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보수가 필요한 나이
한 영혼이 세상에서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보는 것이다
선명하게 본 것은 모두 시이고
예언이며 종교다
-존 러스킨, <현대의 화가들>에서
엄마는
내가 기억한 이래로 줄곳 화려한 형형 색색의 꽃무늬 상의를 입었다
30여 년 전 집 앞에 그 당시 존재하던 "양장점"에서
아버지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몇 년 동안 쪼개고 모아
비로드(벨벳 원단)의 "꽃"원피스를 해 입고 나의 유치원 가을 소풍에 참석했다
(그래서 내가 비로드 원단의 옷을 지금도 좋아 하나 보다... 무의식은 참 무섭다)
꽃을 사랑하는 엄마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 조합의 꽃무늬 옷을 지금도 참 좋아한다
엄마의 나이가 칠순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이제는 몸이 제 말을 안 듣는다며 푸념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도 그 정도는 매일 아파요~ 엄마 나이 칠순에 그 정도면 아직 청춘인 거야~" 하고 위로를 해도
오늘도 꽃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보라색 티셔츠(보라색 티셔츠지만 색의 삼원색이 다 들어있는)를 입은 엄마는
"나는 원래 안 아팠단 말이야"하고 어이없는 푸념을 한다
"엄마는 나보다 오래 살지도 몰라" 하고 내가 초강수를 두면
"아예 욕을 해라 욕을~"하고 입을 다무신다
나보다 정정한 엄마도
가는 세월은 못 속이고
유지보수 할 곳이 하나 둘 생겼는데
작년부터 눈앞에 날파리들이 계속 날아다닌다고 하여 안과를 찾았다
백내장과 황반변성 질환이 있다며 의사가 급하게 날을 잡아
두 눈을 번갈아가며 수술을 하셨다
나보다 정정하다고 놀렸는데 단순한 염증정도일 줄 알았는데
정말 놀란 사건이었다
보호자로 따라갔던 병원에서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나에게 문득 말했다
엄마 "내 옷이 너무 화려한 거 같아"
나 "엥? 30년도 넘게 올곧은 꽃무늬 취향께서~ 갑자기 무슨 말이야?"
엄마 "눈 수술하니까 모든 게 선명하게 보여서 좋아 근데 ~"
나 "근데?"
엄마 "내가 이렇게 화려한 색의 옷을 입는지 몰랐어"
엄마는 오랜 백내장과 눈 질환으로 서서히 색감을 잃었던 것이다
무심했던 나에게 야속하고
무던했던 엄마에게 덜컥 화가 나
갑자기 속이 상해
괜히 엄마에게 버럭 하고 말았다
나 "아니 그동안 왜 말을 안 하고 바보 같이 눈 아프면서 참았어?"
엄마 "이렇게 많이 진행됐는지 몰랐지 뭘~"
엄마는 눈이 흐려져서 예전보다 점점 더 화려한 꽃무늬의 옷을 입게 되는 취향을 갖게 된 것이었다
나 "엄마! 점심 고기 사주께!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수술은 수술이니까 몸보신하러 갑시다"
엄마 "오예~ 막내딸 낳은 보람이 있구먼"
나 "어차피 마이나스 통장! 사이버머니! 소고기라도 먹자!! 나도 엄마덕에 소고기 먹는거지 뭐!"
속상한 마음을 유머와 함께 누르고서는
엄마에게 소홀했던 내가 얄미워 눈물이 나려던 차
엄마의 의미심장한 요구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엄마 "고기는 됐어! 집에 밥 해놓고 나왔어 있는 밥 먹자 대신..... "
나"대신 뭐? 눈이 아직도 아파?"
엄마 "그게 아니고.... 눈 수술하니까...
주름까지 너무 잘 보여, 나 얼굴 좀 땡겨줘라!!
엄마! 내일모레 팔순이셔요~ 주름이 있는 게 당연하지!
엄마 "야!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고 내 꿈은 9988 (99세까지 88 하게 살자)이야!
나 "녜녜~~ 알겠으니까 오늘은 일단 소고기부터 먹읍시다~"
참으로 소녀 같은 내일모레 팔순의 우리 엄마가....
나는 참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