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좋은 인연
기나긴 구정 연휴가 끝나간다.
시댁에서는 신정을, 친정에서는 구정을 지내는 관계로 두 번의 설을 보낸다.
하지만 그만큼 분산되니 자유 시간이 길었다고 생각하자.
그동안 계엄과 시위로 만남이 조심스러웠던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지지하는 당이 달라도 넌 그래? 난 이래.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자연스레 자신의 뜻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요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이쪽, 저쪽, 심지어 중립이어도 그 어떤 쪽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설득하려는 움직임들이 가끔 보였고, 그래서 불편한 지인들이 몇 생긴 것도 사실이다.
비단 정치적 성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가계 경제도 빨간 불이 떠서 더욱 만남들이 줄어들고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말 새해같지 않다!
그런 가운데 15년이 넘도록 고운 인연을 유지하는 부부와 식사를 했다.
고3이 되는 큰 애가 3살 때 어린이집에서 만난 학부형이다.
나와 신랑보다 두어 살 더 많으시다.
꼭 한 번 뭔가 작은 도움을 드렸던 기억 때문인지 지난 세월 가족보다 더 끈끈하고 살뜰하게 부족한 우리 부부를 그렇게 챙겨주신다.
마치 친정 언니처럼, 또 (형부라고는 하지 않지만) 의사이신 부군께 거의 주치의처럼 궁금한 것들을 폭풍질문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저 노화의 한 현상일지라도 내 궁금증과 염려증을 해결해 주시고자 외국 논문을 섭렵하시면서까지 안심하게 해 주시는 00 아버님!
이렇게 우리는 주기적으로 네 명이 식사를 한다.
해마다 쌀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우리 힘내라고 고기도 사주신다.
우리도 바쁜 두 분을 위해 강남 맛집을 섭외하여 신세계를 보여드린다.
함께 건강 얘기로 꽃 피우다가 이미 20대인 큰 자녀들의 이야기를 해주시며 아직 고등학생 키우는 우리 부부를 위로해주시기도 한다.
만나고 나면 뭔가 뿌듯하고 감동의 여운이 오래 지속되는 따스한 기분...
그리고 그 만남의 기쁨은 해가 갈수록 더욱 커져간다.
아, 우리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ㅎㅎ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대화에는 그것마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
네 편 내 편 가르고 서로 험담하는 걸 자주 봤던 요즘,
더욱 힐링이 되는 만남이었다.
아낌없이 베풀어도 뒤통수 맞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그저 받기만 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그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더 깊어지는 관계도 있다.
웃프지만 상황이 어려워질 때 혹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옥석이 가려진다.
'나르시시스트(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거리두기'를 포함하여 감정관리, 건강, 힐링, 성취, 관계 등 자기돌봄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는 2025년이다.
때맞춰 트리트미 스튜디오를 서초동 카페 한 켠에 오픈했다.
자기돌봄 상담이나 교육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이 분들과 식사 후 바로 이곳에서 커피로 마무리하며, 자기돌봄 상담에 대한 방향성까지 함께 나눠보았다.
그리고 언니는 내 명함을 한 움큼 챙겨 가방에 넣었다.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 중 필요한 분들께 자기돌봄 상담을 설명하고 권하실 계획이란다.
(언니~ 영업까지?! ㅋㅋ)
나도 이런 부부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진국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네 편 내 편을 떠나 늘 사랑으로 잔소리해 주고(이 언니 잔소리 대마왕이다, 우리 신랑한테도!), 진심으로 챙겨주는 이 인연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
그래서 내가 받은 이런 느낌을 전해주는 모범적인 언니, 혹은 부부의 모습으로 한없이 받은 사랑을 또 누군가에게 흘려보내고 싶다.
인생에서 본(本)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m.Cl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