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지? 오래 떨어져 있어 보고 싶거나 그리워한 것이 아니잖아. 외려 매일 아침 커피를 끓여주고, 산책도 하고, 저녁도 함께 해 지겨울 만큼 익숙한 관계인데도 한 달 떨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보고 싶고 왠지 허전해진다. 누가야~ 제주도에 잘 도착했지?
아침 일찍, 널 공항에 바래다주고 집에 도착해서 현관에 놓여 있는 검정 운동화를 보며 네가 진짜 떠났구나 싶었어. 깜빡 빠뜨린 거니, 아님 일부러 놓고 간 거니? 전화할까 하다 다 큰 자식 떼어놓자마자 핑계 삼아 연락하는 것 같아 꾸욱 참았단다. 아끼는 마음을 다 표현하자니 집착하는 것 같고, 내심 다독이며 모르는 척하면 무심한 것 같으니 자식에게도 '적당한'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가 싶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왠지 집이 두배로 넓어 보이고 네 방문이 닫혀 있는 게 어색하지 않겠니? 그래서 네 방문도, 창문도 활짝 열어놓았구나. 아빠랑 엄마랑 느루랑 모두 모여 맥주 한 잔씩 하면서 한 달 뒤 연수를 마치고 네가 올 날이 언제인지 달력을 찾아보았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이니? 4월 21일이구나.
4월 21일은 로마 건국일이지. 이탈리아어로 Natale di Roma라고 한다는구나. 누가가 진짜 직장인이 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오늘, '로마'라는 나라가 첫 발을 내디뎠던 2774년 전 오늘, 로마 건국에 관해 이야기해줄게. 역사가 지루한 사람들을 위한 지적인 그림을 소개해 볼까? 먼저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 알아야 해.
페테르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3>
누가도 트로이 전쟁, 트로이 목마는 많이 들어봤지?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무한 복제된 이야기라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 거야.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날,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자신이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식장 한복판에 황금사과를 떨어뜨리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를 써서 말이야. 올림포스의 세 여신인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와 제우스의 고모인 아프로디테가 최고의 아름다움을 놓고 다투게 돼.
누가야,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1633>에서 세 여인이 누굴 상징하는지 알겠니? 가장 오른쪽, 발 밑에 공작이 있는 뒷모습의 여신이 헤라, 가장 왼쪽, 부엉이와 방패를 곁에 두고 있는 여신이 아테나, 가운데 에로스와 함께 있는 여신이 아프로디테야. 나무 밑,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헤르메스와 양치기의 상징인 막대를 들고 있는 이가 파리스지.
여신들의 경쟁에 머리 아픈 제우스는 양을 치던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어. 파리스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헤라는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했지. 이건 물으나마나 아냐? 당근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를 차지했고 최초의 미스월드가 되었어.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당시 그리스 최고 미녀였던 헬레네와 파리스를 사랑에 빠지게 했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다는 거였어.
이 사건으로 시작된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의 10여 년에 걸친 전쟁을 다룬 영웅들의 서사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이고 트로이를 패망시킨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다룬 걸작이 <오디세이아>야. 오디세우스(Odysseus)의 로마식 이름이 율리시즈(Ulysses)란다. 가끔 섹스 심벌로서가 아닌 지적인 메릴린 먼로의 모습을 부각하려는 한 장 컷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잡지에 나오곤 했어. 율리시즈는 곧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의미하지.
페데리코 바로치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아스, 1598>
누가도 알다시피 목마를 왕궁으로 들인 트로이는 멸망했어.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하고 트로이의 장수이자 프리아모스 왕의 사위인 아이네아스는 아버지 안키세스와 아들 아스카니우스, 아내 크레우사와 함께 탈출해. 하지만 크레우사는 죽고 말지. 여신 중 정치엔 관심 없이 늘 애정행각만 벌이는 아프로디테도 이때만큼은 탈출하는 이들의 안녕을 위해 무한정 돕는단다. 왜냐하면 아프로디테가 아이네아스의 어머니거든.
아프로디테는 아들 아이네아스에게 이다산에서 힘을 기르고 배를 만든 뒤 서쪽으로 항해하라고 일러줘.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를 목적지에 둔 예시였어. 신화여서인지 가는 도중 아이네아스는 나중 로마와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지기도 해. 하지만 끝내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에 도착하지. 그곳에서 공주 라비니아와 결혼하고 라티움과 트로이를 연합한 '라비니움'을 건설한단다.
아이네아스가 죽고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지도자가 된 후 그는 세력을 키워 '알바 롱가 Alba Longa'라는 나라를 건설했어. 이 알바 롱가가 로마의 전신(前身)이야. 그리고 이 긴 이야기를 담은 <아이네이스 Aeneis>는 "아이네아스의 노래"란 뜻으로 단테와 함께 지옥을 여행하는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지. BC 30년, 로마의 최고 통치권자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시대에 쓰였어. 좀 길고 헷갈리지? 이젠 로마 건국과 조금 가까이 다가가 볼까?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르스와 레이 실비아, 1616~17>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다급하게 여인에게 다가가는 근육질의 남자가 보이네. 백신을 넣은 주삿바늘도 튕겨 나올 것 같은 팔뚝이야. 내딛는 발걸음보다 그의 눈이 먼저 여인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보아 그는 몹시 서두르고 있어. 마치 지금 이때를 놓치면 영영 그녀를 놓칠 것만 같은 표정이구나. 볼이 발그레한 그녀는 애원하는 눈으로 피할 곳을 찾고 있어. 하지만 도망치기는 쉽지 않아 보여. 이미 화살통을 맨 꼬마 에로스가 둘을 꼭 잡고 있잖아. 둘은 사랑에 빠질밖에.
바로크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마르스와 레아 실비아, 1616~17>야. 마르스는 거칠고 담대한 전쟁의 신이야. 레아 실비아는? 아... 레아 실비아의 슬픔을 어찌 말한다지? 그녀는 왕의 딸이었지.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아이네아스의 후예, 알바 롱가(Alba longa)의 왕 누미토르의 딸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베스타(Vesta, 헤스티아)의 제녀(祭女)야. 그녀는 불과 화로의 여신이자 영원히 순결을 간직한 베스타 신전에서 제사를 올리는 여사제이니 절대 순결을 잃어서는 안 되는 몸이었지.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도록 제녀(祭女)를 만든 건 그녀의 작은 아버지, 즉 누미토르의 동생 아물리우스야.
아물리우스는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어. 능력도 야망도 형인 누미토르보다 큰데 왕위 계승자는 형이었거든. 하지만 알바 롱가의 시조(始祖) 아이네아스가 멸망한 트로이에서 탈출해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으로 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가능케 한 불굴의 의지를 빼닮은 건 단연코 자신이었어. 신의 선택을 받아야 할 자는 오로지 자신이었지. 하지만 왕위는 누미토르에게 이어졌어. 아물리우스의 욕망은 기어코 형을 내몰고 본인이 왕위에 오른단다.
형을 내쫓고 왕이 된 아물리우스는 조카딸인 레아 실비아가 맘에 걸렸어. 여자는 왕위에 오를 수 없었지만 그녀가 아들을 낳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거든. 그래서 레아를 절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제녀로 만들었지. 하지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없었을 거야. 마침 물 길러 가는 레아의 뒷모습을 본 전쟁의 신 마르스는 불끈 사랑의 마음이 솟구쳤어. 신의 욕망을 인간이 어찌 이길 수 있겠니! 루벤스의 그림처럼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남자 쌍둥이를 낳았어. 아물리우스의 노여움과 불안은 활활 타올랐어.
피에트로 코르토나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집으로 데리고 온 파우스툴루스, 1643>
그는 가여운 레아를 가두고 시종에게 쌍둥이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어. 아이들을 불쌍히 여겼던 시종의 약한 마음만큼 시종의 칼도 무뎠구나. 차마 어린 생명을 다치게 할 순 없었지. 그는 아이들을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 강에 띄웠어. 바구니는 흘러 내려가다 무화과나무뿌리에 걸렸단다. 바구니 속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려던 늑대의 귀에 들렸고 암늑대는 두 아이를 거둬 자신의 동굴로 데리고 갔어. 그리고 자신의 젖을 먹였어. 아버지 마르스의 도움 때문이었을까? 늑대는 마르스의 동물이라고 하니까 말이야.
늑대에게 키워진 인간의 아이, 정글북의 모글리는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이 이 신화를 접하고 힌트를 얻어 탄생시킨 게 아닐까? 엄마의 상상이야. 히히. 늑대의 젖을 먹고 늑대 새끼들과 놀고 있는 인간의 아이를 목동 파우스툴루스가 보게 돼. 그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단다. 피에트로 코르토나는 이 광경을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집으로 데리고 온 파우스툴루스. 1643>라는 작품으로 그려 놓았어.
목동의 집에서 씩씩한 젊은이로 성장한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양치기들의 리더가 되었어. 모든 위대한 영웅신화가 그렇듯이 드디어 그들은 자신들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궁전으로 쳐들어가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할아버지 누미토르를 복권시키지. 모글리가 시아칸을 죽이고 정글의 질서를 회복한 것처럼 둘은 알바 롱가의 정통성을 확립한 후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 처음 자신들이 목동에게 발견되었던 장소, 무화과나무 근처 7개의 언덕이 있는 곳에 말이야.
한 바다에는 두 마리의 용이 살지 못하고 한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다고 했던가? 팔라티누스 언덕에 자리 잡은 로물루스와 아벤티누스 언덕에 세력권을 가진 레무스는 누가 신의 선택을 받느냐를 가지고 다투게 돼. 신화에는 여러 버전이 있잖아. 일견 로물루스의 공간이었던 팔라티누스 언덕에 신의 선택을 증명하듯 열두 마리 독수리가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았다고도 하지. 어쨌든 두 세력권을 구분 짓기 위해 쌓았던 성벽을 침범한 아우 레무스는 형인 로물루스에 의해 죽게 되지. 이 날이 4월 21일이라고 하는구나.
로물루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 이 곳을 로마 Rome라고 부르고 첫 번째 왕이 되었어. 뒷날 아우를 죽인 걸 후회했던 로물루스가 4월 21일을 로마 탄생일로 정했지. 이때를 기원전 753년으로 기록하고 있단다. 로마는 이렇게 시작되었어. 위대한 문명의 시작이고 인류의 발전에 육중한 무게를 더한 역사적 발걸음이지.
(좌) 카피톨리노 늑대상 / (우) 로마의 7개 언덕
아마 이 늑대상은 흔히 보았을 거야. 늑대 젖을 빨고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보이지. 원래 로마를 나타내는 늑대 청동상은 기원전 295년에 팔라티노 언덕에 세워졌다고 하는 기록부터 사료 여러 곳에 몇몇의 조각상이 언급되어 있다고 해. 또 에트루리아인이 만들었다는 가설부터 중세 카롤링거 양식에 가깝다는 주장까지 학자들의 연구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 발견되고 있고 말이야. 다만 늑대 밑의 쌍둥이 조각상이 1471년 이후에 추가된 것이라는 사실을 미술사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68)이 밝혀냈어. 교황 식스토 4세(Sixtus PP.IV. 재위 1471~84)가 콘세르바토리 궁전에 늑대상을 옮기도록 하면서 안토니오 폴라이올로(Antonio Pollaiolo, 1429~98)로 하여금 쌍둥이 조각을 추가하게 한 것이지.
누가야, 우리나라 건국 신화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결국엔 곰이 환웅의 배필이 되어 단군이라는 우리의 시조를 낳잖아. 인간이 되기 위해 곰은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말이야. 결국 인내와 끈기라는 우리의 상징을 나타내기 위한 신화상의 등장인물일 수 있지. 마찬가지로 로마가 늑대라는 동물을 선택한 건 늑대가 갖는 특징, 즉 사회적 연대가 강하고, 가족 중심적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도 몰라. 늑대는 함께 사냥하고 위기에 연대하고 위계가 철저하며 일부일처제야. 외모도 늠름하다 못해 훌륭하단다. 우린 흔히 음흉하다는 의미로 "남자는 다 늑대다."라는 말을 하잖아. 늑대가 들었다면 억울해서 할복할지도 몰라.ㅎ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살고 있는 근처의 다른 부족들과 싸웠어. 타 부족을 흡수했고 갈수록 영역을 넓혀나갔지. 대표적인 예가 에트루리아인(Etruscan)들이야. 그들은 로마 북쪽 산악지대에 살고 있었는데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어. 농작물을 재배하고 무기와 장신구를 만들고 그리스와 무역도 했지. 거래에 필요한 알파벳과 화내고 바람피우는 그리스 신(神)들을 수입한 것도 에트루리아인이야. 로마의 전통 의복인 토가(togas)도 자주색 옷으로 권위를 부여했던 에트루리아 왕족들의 옷이었단다.
그들은 패시즈(fasces)라고 불리는, 도끼날을 넣은 막대 한 묶음을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어. 도끼날은 일종의 사법권을 의미했지. 잘못된 일을 응징할 수 있는 권력이었고 왕의 권위였어. 로마의 왕들은 곧바로 패시즈를 가지고 다녔어. 후에 이 단어는 오염되어 파시즘(fascism)의 어원이 되기도 해. 하지만 본 뜻은 지금도 미국의 법정이나 조각상에 남아있어. 한번 보겠니?
(좌) fasces 형태 / (우 상) 미 법무부 행정국 의장 / (우 하) 링컨 기념관 석좌 양 의자 앞 fasces
로마는 망명자나 범죄를 저지르고 쫓기는 자도 받아들였어. 농업국인 데다 인구가 곧 힘이었을 때니까. 도시는 젊은 남자로 가득했지만 가정을 꾸릴 여자가 부족했지. 한 평의 땅을 빼앗고 개간하는데 흘린 거친 땀을 닦고 위로해 줄 보드라운 손길이 필요했단다. 그들은 절실했고 곧 이웃 나라로 눈길을 돌렸어. 적당한 때를 골라 대대적으로 축제를 벌여 사비니족을 초대했구나. 질펀하고 흥겨운 놀이가 끝나고 깊은 잠에 빠진 밤, 건장한 로마의 남자들은 사비니족 여인들을 납치했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달은 박제된 듯 움직일 수 없었어.
누가야, 지금의 잣대로 기원 전의 척박한 환경을 가늠하지는 마. 삶을 살아내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가늠만으론 부족하잖아. 삶은 구체적이고 무질서하지. 사비니족 여인이 로마인과 산지 3년 여가 지난 다음, 그동안 힘을 축적한 사비니족 사내들의 반격이 시작되었어. 강탈당한 누이와 딸들,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창은 날카로웠고 방패는 두터웠어. 이 그림은 전면전이 시작되려는 바로 그 찰나야.
자끄 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의 중재, 1799>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의 중재, 1799>를 보면 한눈에 어느 쪽이 로마인인지 알 수 있겠지? 그녀의 왼편, 그리스 조각 같은 몸을 감싼 방패에 RoMA라는 글자와 늑대가 있잖아. 오른편엔 차마 칼을 내리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비니족의 지도자 타티우스가 있어.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여인은 타티우스의 딸이자 로물루스와 결혼한 헤르실리아야. 그녀에겐 로물루스와의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어. 그녀는 이렇게 울부짖었지.
"우리가 과부로 살거나 아이를 고아로 살게 할 바엔 차라리 죽겠습니다."
어떤 여인은 돌기둥에 올라 아이를 높이 들어 올렸고 또 어떤 여인은 싸움 한 복판으로 아이들을 내 몰았어. 모두 그들의 손주거나 아들, 딸이었지. 타티우스의 다리를 잡고 고개를 숙인 여인의 팔 엔 금발의 천진한 아이가 들려 있구나.
사비니족 여인들의 중재로 로마인과 사비니 인들은 협정을 맺었어. 이후로 로마는 라틴족과 사비니족이 번갈아 왕위에 올라 약 250여 년 간(BC 753~ BC509) 통치했단다. 로물루스의 정책은 로마를 강하게 만들었어. 전쟁을 통해 정복한 땅을 배분해 줄 뿐만 아니라 정복지인들을 노예로 만들지도 않았어. 그들이 세금과 징병의 의무만 다한다면 로마 시민권을 나누어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지. 그들은 내부적으로 연대했고 외부엔 개방적이었어. 늑대의 정신을 잘 살렸지. 로마는 갈수록 부강해졌고 특별히 외부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았단다. 정복지가 모두 자발적 로마가 되었기 때문이야. 다음엔 현대까지 영향을 미친 로마의 정치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해 줄게.
누가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일이든 그건 빅뱅(Big Bang)이지. 이제 갓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아이의 머릿속에도 모차르트가 있듯, 어설프고 낯선 시작에도 창대한 꿈이 있지. 젊은이들에게 겸손은 필요 없단다. 굳이 꿈이나 야망을 속이지 말렴. "전 부족해서요."라는 말도 하지 않도록 하자. 가진 게 없이 가져야 할 것이 많은 때에는 두드려 보는 거야. 온몸을 그 꿈에 던져 보는 거야. "후회 없다"는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노력했을 때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