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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Mar 18. 2022

대들보, 기둥, 지붕이 “치매”에 사정없이 흔들리다

Michelle Lyu,  여린 삶의 기억들

대들보기둥지붕 치매에 사정없이 흔들리다 

   

아마, 이 마음이 꽤 오래갈 듯하다. 


큰 언니!!! 

문을 여는 조카를 따라 현관에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이미 현관 앞에 나와 있는 큰언니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동생 왔니?” 작은 언니가 말하자, 

“막내 왔구나! 막내!” 이어 큰언니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에 이어 신발도 신지 않은 언니 발이 현관 타일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거실에 들어선 막내는 먼저 작은 언니를 껴안고, 이어서 큰언니를 꼭 껴안는다. 양팔을 둘러 큰언니를 안자 갑자기 가슴이 쿡 저려오고 눈에 눈물이 고인다. 여였다. 두 팔에 안긴 큰언니 몸이 너무 왜소하다. 


막내는 제기동 한옥에서 태어났다. 

유난히 나이 차이가 많았다. 형제자매들과. 막내는 집안의 늦둥이였다. 아버지는 사내아이를 바랐지만 태어난 막내는 여자아이였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늦둥이, 막둥이 동생이 너무 귀했다. 그들에겐 막둥이가 사내아이이든 여자아이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나이 차 많은 막내가 집안의 웃음이고 꽃이었다. 막내만 보이면, 그것이면, 모두는 그저 세상만사 오케이였다. 


막내는 큰언니의 첫째 아들, 큰 조카와 엄마 젖을 한쪽씩 먹고 자랐다. 막내와 큰언니의 첫째는 함께 젖을 먹는 젖먹이 친구이자 이모와 조카 사이였다. 공의(公醫)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보건소 의사로 진료를 해야 했던 큰 형부(남편)를 따라다니느라 큰언니는 첫째 아들을 친정 엄마에게 맡겨야 했다. 

당연히 막내는 큰 조카와 엄마의 젖을 한쪽씩 나누어 먹으며 성장했다. 그래 유난히 막내는 동세대를 사는 큰 조카와 가까웠고, 함께 학창 시절, 대학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다.


큰언니를 안으며 막내가 울었다. 온 식구가 그 모습을 보고 숙연해져 말을 아꼈다. 큰언니는 막내에게 엄마 대신이었다. 엄마를 불시에 잃은 막내에게 큰언니는 지붕이자 기둥이자 대들보이자 늘 편안하고 완전한 그늘이었다. 

아버지 나이가 되자, 아버지처럼 꼭 그 나이에 꼭 그렇게, 아버지 대신 막내를 귀히 하던 세상에 하나인, 유일한 오라버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언니들은 더욱 막내를 싸안았다. 세상에 남겨진 것은 오로지 세 자매였다. 언니들이 어버이가 되어 막내를 돌봤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막내는 살았다.


막내는 구순이 내일모레로 다가오는, 그럼에도 아직도 병원을 운영하시는 형부를 소파에 앉혔다. 그 곁에 똑같이 두 살 터울로 구순의 형부를 뒤따라오는 큰언니를 앉혔다.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던 큰언니가 이내 묻는다. 

‘막내, 언제 왔냐고, 언니네 집 와 봤느냐고’. 

이미 맨발로 현관까지 나와 막내를 맞이하던 큰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미 치매로 큰언니의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한지 두 해 전이다. 

“그럼 갔었지. 언니!” 작은 언니가 얼른 답한다. 

절대로 꽃단장을 안 하고는 외출하지 않던 큰언니였다. 이성적이고 사려 깊던 큰언니가 헐렁한 저지 바지를 입고 있다. 

‘아! 언니가’,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신문을 보면 신문 모서리가 한 귀도 어긋나지 않게 가지런히 정리하고, 식탁을 차리면 단 하나도 다른 그릇 종류를 허락지 않았고, 색깔 맞춰 옷을 코디해 있었으며, 이미 그 옛날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돌아올 때는 반드시 그 나라에 기념품을 챙겨다 주었던 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큰언니와 작은 언니, 두 자매와 

그 옆에 늘 막내에게 “우리 처제, 우리 딸!’이라며 자신의 큰 아들과 똑같이 용돈을 주시던, 

귀가 어두워져 보청기를 끼신 형부가 백치 어린애처럼 웃고 있었다. 

막내는 말없이 손으로 언니의 하얀 백발을, 언니의 주름진 손을 쓰다듬었다. 


탄생 순서대로 두 살 터울로 같은 세대를 사는 큰 질부, 작은 질부, 큰 조카, 작은 조카, 조카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가 모두 한 상에 둘러앉았다. 음식으로 꽉 찬 생일상 중앙에 언니와 형부가 앉았다. 큰언니와 형부가 하얗게 웃었다. 작은 언니도 함께 웃었다. 큰언니 생일을 위해 모인 모든 가족이 함께 웃었다. 함께 웃으며 식사를 했다. 


생일상이 물리고 케이크와 과일로 준비한 다과상 중앙에 다시 언니와 형부를 앉혔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큰언니

생신 축하합니다.’ 

노래가 잘 불러지지 않았다. 작은 조카가 ‘슬픈 얘기는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생일상에 모두 말없이 둘러앉는다. 둘째 조카와 큰 질부가 동시에 조용히 묻는다. 


“이모, 요새도 강의 나가시지요?” 

“응, 간헐적으로...” 막내는 답을 하며 눈물을 감추려 허공을 본다.


모두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이 마지막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레이크 넨(Reike Nen)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큰 조카의 딸, 홍미가 마음을 안다는 듯이 막내의 손을 꼭 잡는다. 차마 아빠랑 동세대에 있는 막내를 이모할머니로 부르기 어려워 호칭을 하지 않으며, 늘 마음으로 얘기한다. 큰언니까지 4세대가 모였다. 손녀의 탄생으로 할아버지가 된 큰 조카도 극히 말을 아낀다. “막댁(큰조카가 막내 이모를 부른 호칭)아 살 좀 빼라.” 그 한 마디에 온 마음이 실린 것을 막내는 안다.


돌아오며 막내가 생일 봉투를 내민다. “넉넉지도 않은 데 왜 이런 걸 하느냐”라고 이제 다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온 큰언니가 채근을 한다. 막내가 집안에서 제일 넉넉하지 못했다. 동년배 조카들 모두 그 사실을 안다. 상을 차린 둘째 질부가 음식을 싼다. 

‘이거 모두 다 어머님(큰언니)이 막내 이모 주라고 준비한 것’이에요. 딸기 두 박스, 한라봉 한 상자, 고기 두 박스, 바나나 한 다발, 인절미 한 봉지, 바람 떡 한 봉지 그리고 둘째 질부가 준비한 도토리묵까지 음식 보따리가 어마어마하다. 이 음식을 준비할 때 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려 아파온다. 모든 게 서글프고 먹먹하다.


현관까지 따라나선 큰언니가 말한다. 

“막내야! 곧 또 보자. 곧 또 보자.” 

퀭한 눈으로 구순이 내일 모레인 언니와 형부가 문을 닫지 못하고 막내를 본다. 문을 닫지 못하고 자꾸자꾸 본다. 

‘앞으로 내내 언제나 꼭 오늘만큼만 정신을 가져 주세요. 꼬옥!!!’ 

막내가 마음으로 말을 건네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주차장까지 나온 큰 조카가 “운전 조심해! 살 좀 빼고...” 다시 걱정스럽게 채근하며 안전을 당부한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자꾸 우는 막내를 따라 작은언니도 운다. 

“그만 울어!!! 그만!!”, “막내야!!!” 사이드 밀러에 비친 작은 언니가 멀리서 손을 흔든다.


모두 늙어간다. 모두 낡아간다. 모두 세월을 지난다. 젊고 찬란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치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그 이름이 한 집안에 대들보, 기둥, 지붕을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사정없이 흔들어대고 있다. 너무 아프게. 너무나도 서글프게. 


집에 도착한 막내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핸드폰이 울린다. 

“막내 이모 잘 도착했어?”, 

“그래, 수고했어...” 둘째 조카 영진이가 귀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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