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하나를 오래 붙잡는 일이 어려웠다.
피아노를 배우다 미술에 마음이 쏠리고, 다시 피아노로 돌아갔다가 이번엔 영어에 눈길이 갔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 열정을 오래 끌고 가는 건 늘 쉽지 않았다.
주변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끈기가 없다.”
“그렇게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아무것도 못 돼.”
그 말들은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렀고,
어느 순간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할까.
왜 자꾸 다른 데로 시선이 옮겨갈까.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하나를 시도하고, 또 다른 가능성에 마음을 열며,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나를 알아가려 애썼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비슷하다.
무언가에 마음이 움직이면 해보고,
조금 지나면 또 다른 게 궁금해진다.
어쩌면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게 나한테 맞는 일일까?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말한다.
“조금은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 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걸.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여전히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겪어보는 일은
어쩌면 나만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 조금쯤은 후회가 남았으면 좋겠다고.
단지 못 이뤄서가 아니라, 조금 더 살고 싶어서 생기는 아쉬움 말이다.
‘이번 생 참 재미있었는데.’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잘 살아낸 삶 아닐까.
‘욕심’이라는 말이 때론 무겁게 들리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내 욕심을 부려야 할 때라고 느낀다.
더 늦어지면 아주 사소한 이유나 변명 같지 않은 변명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포기하게 될까 봐.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하나의 가능성 앞에 선다.
기웃거리는 삶, 흔들리는 마음.
그 모든 움직임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확신은 없지만,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나를 나타내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