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chelle Lyu Oct 15. 2023
엠마 보바리는 몽상가이다. 그녀는 의사 찰스와 결혼함으로써, 그녀의 아버지 곁에서 살아 온 지루한 삶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결혼 생활은 그녀가 기대했던 사랑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이 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결혼 생활 밖에서 사랑을 추구했고, 문학사의 가장 비극적인 삶을 펼치기 시작했다.
Deep down in her heart, she was waiting for something to happen. She did not know what it would be, what the wind would blow to her. But every morning when she awoke, she hoped it would come that day. She listened to every sound, watched every new face in the street outside her house fir a sign, and could not understand why nothing happened. And then at sunset, sadder than ever, she would long for the next day to come.
그녀는 마음 깊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바람이 그녀에게 불어 닥칠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러한 바람이, 그러한 날이 오기를 바랐다. 그녀는 내면에서 내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집 밖 거리 간판이 보이는 곳 모든 새로운 얼굴을 지켜보았지만, 왜 도대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해가 지면 그 어느 때보다 더 슬펐고. 그녀는 다음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원문 번역 Michelle Lyu)
시골 의사의 아내, 마담 보바리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그녀의 지루한 결혼 생활과 처해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낭만 소설을 읽거나, 창문 밖을 주시하거나, 소설에서 읽었던 일종의 열정이나 즐거움을 추구했던 꿈의 세계를 바라면서 그저 시간을 보냈다. 마담 보바리, 그녀의 남편 찰스는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너무나 점잖고 근면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찰스는 아내가 추구하는 도피와 모험을 향한 그녀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불행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찰스의 무신경은 엠마를 더욱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마침내 음악과 미술에 관한 관심과 흥미도 무두 잃어버렸다. 그녀는 말없이 멍하니 여러 날 동안 앉아 있었다. 아내의 신비스러운 침묵과 갑자기 이유 없이 자주 발생하는 그녀의 병에 대해 찰스는 아주 걱정스러웠다. 결국 찰스는 그녀를 위해 변화를 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토스테스(Tostes)에서 그의 성공적인 의료 행적을 다 내려놓고, 루앙(Rouen)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욘빌(Yonville)로 아내와 함께 이사한다.
그들이 욘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첫날 밤에, 엠마는 젊은 법조인 레옹 듀푸아(Leon Dupois)를 만나게 된다. 엠마처럼 레옹, 그도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지루하고 무분별한 생활에 불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 엠마는 그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 만났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만남보다 레옹과의 만남이 더욱더 많이 그녀의 내면을 휘젓기 시작하며 흥분되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한 감정은 처음에 그녀를 몹시 놀라게 했으나 결국, 끝내 저항할 수 없는 감정으로 치닫게 되었다.
마담 보바리는 정숙하지 못한 아내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마담 보바리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폭로하는 연구서이며, 19세기의 프랑스, 의미 없는 규칙들과 지방색이 드러나는 중류 계급 사회의 태도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마담 보바리의 저자,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사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런 분위기에서 태어난 것을 너무나 끔찍이 싫어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끊임없는 생각에 대해, 또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향한 열렬한 관심, 또 준수해야만 하는 행동에 대한 의미 없는 규칙들, 온통 그러한 것들로 자신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중산층(middle class)들의 생활과 태도를 경멸했다. 플로베르는 이러한 부류가 내보이는 일종의 텅 빈, 초점 없이 사는 존재들을 공격하며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이 플로베르에게 유진 델라마레(Eugene Delamare)라고 불리던 시골 의사에 관한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골 의사, 유진 델라마레는 아내에게 속고, 모든 것이 파괴된 후 불행하게 죽었다. <마담 보바리> 아이디어는 시골 의사, 유진 델라마레에게 영감을 얻어 탄생하게 된다. 유진 델라마레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가 유일하게 큰 영향을 준 것을 <마담 보바리>에서 찾아낼 수 있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쓰며, 스스로 아주 지친 몸부림과 투쟁을 하고 있음을 입증해 내었다. 중산층을 향한 공격 대신에 중산층을 판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 중산층에 관해 쓰기를 시도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아주 우습게 만드는 대신, 그들이 말하는 대화 방식과 생각, 자유스러운 방식으로 보이는 태도 등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플로베르는 스스로 자신을 강요했다. 그는 엠마 보바리의 비극이 천천히 펼쳐지는 비극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도록 자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지방 중산층에 관해 정확하고 세밀한 관습들을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플로베르가 그들에게 느끼는 부정적인 견해는 진실하고 명백하게 제시했다. 때때로 그의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플로베르가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에 관해 써야만 했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주 그를 화나게 했다. 이것은 귀한 시간이 가치 없게 낭비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런 결말의 구성은 그의 기분을 훨씬 더 좋아지고 만들었고, 마음의 평정 상태가 되어, 진짜 이야기로 돌아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스토리가 전개되며 플로베르에게 엠마에 대한 마음이 우호적으로 발전한 듯하다. 그녀에 대한 묘사에서 불친절하게 말하는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는 그가 만든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Madame Bovary - c'est moi!')라는 유명한 말로 아주 명확히 마담 보바리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 책을 쓰는데, 5년이나 걸린 또 다른 이유는 완벽한 스타일을 원하는 플로베르의 조심스러운 연구 때문이다. 플로베르에게 완벽함의 추구는 아주 중요했다. 그는 이미 써낸 모든 문장을 또다시 쓰기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플로베르는 ‘두 페이지를 쓰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고 친구에게 편지로 한 번 이상이라고 덧붙여 썼다.
마담 보바리는 마침내 1856년 ‘파리 리뷰’(Revue de Paris)에 일부분이 등장했다. 심리학적인 강력하고 세심한 묘사 태도와 보통 일반 사람들의 행동은 마담 보바리를 사실주의에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많은 사람들의 입을 모았다. 그러나 별로 놀랄 필요도 없이 이야기의 몇몇 장면들은, 많은 중산층의 독자들을 이끄는 잡지들은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그 잡지사들은 저자 플로베르가 작품에서 엠마의 행동으로 드러낸 도덕적 판단의 부재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들은 공적으로 불만을 나타냈고, 프랑스 정부는 공적 도덕성과 종교를 공격했다는 명목의 재판에 플로베르를 불러냈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별로 이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 그에 관한 평판이 형성될 거라고 플로베르는 생각했다. 정부는 플로베르와의 재판에서 졌다. 1847년 4월 책으로 만들어진 마담 보바리는 즉각 베스트 셀러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마담 보바리>는 문학사에서 ‘현대 사실주의 소설’의 시효가 되었다.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1821년 프랑스 루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루앙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했고 엄마는 의사의 딸이었다. 플로베르는 그 당시 병원을 방문하는, 수술과 진료를 하는 대단한 의사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사들의 실제 삶은 어린 플로베르에게 어떤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는 항상 이상하고 묘한 꿈을 꾸는 것, 낯선 땅과 역사를 읽는 것에 반항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방에서의 어릴 적 그의 불행한 생활은 글쓰기에 그를 몰두하게 했다. 13세 때,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삶에 완전히 싫증이 났을 거라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1837년 벌새(Le colibri)라는 작은 잡지에 그의 첫 번째 발행 작품이 실렸다. 그때 그는 당대에 급부상하고 있었던 사상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그에게 굉장한 영향을 준 세계에 대해 비관적인 관점을 지닌 발행인 알프레드 르 푸아테빈(Alfred le poittevin)과 친구가 되었다. 알프레드는 루이 필립 왕(King Louis-Philippe) 지배 아래 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는 힘의 시대와 영향을 즐기는 중산층을 특히 경멸하며 성장했다.
1841년 플로베르는 파리의 법학생이 되었다. 22살에 그의 예민한 신경질환 때문에 공부를 포기했고, 이것이 그에게 글쓰기를 더욱더 가능하게 했다. 1846년 1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다음 해 3월 그의 누이동생 캐롤라인이 딸을 낳다가 죽었다. 플로베르는 루앙 근처 쿠루와셋(Croisset) 자신의 집으로 엄마와 어린 조카를 데리고 돌아갔다.
1846년 7월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플로베르는 시인 루이즈 콜렛(Louise Colet)을 만났다. 그녀는 그의 연인이었고, 그들 관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1855년 헤어졌다. 1849년에서 1851년 사이에 그는 중동, 이태리. 터키. 그리스를 글 친구 ‘막심 뒤 캄프’(MAXIME DU Camp)와 여행했다. 플로베르는 당시 이미 소설 ‘성 안토니오의 유혹’(The Temptation of St Anthony)을 썼다. ‘성 안토니오의 유혹’(The Temptation of St Anthony)은 브루겔(Breughel)이 그린 유명한 회화에 영향을 받은 상상력이 풍부한 꿈같은 이야기다. Du Camp와 다른 친구 ‘루이 부예’(Louis Bouilhet)은 그 작품을 싫어했다. ‘부예’(Bouilhet)는 유진 델라마레(Eugene Delamare)와 같은 사실에 기본을 둔 좀 더 실제적인 소설을 쓰기를 제안했다. 사실 이 작품은 후에 마담 보바리 탄생에 씨앗이 되었다. 유진 델라마레(Eugene Delamare)는 마담 보바리 그 이야기에 유일한 출처가 아니었다. 다른 작품, 플로베르의 친구인 예술가의 아내, ‘루이스 프라디에르’(Louise Pradier)의 어마어마한 불행을 그렸던 ‘루포비카 부인의 일기’(The Diary of Mme Lufovica)는 엠마 보바리와 여러 면에서 아주 비슷하다.
마담 보바리 출간 후 플로베르는 명성과 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 궁정 작가가 되었다. 그의 이상에 관해 많은 것을 나눈 친구 중에는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와 조지 샌드, 러시아 작가 투그레네프 등이 있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글을 쓰는데 아주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새로운 책을 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두 권의 책, 1862년 ‘살람보’(Salammbo), 1869년 ‘감성교육’(Sentimental Education)을 썼다. 친구들이 싫어했던 그의 초창기 소설, ‘성 안토니오의 유혹’(The temptation of St Anthony) 은 1874년 발행되었고, 이 책은 젊은 Sigmund freud의 초창기 사상체계에 영향을 주었다. 플로베르는 수많은 희곡을 썼고, 그의 생애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그의 가장 위대한 책으로 묘사되어왔던 세 가지 이야기(Trois Contes, 영어: Three Short Stories 1872)를 발행했다.
플로베르가 재정적인 재난에 처한 그의 조카의 남편을 구하려고 그의 모든 재산을 포기해야만 했을 때, 비로소 그때서야 그는 오직 자신의 작품과 다른 작가들과의 우정어린 관계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그는 갑자기 1880년 5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부바르와 페쿠셰’(Bouvard and Pecuchet), 끝내지 못한 미완성의 소설을 위한 메모 노트를 남기며, 그는 그의 모든 삶을 지배했던 중산층에 대한 어리석음을 다룬 주제로 다시 한번 돌아왔다.
마담 보바리는 1933년 장 르누아르 버전(Jean Renoir's version)을 시작으로 몇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마도 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49년 빈센트 미넬리(Vincente Minnelli)가 제작한 첫 번째 헐리우드 영화였다. 주연은 제니퍼 존스와 제임스 메이슨(Jennifer Jones and James Mason)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마담 보바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거대하게 재현되어왔다. 특히 여자들은 엠마를 여성 운동의 초기 히로인으로 여긴다. 그들은 그녀의 용감함과 자유를 향한 비극적인 투쟁, 남자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세상에서 그녀가 그녀의 위치와 지위를 받아들이길 거절했던 그녀를 극명하게 추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