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김없는 말들> 모유진, 자립준비청년 이야기
독서 모임에서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숨김없는 말들⌟ 감성적인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은 작가의 안타깝고, 괴로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작가는 돌봐줄 부모가 없어 어느 한 가정에 맡겨졌다. 이를 가정위탁아동이라고 부른다. 보육원은 다들 알 것이다. 양육한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이 맡겨지는 곳. 그런 곳이 보육원 뿐만 아니다. 한 가정에 맡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아동을 위탁 아동이라고 하며 입양과는 전혀 다르다.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위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언짢았다. 보육원은 시설보호아동이라고 하면서 왜 가정에 맡겨지는 아이는 가정보호아동이 아닌 위탁이라고 하는 걸까. 꼭 그랬어야만 했을까. 이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작가의 유년기~청년기는 따뜻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날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학교와 집 그 어느 곳에서도 마음 편한 곳 없이.
버스에 앉아 창가에 머리를 대고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두 글자를 입력했다. 유서. 오늘이 내 인생에 마지막 날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 숨김없는 말들 중
작가는 마포대교로 향했다. 그리고선 난간 사이로 끝없이 어두컴컴한 한강을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가라고 하는데,
나는 죽을 용기조차 없다. 그럼 나는 무슨 용기로 살아가야 할까
이 문장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도 몰랐던 내 옛 마음을 저격했다. 약 3년 전 나 또한 삶을 포기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시도는 하지 못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잠에 들 때면 다음 날 눈이 떠지지 않길 바라며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위 문장을 읽으니 나는 죽을 용기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의 자살률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청년 자살 실태조사 결과 응답률은 일반 청년에 비해 4배가량 높게 나왔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작가가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마음이 놓였다. 그럼에도 ‘내일은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질문에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을 다 읽었음에도, 나 또한 그녀와 같은 가정위탁아동으로서 어떤 힘으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살았다. 죽을 용기가 없어 하루하루 그냥 살았다. 지금 내가 할 일을 하며 그렇게 살아갔다. 나도 그녀도 그랬다.
살아가다 보면 웃는 날도 있고, 행복한 순간도 온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 주는 날도 온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생기며 이런 것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가정사가 좋지 않은 아이에게 우리는 무엇을 도와줘야 할까? 상처를 이겨내고 극복하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희망을 주는 거짓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다면, 위로도 조언도 없이 가끔씩 밥 한 끼 같이 하는 지인이 되어 주어라. 따뜻한 밥 한 끼가, 편견 없이 봐주는 눈빛 하나가 이들에겐 하루하루 살아갈 힘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