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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뜬 Oct 21. 2015

가끔 생각해보면 좋은 것들 -92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다.


사라져간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결국 아무리 좋았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번진 잉크 자국처럼 변하기 마련이니까.

사라져간다.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이자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오면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사라진다.’일지도 몰랐다.

사라지니까 사랑하자. 사라지니까 하나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잘 살자. 자유롭자. 행복하자. 건강하면 더 오래도록 남을 수 있으니,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 건강하자.

그래도 결국 사라져간다. 그래서 ‘사라진다.’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 때마다 마음속에서 바스락거리며 들려오는 소리들을 못 들은 척 흘려보냈지만.

사라져간다. 나 자신을 비롯해 부모도 가족도 시간에 속한 모든 것들은. 심지어 영원할 것 같았던 생각들조차도 사라져간다. 모든 것은 시간이란 강물에 띄운 나뭇잎 배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앵글에 잡힌 순간 모든 것은 특별해지고 기록이 된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 이랬었구나.’하면서 다시 그 날의 행복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날의 행복을 깨닫는 순간 오늘이란 시간도 그 날의 행복으로 함께 물든다. 그리고 소중함을 알게 된다.

사라지니까 특별한 것이므로 사진을 찍는다. 나를, 흘러가는 시간들을, 그 위에 서있는 사람들을.

별것 아닌 것 같았던 하루도 사진을 찍고 보면 참으로 특별한 하루였음을 알아간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오늘처럼, 아직 남아있는 존재처럼, 그리고 사라졌을지라도 추억만은 남아있는 시절처럼 특별함으로 이 순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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