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여행하는 히피족은 아니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 간단한 말을 몸소 실감하게 된 지 6개월이 되었다. 지역에 내려와 사는 삶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귀촌 라이프,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같은 라이프들이 환상이 되었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성과 닮아 있었다. 6개월이 된 지금은 왜 정년 은퇴를 하고 시골살이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하면 답이 될까. 무작정 남해살이를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거기가 어디냐고 혹은 왜 내려가냐고 물었다. 그때 내 대답은 서울살이가 싫어서. 였다. 첫 취업이 망하고 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도. 머릿속에는 삶이 고통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밥 벌어먹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더 이상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염세적으로 변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도피처럼, 혹은 또 다른 대안을 찾고자 발견했던 게 남해살이었다. 한두 달 사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우연히 일자리를 제안받아서 집을 구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지역에서 문화 기획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불안을 채웠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골살이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생은 매번 선택의 연속이고, 불안하고 어려운 것투성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결정, 해보지 않은 삶. 도전에는 늘 불안감이 따랐고 큰 용기가 필요했다.
짧은 결심을 끝내고 남해로 입주 신고를 마쳤을 땐,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해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의아해했고, 또 한편으론 걱정했다. 아마 이곳에는 젊은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농업이나 어업 말고 뭘 할 건지 무척 궁금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지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애정을 갖고 해왔던 문화 기획이 그 시작이었다. 지역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여러 행사를 열었다. 교육프로그램, 마켓, 야외극장 등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였다. 3개월 동안 여러 행사를 같이 돌리다 보니까 무척 힘들었다. 문화는 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일했던 분은 이쪽 업계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주민분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12월이 끝났을 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다.
엄청난 환상을 갖고 시골살이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큰 일을 맡아서 해낼 거라는 기대도 사실 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건지, 내가 지금 해볼 수 있는 건지 궁금했었다. 서울의 자원과 무엇이 다른지, 왜 서울에서만 문화행사가 몰려있는지 그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프리로 문화기획 일을 하는 동시에 또 다른 밥벌이를 했다. 강사일이었다. 강사는 정말 해본 적 없는 분야인데,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고 다닌 덕분에 우연한 계기로 할 수 있었다. 영상 보조강사도 했고 글쓰기 주강사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술 보조강사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같은 기회들이었다. 과분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런 경험들 덕분에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빨리 경험할 수 있었다.
작년에 문화예술 교육을 들으면서 만난 세 명의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지역에서 문화 기획을 해보고 싶다고. 친구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다들 '아직'은 이르다고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경험이 없고, 연고도 없고, 우리는 도시 사람이었으니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상한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지금은 왜 안되지 하는. 어쩌면 그 오기 때문에 남해에서 일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사실 내가 남해에 남게 된 것도 큰 이유는 없다. 가족과 친구들이 왜 남해에 계속 있냐고 물었을 때도, 딱히 멋있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은 서울에 돌아갈 이유가 없어서 남해에 있어. 그게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6개월이 된 지금에서야, 남해에 있어야 할 이유를 고민하게 되었다. 요즘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예술을 콘텐츠로 만드는 것, 남해에 놀러 오는 여행객과, 남해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를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가 되어 '동심리'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남해에서 계속 살고 싶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남해에 남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천천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물음이자,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시작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