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정속으로 방향은 그대로
[뉴스레터 5호 2024. 11. 29]
출간 '초고'가 마무리되었을 때, '이제 다됐다'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초고를 출판사에 제출하고 갖은 미팅. '탈고'를 하기 위함입니다. 처음 기획 의도와 초고가 부합하는지, 전체 구성을 바꿔야 할지 그리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언어인지 꼼꼼히 살피는 과정입니다.
서로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서 합의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3부와, 각 부마다 3개의 장 모두 살아남아 9개 장을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추가적인 탈고에선 각주를 다는 방법, 참고문헌 삽입하는 방법과 같이 규칙을 지킨 단단한 원고로 탈고를 마칩니다.
이제 남은 건 퇴고와 퇴고 그리고 퇴고입니다.
"단순해졌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담아낼지 고민하지 않고 전체 구성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제 투입한 시간만큼 결과물로 나오는 단순한 작업의 연속입니다. 계속 읽고 오타를 찾고 문장의 어순을 바꾸는 작은 수정의 연속입니다. 작업의 흐름은 속도를 줄이지도 더 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멈춰서도 안됩니다. 나의 의지라기 보단 종이 치면 끝나는 시험과 같이, 계속 반복하다가 보면 종료될 것입니다. '이제 다됐다'는 초고의 희열과는 사뭇 다르게 퇴고는 지루하지만 평온하고 조용합니다.
초고까지 오는 여정과 퇴고는 하나의 같은 프로세스 선상에 있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에선 이 속도와 방향을 화살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벡터(Vector)라고 부릅니다. 속도는 벡터의 크기에 해당하고 화살표 끝 모서리가 벡터의 방향에 해당됩니다. 이 벡터는 360도 돌수도 있고, 3차원 공간에서는 하늘과 땅과 달과 별까지, 그야말로 모든 곳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처음 초고가 시작된 백지상태에선 이 화살표 벡터의 속도는 거의 0으로 줄이고 이리저리 방향을 탐색했습니다. 속도를 올려 봤자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거꾸로 가게 되니까 작은 속도는 괜찮아도 큰 속도는 곤란합니다. 초고에선 백지의 삭막함이 있지만 반대로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는 부푼 꿈도 동시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저곳 화살표로 찔러보면서 슬슬 속도는 올리고 방향은 크게 바꾸지 않습니다. 퇴고의 과정에선 크게 방향키를 바꾸지 않고 속도를 유지합니다. 속도의 변화는 가능한 줄여서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해야 하니까 한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