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네. 가로수를 쓰다듬던 봄비가 콘크리트 바닥에 툭툭 떨어져 팝콘처럼 터지고 있어. 꼬투리에서 터져 나온 완두콩같이 초록 물방울이야.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엄마는 종이 쇼핑백을 머리에 이고 물방울들을 피해 걸었어. 왠지 우산을 사고 싶지 않아. 비에 젖은 도시는 길냥이조차 보이지 않는구나.
이런 어쩌지? 빗줄기가 굵어지는 걸. 쯧쯔, 어깨도 젖고 바짓단도 젖었는데 저 상가 앞 천막으로 두른 처마 밑에서 잠시 쉬어 갈까? 아이고, 비 긋기 위해 머리를 가렸던 종이 쇼핑백 끈이 찢어져 버렸구나. 종이백을 안고 가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기시감(旣視感)은 뭐지? 그래, 오래전 내 스무 살 언저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느루야, 그땐, 알고 지내던 선배가 신촌역 기찻길 뒤로 이사를 했었어. 선배는 지하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조각을 하는 진지한 미술학도였거든. 눅눅하고 곰팡내 나는 지하 입구의 문을 열면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가 토르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이곤 했지. 지금은 찾기 힘든 '아우라'가 있는 자그마한 여인이었어. 농사짓는 부모님께 받는 하숙비가 부담스러웠던지 같은 지하지만 월세가 좀 더 싼 작업실로 옮겼다고 연락을 해 왔지 뭐니. 엄만 가깝게 지내던 몇몇 벗들과 함께 작업실에서 마실 다량의 술과 약간의 안주, 그리고 하이타이(당시 빨래 세제)를 들고 가던 중이었단다.
하필 장마 때였어. 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맹렬히 비가 왔고 금세 허벅지까지 젖었어. 누군가 들고 가던 하이타이 끈이 끊어졌다더니 갑자기 세제의 뚜껑을 열고는 인도 한복판에 뿌리는 거야. 곧 아스팔트가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흰 거품이 일었어. 순식간이었지. 우린 우박처럼 떨어지는 굵고 세찬 빗방울을 맞으며 부글거리는 세제 속을 맨발로 첨벙거렸어. 술과 안주와 두 팔을 묶고 있던 무거운 청춘이 미끄러지듯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구나. 우린 가볍게 치마를 걷어올렸어. 마음속 '들고양이들'이 사납게 날뛰었고 미친 듯 춤을 추었어.
이 그림 속 행인들처럼... 그때 우린 몹시 외로웠거든.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구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의 파리 거리, 1877>
안개비로 캔버스가 촉촉하게 젖었어. 눈에 눈물이 차오르듯 돌바닥 사이에 물기가 어른거리네. 도시의 습기를 이렇듯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나도 슬며시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수은등 밑을 걷고 싶다. 오른쪽 전경에는 우산을 쓰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남녀의 모습이 있지. 모자와 도트 모양의 베일, 귀걸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중산모를 쓰고 단추 달린 양복을 입은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어. 들고 있는 우산 활대의 주름처럼 공기를 주름지게 하는 작은 소란이 있었던 걸까? 캔버스 너머 사선으로 빗긴 그들의 눈길을 따라가다 보니 한 남자가 스쳐 지나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여 걷고 있는 남자. 비에 젖은 돌바닥 마냥 천성적으로 말수가 없어 보이는 남자.
그는 먼 곳에서 왔을 거야. 동네나 마을같이 개인 삶의 내력이 진술서처럼 보관되어 있는 곳에서 말이야. 그는 그의 발뒤꿈치에 매달린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제를 털어내고 미래를 향해 가고 싶었을 거야. 원래 상처 있는 인간들은 과거로부터 도망갈 곳을 찾지. 그들은 신으로부터, 전통으로부터, 남루한 신분으로부터 벗어나 근대의 도시를 향해 달리지. 근대의 도시엔 개인이 숨 쉴 수 있는 익명의 공간이 있으니까.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 사는 곳. 그래서 19세기 근대를 여는 도시, 파리는 도망자의 것이었고 이주민의 것이었고 디아스포라의 것이었지. 도시는 상처가 숨기에 적당하거든.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는 도시를,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파리 도시민의 일상을 그렸어.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하는 미술품 수집가이자 화가였어.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따른 색과 형태의 변화에 집중할 때, 그는 오스만 양식이라 불리던 세련된 건축물과 회색 공기에 숨겨진 과학과 속도의 구조물, 새로운 시대가 떨어뜨린 고독하고 강인한 남자들의 걸음과 뒷모습을 캔버스에 담았지. 이 그림은 파리에 온기와 우수를 떨어뜨린 <비 오는 날 파리 거리, 1877>라는 작품이야.
카유보트는 화면의 원경(遠景)에 있는 -한 공간에 머물지만 결코 소통하지 않는,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어. 그들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하염없이 비에 젖는 사람들이지. 카페에 앉아 압생트를 마시며 시를 읊거나,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다가 기차 경적소리에 뛰쳐나가거나, 백화점 쇼윈도의 화려함에 매혹당하면서도 시대의 속도에 멀미를 느끼는 예민한 개인들.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를 이 벽 저 벽에 부딪치고
썩은 천장에 제 머리를 박아대며 달아날 때
끝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거대한 감옥의 쇠창살을 닮고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포악한 고뇌는
푹 숙인 내 머리 위에 검은 깃발을 꽂는다."
파리의 우울을 견뎠던 샤를 보들레르는 <악의 꽃>이라는 시집에서 음습한 고독이 이식된 도시 속 개인의 모습을 특유의 염세적인 언어로 풀어냈지. 그의 시엔 근대 도시에 뿌리내린 욕망과 금기와 일회적 시간들이 의식의 검열을 피해 쏟아져 나왔어. 보들레르가 파편적이고 우연함이 스치는 아름다운 도시의 몰골을 '악의 꽃'으로 명명했듯, 카유보트는 사진과 회화의 거리를 거닐며 내면의 도망자들이 익명의 도시에 스며드는 모습을 차분한 눈으로 기록했어.
느루야, 처마 밑에 서서 비를 피해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니 이 도시가 초록 당구대 같구나. 우린 당구공처럼 우연히 부딪쳤다 스쳐 지나가면서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독을 들키지 않는 개인들이야. 이제는 고독을 치유하는 방법도 다른 것 같아. 우린 숲과 자연을 찾아 떠났지만 느루와 같은 젊은 세대는 이 건조한 도시 안에 숙영지를 두고 방향을 찾고 보급품을 조달받겠지? 성장한 곳이 도시니까 휴식이 필요할 때도 도시 속에 캠프를 차릴 거야. 언제든 머무르고 떠날 수 있는 캠프!
구스타브 카유보트 <유럽 다리, 1876>
저 흰 증기가 꽃처럼 피어나는 <유럽 다리, 1876> 속의 생 라자르 역(驛)에서 삶의 정주(定住)와 이동(移動)이 가능하려나? 사람들이 오가는 다리 위로 창백하고 건조한 빛이 툭툭 떨어지네. 밝은 회색과 어두운 검은색의 대조, 육중한 철 구조물과 날아갈 듯 피어오르는 증기의 대비가 선명해. 화면 오른쪽 앞, 회색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가 비릿한 쇠 냄새를 풍기는 다리 위에서 다가올 문명을 관찰하고 있구나. X자로 이어진 난간 테크가 일으키는 속도와 율동감에 다리는 출렁거리지. 카유보트는 중산모를 쓴 남자 뒤로 아득한 소실점을 두어 도시 한복판으로 길게 이어진 미래의 공간을 상상하게 했어.
19세기 과학과 이성의 힘이 근대를 상징하는 기차에 실려 파리의 생 라자르 역에 도착했을 때, 기존의 낡은 속도로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시대의 변화를 담을 수 없다는 위기감도 함께 내렸지.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망 남작은 파리에 시대의 상상력을 담으려 했어. 쭉 뻗은 대로와 방사형 거리, 공공 공원과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했지. 곧 반듯한 도로와 화려한 쇼윈도에 어울리는 옷차림과 액세서리가 등장했어. 기차를 타고 근처 공원과 야외로 나들이 가는 행렬도 새롭고 엄청난 변화 중 하나였지. 해 아래 반짝이지 않는 것이 없었구나. 드디어 벨 에포크 시대의 중심인 파리와 파리지엥이 탄생했단다.
카유보트는 파리의 남자였어. 그는 당대 별들의 바다였던 파리에서 지식이나 품위, 교양만이 아니라 이해심, 연민, 배려, 겸손 등을 마음속에 가꿀 줄 알았던 신사였어. 그는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와는 다르게 금수저에 엄친아였어.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판사이자 사업을 운영했던 아버지로 인해 부유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을 공부한 그는 1868년 법학 학위를 받고 1870년 변호사가 되었어. 느루야, 이런 걸 너네들 말로 세상 혼자 산다고 하지 않니? 때마침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으로 인해 그는 군에 입대하게 돼. 변호사 경력이 짧은 건 이 때문이야. 전쟁 후 그는 방향을 바꿔 화가 레온 보나와 그림 공부를 함께 했고, 1873년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했어.
구스타브 카유보트 <마루 긁는 사람, 1875>
카유보트는 1875년 살롱전에 <마루 긁는 사람, 1875>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지만 저속하고 조잡하다는 공격을 받았단다. 당시 완고하고 미적 안목이 부박(浮薄)해진 프랑스 화단은 노동자의 "노"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을 거야. 사회 곳곳에서 부(富)의 편중과 불평등한 권리에 거친 항의가 잇달았을 때였거든. 살롱전을 주최하는 미술권력은 기존의 가치와 사회가 추구하는 전통적 아름다움을 지키려 했지.
하지만 느루야, 프랑스 화단의 평가완 다르게 그의 그림엔 노동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건장한 남자들이 등장하지 않았니? 등과 팔뚝의 근육은 마치 고대 조각의 일부 같잖아. 설마 파리의 노동자가 진짜 저런 몸을 가졌다고 보진 않겠지? 그가 전통적인 회화를 공부했다는 것이 힌트가 될까? 느루야, 그는 일하는 남자의 근육을 자신의 붓으로 단련시키고 깎았던 것 같아. 그래서 그가 그린 노동에는 일말의 비루함도 느껴지지 않아. 긴 발코니 창에서 인부들의 등과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오후의 나른한 빛을 봐. 어떤 이념이나 도덕적 메시지 없이 오롯이 노동 그 자체의 순결함을 보여줘. 오른쪽 앞면의 와인과 유리잔은 이들에게 구스타브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 1849>과는 다른 노동의 이미지를 부여하지. 쿠르베의 노동자들은 선명하고 붉은 좌파의 냄새가 나거든. 쿠르베는 일꾼들에게 찌그러진 냄비에 한 컵의 희멀건한 수프를 끓여주었구나.
졸렬해지고 경직된 화단에 실망한 카유보트는 자신의 예술을 담을 그릇을 인상파에서 찾았어. 그들의 전위적이고 다양한 실험에 매료되었지. 곧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등과 어울리게 돼. 그리고 그들을 상당기간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었단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쉬지 않았어.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의 이른 죽음은 스스로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했거든.
구스타프 카유보트 <창 가의 청년, 1875>
<창 가의 청년, 1876>을 봐. 청년이 발코니에 서 있어. 발코니란 안도 밖도 아니어서 카펫에 비밀스러운 대화가 떨어져 있고, 위도 아래도 아니어서 은밀한 시선이 난간에 매달려 있는 곳이지. 중심도 주변도 아니어서 예배당 천장에 자서전을 썼다는 미켈란젤로에게 '이제는 개인의 일이 신문 기사에 실려 파리의 모든 사람이 알 게 된다'며 어깨를 툭 칠 수 있는 곳이야. 중세와 근대를 오가는 파리지엥을 볼 수 있고 고독한 자신의 뒷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곳. 그런 발코니에 두 다리를 벌리고 도시를 내려다보는 사내. 그는 근대의 방랑인! 고독하고 외로운 개인!
느루야, 너희들이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모습이 꼭 이 청년의 모습 아닐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긴 싫지만 홀로 고립되는 건 원치 않는 모순, 꿈을 좇고 있지만 헛된 미래에 낚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방어, 뻔한 예의를 요구하는 건 싫어하지만 친절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갖고 있는 내면, 모두 너희와 같지. 또 이십 대의 우리와 같단다.
구스타프 카유보트 <예르 : 비의 효과, 1875>
영~ 비가 그치질 않네.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사지 않는다면 비는 피할 길이 없을 것 같아. 오늘은 오래전 그날처럼 비를 맞아볼까? 그리고 맨발로 첨벙거려 볼까? 발톱을 세우며 튀어나오던 그날의 외로운 들고양이를 다시금 깨워볼까? 여하튼 끈 떨어진 종이백을 가슴에 안고 다시 거리로 나왔어.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 정수리에 동그랗게 동심원이 퍼지겠네?
이십 대의 우린 빗 속에서 각자의 춤을 추고 난 뒤, 도시의 사잇길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어. 우린 후원자도 찾지 못했고 격려와 응원도 부족했고 좌충우돌했지만 너희들처럼 고독한 도시에 둥지를 틀었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진지한 미술학도였던 선배는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독신주의자였던 친구는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쳐 결혼을 했고, 사회를 개혁하려던 친구는 공무원이 되었고, 고교 시절 다리 좀 떨고 침 좀 뱉었다던 후배는 팔자에 없는 학교 선생님이 되기도 했어.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때론 부족한, 때론 풍족한 삶이었지. 우린 쏟아지던 장대비가 가슴에 남긴 동그라미를 징검다리 삼아 "너머 그 너머"로 춤을 추며 갔어. 그동안 무수한 눈물이 빗물에 스며들었지.
느루야, 가로수는 자신이 얼마나 깊은 색을 토해낼 수 있는지 으스대듯 나무에도 도로에도 다투어 초록을 뱉고 있어. 비의 무게가 힘겨운 잎들은 온 힘을 다해 버팅기고 건너편 인도엔 스무 살의 우리들이 뛰어가고 있구나. 나도 회한이 가득한 라라처럼 유리아틴의 도서관을 향해 뛰기 시작했지. 닥터 지바고의 이 대사를 네가 읽고 나면 엄마가 집에 도착해 딱 초인종을 누르겠는걸.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 같은 걸 하나도 지니지 않은 여자였다면, 나는 이토록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거요. 나는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도 낙오하지도 오류를 범하지도 않는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오. 그런 사람의 미덕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니까... 그런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