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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뜬 Feb 10. 2017

가끔 생각해보면 좋은 것들 -107

파카 밑단을 잠그고

파카 밑단을 잠그고




똑딱. 가장 밑단 파카 단추를 잠근다. 올려도 내려도 열리는 지퍼 탓이었다.        

갈아입어야 된다는 당연함은 결코 귀차니즘을 이기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옹졸한 키덕에 파카는 지퍼를 가리고도 남는다. 오분 남짓 편의점 가는 길이었고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무심한 듯 자꾸 멈칫거리는 걸음으로 거리로 나왔을 때야 비로소 어떤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찜찜한 것들이 떠올랐다.                    

학교와 직업, 상냥한 미소는 파카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매일 건네는 인사도 파카 같은 것이었다. 열정이나 노력, 용기, 강해져야 한다는 말을 매일같이 되새김질하던 입술도 파카 같은 것이었다.        


열린 지퍼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겠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았던 부족한 자신에 대한 공허가 열린 지퍼였다. 그러니 자신을 자꾸만 수식어로 꾸며야만 했다. 친절하거나 착하거나 잘 나가는 척을 하면서 들킬까 봐 가려야만 했다. 그것도 잘 안 되면 잘 될 거야, 괜찮아라고 가리기도 했다. 잠들기 전에는 TV나 SNS를 봤다. 외로움을 느끼는 뇌를 마비시켜 공허를 가리려는 속셈이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대에게 말했던 수많은 아름다움조차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파카 같은 것이었겠다. 매 순간이 특별한 것처럼 혹은 특별할 것처럼 굴었다. 노력 없이 똑같은 판단과 행동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이야기에도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내 허벅지로 내려오는 파카처럼 본질을 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너는 너로서 살아가자. 그래서 존재 그 자체로 순간을 맞이하자. 꾸밈없는 진실한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하자. 그때서야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 상처를 보아야 꿰맬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본 시선으로 다시 모든 것들을 바라보자. 이해하거나 혹은 이해할 수 없거나,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할 수 없다면 그렇다고 말하도록 하자. 오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일을 바뀔 수 있는 계획을 할 수 있으니.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진실된 꿈과 희망을 가졌다 할 수 있겠다.


오 분 남짓 편의점 가는 길. 똑같은 풍경에 무던한 세상이지만 파카 밑단을 잠근 나만이 유난스럽게 눈치를 본다. 그러니 행인들의 시선이 유난히도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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