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명절이 지난 후 어떤 진료실 풍경

by 문경래

요사이 눈이 많이 와

고샅을 미끄러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동네 앞 당산나무 눈꽃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화토를 치며 하루 이틀 보냅니다

설도 며칠 안 남았는데

설을 쇠면 봄이 돌아오고

일할 것을 생각하니

눈더미에 눌린 것처럼 힘이 듭니다

-시 '겨울’ 김점순(시집살이, 詩집살이 중)



우리나라의 대 명절, 설과 추석. 명절은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즐겁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게서 변화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설과 추석이 지나고 나면 나의 진료실에는 여자 환자들이 부쩍 눈에 띄게 온다. 두 부류인데, 한 부류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며느리 분들이다.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어지럼증이 발생해서 진료를 받으러 많이 오신다.


또 다른 한 부류는 연세가 많은 할머님들이시다. 난청이 있는 어머니를 자녀들이 병원으로 모시고 오는 경우이다. 명절이라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에서 어머니의 난청을 발견하고, 자녀들이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온다. 일흔이 넘은 아들이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모시고 와서 진료를 보기도 하고, 형제 여러 명이 사이 좋게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오기도 한다. 어떤 딸은 진료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나가고, 어떤 형제들은 곁에 부모님을 둔 채로 내 앞에서 싸우기도 한다.


어느 설 연휴가 지난 다음 날, 화장이 진한 미인형의 50대 여성과 함께 80세 김순례 할머니가 병원에 처음 오셨다. 같이 온 화려한 여성 보호자는 빠른 걸음으로 먼저 진료실로 오고, 뒤이어 왜소한 체구에 허리는 기역자로 굽은 까무잡잡한 얼굴의 어르신이 들어오셨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야기를 쏟아내는 보호자.

“선생님! 엄마가 전혀 알아듣질 못 해요. 점점 잘 못 듣는 거 같긴 했는데 이번에 시골집에 가보니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들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병원을 안 온다고 하는 걸, 어휴, 겨우 데려 왔어요.”

투덜대듯 당당히 이야기하는 딸에 비해 혼나는 학생처럼 앉아 계신 굽은 등의 할머니.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고목처럼 어둡고 가칠해 보인다.

“김순례 님! 소리가 잘 안 들리세요?”

할머니는 처음엔 대답을 안 하시다가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소리치듯 여쭈니 그제서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왜 그러신지 제가 귀 안을 들여다볼게요. 여기 현미경 앞에 앉아보세요.”

현미경으로 귓속을 보니 귀지가 완전히 꽉 차 있다. 너무 딱딱해서 한 번에 안 빠질 정도다. 옆에서 딸이 부끄러워하며 괜히 부산을 떤다.

“아니 엄마! 귀지가 왜 이리 많아! 지저분하게!! 우리 엄마가 원래 이렇게 지저분한 사람이 아닌데..”

“연세 드시고, 몸 안에 기름도 없어지면서 귀지도 마르게 되죠. 지저분한 거 아니고, 많이들 그러세요. ”

내 말에 딸은 약간 안심했는지 말을 더 잇는다. 처음과는 달리 목소리가 조용하다.

“누가 봐드릴 사람이 있어야죠. 시골에서 혼자 농사지으며 사시니 이런 것도 누가 안 봐주고… 자식이 많아도 모시고 살 사람도 없고. 저도 사는 게 바빠 자주 가지도 못하고… 엄마가 원래 정말 깔끔한 분이신데...”


귀 안에 마취제를 뿌려놓고 20분 후 다시 뵙기로 한다. 그러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귀지가 마취액에 불어서 잘 빠지기도 하고, 귓구멍 피부도 마취가 되니 덜 아프게 뺄 수 있어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다시 진료실에 들어온 할머니는 말 없이 현미경 앞 의자에 기대 누우시고, 나는 현미경 배율을 조절하며 귀지를 뺀다. 잘 참으시고 계시던 할머니가 귀지의 딱딱한 부분이 나오면서 약간 아프셨는지 어깨를 움찔 하신다.


“할머니! 아프셨어요? 움직이시면 다치세요! 잠시만 가만히 계셔보실 수 있으시겠어요?!”

딸이 보호자 의자에서 일어나 할머니 곁으로 가서 손을 잡는다. “엄마, 조금만 참아봐!”

현미경 앞에 귀를 맡기고 딸에겐 손을 맡기고, 비스듬히 누워 계신 조그마한 할머니. 아프셔서인지 눈가에 눈물이 살짝 어리는 게 보인다.


누워있는 할머니의 눈물이 통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 때 서울에서 오랜만에 온 딸이 반갑고 좋지만, 그 딸에게 조금이라도 폐가 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서울로 오셨을 것이다. 번쩍번쩍해 보이는 큰 병원에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여의사를 만나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잘 안 들리는 것이 맞긴 한데, 딸이 혹시라도 본인 때문에 큰 돈 쓰게 될 까봐 그게 걱정되셨을 것이다. 게다가 진료를 보는데 귀지가 가득하다 하니 깔끔하게 살아오신 분인데 딸 앞에서 괜히 작아지는 기분이 드셨을 것이다. 귀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누웠을 때의 훤히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 나도 그렇게 있어봐서 안다. 얼마나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지. 그리고 그 때 손을 잡아주는 딸 손의 온기…


“할머니, 귀지는 이제 깨끗하게 다 나왔어요! 이제 좀 시원하시지 않으세요?”

“응, 잘 들리는 거 같애...” 하시는 할머니.

“그래도 청력검사 받아 보셔야 해요! 귀지 때문에 잘 안 들리는 건 조금이고,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소리치듯 말해야 알아들으시는 걸 보아 분명 청력이 안 좋으시리라...귀지도 뺐고 고막도 괜찮은데도 안 들리시는 걸 보면 노화 때문에 생긴 난청일 가능성이 높고… 보청기를 하셔야 할 텐데 어쩌나… 차라리 청각 장애 등급에 해당될 정도로 청력이 나쁘시다면 정부에서 주는 보청기 지원금을 받으실 수 있을 텐데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할머니와 그 따님을 청각검사실로 안내했다.


두 모녀가 진료실을 나간 후, 먹먹한 마음이 한참 들었다. 딸의 눈치를 보시는 나이 드신 어머니, 그런 엄마에게 짜증내듯이 말하지만 사실은 그 엄마가 너무 안스럽고, 여태껏 신경 쓰지 못한 자신에게 죄책감이 드는 딸…

진료실 안의 공기에서 짠 맛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힘겨운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도

이불이 소리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덕 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길

주린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 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가요 ‘보릿고개’, 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