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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별 이야기

[브런치레터 10호 2025. 2. 25]

by 머신러너

우리의 경험은 절대로 공유될 수 없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조리 있게 설명해도 그것은 여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좋은 사람과의 대화를 하고 훌륭한 강연을 들은 후에 나의 경험을 나누려고 할 때면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셨으리라 믿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좋은 영상을 보고 느낀 감동을 지체하지 못하고 링크를 공유하더라도 타자에게 그 링크는 '거의 클릭되지 않는 링크'가 되기 일쑤이기도 하지요. 같은 공간에서 듣는 영화 감상이나 대중 강연 청취 또한 같은 경험이 될 수 없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느끼는 것조차 같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시간과 공간이 같아 보려도 사실은 미세하게 나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작은 차이를 무시하더라도—옆사람의 과거 경험과 나의 과거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경험을 공유한다고 하지만 실은 주체마다 다르게 경험이 쌓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 구슬의 꾸러미의 색상 조합이 다른 것 처럼,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바이트 조각이 모두 다르게 위치하는 것 처럼, 같은 내용이 들어와도 결국엔 다른 경험이 됩니다. 우리 모든 주체는 과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다른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삶의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인백색'이듯이 '백인백경험'입니다.


같은 원리로 신의 존재 또한 당신의 신과 나의 신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란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봅니다. 한 사람을 보아도 물질로서 존재함은 여지없는 사실이나,

'당신에게 그'와
'나에게 그'는
여전히 '다른 그'입니다.

나에게 신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성경책에 있는 같은 문자라도 내가 이해하는 신은, 나의 신이지 당신의 신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생각입니다. 나는 신을 알지 못합니다.─모르면 용감하다고─작은 교회 강단에 서서 내가 생각하고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것을 <창조적 신앙>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신의 이야기라기보단 '별에 별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 별 이야기도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이 나오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세계지도, 지구, 태양계, 창조의 기둥, 소마젤란 은하, 우리 은하, 인류가 관측한 가장 넓은 우주까지, 말 그대로 별의 별 이야기입니다.[1] 다음으로는 나의 존재를 체세포에서 핵, 핵 안에 염색체, 염색체 안에 DNA, DNA 안에 유전 정보인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티민(T)도 나왔습니다.[2]


그러니까, 내 자아로부터 인류가 알아낸 가장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내 자신의 신체 깊숙한 작은 세포 단위까지 넘나드는 '주체적 시선에서 객체적 시선'으로 자유롭게 시간과 공간을 늘렸다 줄였다하는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마주하는 '크리스천의 빅퀘스천'에 스스로 묻고 답하는 독백에 가까운 나의 별의 별 이야기는 기승전결 없이 그저 유유히 의식의 흐름을 따랐습니다.


흐르고 흘러서 결국에 도착한 시간과 공간은, 창작하는 시간과 창작하는 장소에 도착하면서 <창조적 신앙>이라는 주제의 작은 이야기는 매듭지어졌습니다.



앞에 서서 여러 주체적 시선을 느낀 이 경험 또한 절대로 공유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그 앞에 서는 경험은 값진 경험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청중으로서 자리에 앉아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 불편함을 견뎌주는 것 역시 감사한 일입니다. 나의 소중한 경험을 위해 그들이 참고 견뎌준 것이니까요.




[1] 나사의 웹 망원경, 역대 가장 깊은 우주

[2] 이중나선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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