향을 유추하여 알 수 있으니 꽤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것들을 ‘알아간다’라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별개의 일인듯하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불안]에 보면 인간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소중 하나로 종교에 대한 귀의를 들었는데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고 그런 존재의 불안에서 오는 것을 종교로 해결할 수 있다면 나름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종교에 대한 나의 입장은 ‘알고 싶지만 믿지는 않겠다’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