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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서 Jun 18. 2020

재개봉으로 돌아온 레옹, 《레옹 디 오리지널》을 보고

영화 《레옹》 감상평 및 분석


《레옹》 (Léon, 1994)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가는 킬러와 혼자가 되어버린 소녀가 함께 커가는 법"


*영화 전체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유용하게 쓰고 있는 앱, 왓챠가 《레옹》이 재개봉했단 소식을 알려줬다. 예전부터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영화인지라 소식을 접하자마자 상영 여부를 확인했으나 이 근처는 재개봉 작을 상영관에 잘 들여놓지 않기 때문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마침 시험을 치는 날, 시험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영화를 상영하다니. 시험공부로 고생한 나를 위해서라도 이날은 어떤 내용일지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었던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예매했다. 



  솔직히 영화를 감상하기 전까지 《레옹》에 대해 어떠한 사전 정보도 알지 못했다. '킬러 아저씨와 소녀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개요만을 알고 있는 정도였다. 《레옹》의 인트로는 레옹이 사는 도시 뉴욕을 화면에 담는 것으로 시작한다. 뉴욕의 우거진 숲과 빛나는 강 너머로 보이는 고층 건물을 비추다 천천히 줌인하며 사람들과 자동차로 복작거리는 길거리로, 곧 순식간에 레옹의 일터로 파고든다. 마치 저격수가 머나먼 곳에 있는 목표 대상을 향해 스코프를 당기는 것처럼 매력적인 영화 속으로의 인도 방식에, 도입부부터 순식간에 《레옹》이 사는 세계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레옹은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비정한 도시의 킬러다. 그는 비정한 도시에서 비인도적인 직업을 가지고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본질까지 비정한 것은 아니다. 그 첫째로 킬러로서 그의 철칙은 아이와 여자는 사양이라는 것, 둘째는 그가 매일같이 정성 들여 관리하는 식물이 있다는 점이었다.


  《레옹》에서 의미 있게 활용한 소재 중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구멍'이다. 영화 초반부 총격전에서는 총기 난사로 너덜너덜하게 구멍이 난 벽이나 문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숭숭 뚫린 작은 구멍들 너머로 레옹이 상대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러한 레옹에게 언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다.


  동시에 구멍은 레옹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레옹은 언제나 이 구멍 너머로 세상을 바라본다. 총알 구멍이 난 벽이 그렇고, 저격총의 스코프가 그러하며, 그가 낀 선글라스와 레옹의 집 현관문 구멍이 그러하다. 이처럼 레옹과 구멍은 레옹과 세계의 분단을 의미한다. 그는 언제나 세계에 한 겹 벽을 두고 지내는 사람이며 구멍 너머로만 타인을 바라보는 관찰자 역할을 한다. 그는 선글라스를 일상 속에서 쉽사리 벗지 않으며 잠들 때조차도 그것을 착용한다. 이는 신분과 그의 상태를 가릴 수 있게 하는 도구이며 타인도 그를 한 겹 너머로써 바라보게 하는 벽이다. 그의 얼굴이 온통 거칠한 수염으로 뒤덮일 때까지의 세월 속에서 그의 내부에 있는 존재는  레옹이 아끼는 화분뿐이다. 




  초반부의 레옹은 가족에게 학대당하는 마틸다가 신경 쓰이면서도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마틸다를 바라보기만 할 뿐인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 레옹이 마틸다의 관찰자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일가족이 몰살당해 쫓기는 마틸다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서다. 마틸다는 문 너머에서 레옹에게 살려달라 애처롭게 빌고 레옹은 벽 너머에서 난감해한다. 결국 레옹은 아이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마틸다를 자진해서 집 안으로 들이게 되고 마틸다는 레옹의 벽을 넘은 유일무이한 인간이 된다. 언제까지고 누군가와 한끝의 인연도 엮일 일 없이 고독하면서도 노련하게 일생을 보낼 줄 알았던 레옹과 갈 곳 없는 어린 소녀 마틸다는 그렇게 동거하게 되고 둘의 세계는 맞물리기 시작한다.


  레옹은 사람과 단절된 세상을 살아왔기에 어른이면서도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어리숙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마틸다는 어리지만, 세상의 잔혹한 부분을 너무 빨리 깨달았다. 마틸다는 동생을 죽인 상대에게 복수하기 위해 킬러가 되고 싶어 하며 사람을 향해 거리낌 없이 총을 겨눌 만큼 세상을 매정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을 잃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마틸다의 생애에서 레옹이 유례없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 나이다운 순수함을 보이는 마틸다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아이면서도 세상을 보는 법을 깨달은 마틸다는 화분을 애지중지하는 레옹에게  정말로 사랑한다면 식물이 화분을 벗어나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단 말을 던진다. 실제로 레옹은 하루의 시작을 화분을 창가로 옮기는 것으로 시작하며 매일 같이 정성스레 모든 이파리를 닦아준다. 심지어 아기 대하듯 화분을 안고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서 화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먼저 화분은 레옹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는 레옹과 닮았다.


또한 세상이란 넓은 공간에서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레옹처럼, 화분 속 식물도 화분이라는 벽에 둘러싸여만 있어서는 완전히 성장할 수 없다.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큰 세계가 필요하며 다른 요소들과의 상관관계를 맺어야 한다. 마틸다가 한 말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레옹이 화분을 정말 사랑한다면 갇힌 세계 속의 화분을 안고 다닐 게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맛보게 해줘야 한다. 즉, 식물이 화분을 벗어나는 순간은 레옹의 성장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후반부의 레옹은 지시에 의해 철과 같이 움직이던 초반부와는 달리 마틸다라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킬러로서 움직인다. 레옹은 마틸다와 헤어지기 전 '나도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어'란 말을 남기며 화분을 마틸다에게로 넘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화분의 의미는 사랑이다. 화분은 레옹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을 쏟아부으며 기른 사랑의 결정체다. 비정한 킬러였던 레옹은 화분 밖에 있는 마틸다를 들이면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배워나가며 성장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한 레옹은 마틸다에게 자신의 사랑, 화분을 넘긴다.


  위기를 한고비 넘긴 레옹은 방독면을 벗은 맨얼굴로 벽이 허물어진 세상에 발을 내딛으려 하나,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나가기 직전 노만의 손에 치명상을 입는다. 레옹은 화분 밖 세계를 체감한 것을 넘어 그 세계를 마틸다와 함께 제대로 경험하고자 했지만,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 속에서 노만 일당과 함께 자폭한다. 그렇게 건물 밖 환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눈에 담은 것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된다. 마틸다의 복수와 함께 후에 일어날 보복을 막기 위해 레옹이 노만과 자폭하는 모습은 레옹이 마틸다를 얼마나 아끼는지, 마틸다를 얼마나 그의 마음속으로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영화의 후반에서 마틸다는 킬러가 되는 대신 학교를 찾아가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모색한다. 마틸다는 처음엔 학교를 단순히 몸을 뉠 수 있는,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장소로 삼아 처음엔 거짓으로 점철된 말만을 내뱉는다. 그러나 진심 어린 원장의 걱정에 마틸다는 그제야 진실한 사정을 털어놓고 학교 원장은 마틸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제 레옹은 이 세상에 없지만, 마틸다는 레옹처럼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 줄 또 다른 가족 집단으로의 첫걸음을,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리하여 마틸다는 볕 잘 드는 학교 정원 한 편에 화분을 심는다. 레옹이 성장함과 동시에 마틸다도 성장한 것이다.


  마틸다가 식물을 옮겨 심은 직후 흘러나오는 음악은 쓸쓸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면서도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 든다. 레옹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정말이지 딱 들어맞을 그런 멜로디다. 이와 동시에 레옹을 떠나보내고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을, 레옹은 맞지 못한 햇빛을 대신해서 맞는 마틸다의 상황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레옹》 하면 이 노래를 떠올리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일 것이다.  《레옹》 그 자체를 녹여낸 음악이 영화 마지막 장면의 햇살처럼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것이다. 





  원체 아이와 어른이 서로에게 없는 것을 배우고 보완하며 함께 성장하는 내용을 좋아하는데 감독을 거쳐 재개봉한 《레옹》인지라 레옹이 마틸다에게 갖는 감정을 가족애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레옹》은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가는 킬러와 혼자가 되어버린 소녀가 함께 커가는 법을 보여준 영화다. 햇볕을 쬐는 마틸다가 마냥 슬퍼 보이지 않아서 마지막 장면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틸다가 뿌리를 내리고 넓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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