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라는 가면 아래에서

by onthequiet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즉각 떠올리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웃고는 있지만 진심으로 즐겁지 않았고,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었지만 마음은 없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건 오래전부터였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화를 참는 건 인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건 예의며,

불편한 마음을 꺼내지 않는 것이 타인을 위한 배려라고.


그렇게 나는 나의 감정을

늘 마지막으로 고려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억울해도 웃고, 내키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며,

하고 싶지 않은 일 앞에서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은 상황을 매끄럽게 만들었고 나를 무난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쌓일수록 나는 나와 조금씩 멀어졌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지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 자체를 잘 느끼지 못했다.


화를 내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화를 내는 건 관계를 흔드는 일 같았고,

그 감정이 되돌아올까 두려워 그저 조용히 넘기는 타이밍만 늘어갔다.


그래서 내 화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남았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그 자리에 가라앉고,

그렇게 가라앉은 감정들은

결국 내 안에서 굳어버렸다.


기쁨도, 고마움도, 불쾌함도

점점 꺼내기 어려운 감정이 되었고

나는 언제부턴가 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조심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감정을 구분하는 감각 자체가 흐려진다.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으니

그냥 모든 걸 참는 쪽이 익숙해지고,

그 체념은 내 감정을 무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점점 나에게 무관심해졌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그렇게 길러진 사람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안에 쌓여온 답답함을 분명히 느낀다.

그 무게가 어디서 왔는지, 이제는 안다.

말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만든 피로.


그래서 나는 바꾸고 싶다.

좋다고 말하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표현하고,

화를 내는 감정도 천천히 연습하고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상처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믿고 있다.


한때 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건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속해 온 방식이었다.


그 방식 덕분에 나는

그 안에서도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 반대의 방법으로

조금씩 나를 회복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내 삶의 언어로 다시 배우는 중이다.

과하지도, 비껴가지도 않게.

내가 진짜 느낀 만큼만,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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