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있잖아. 느루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주었던 제비뽑기 통이 도착했어. 엄만 박스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단다. 생각보다 너무 크더라고. 제비가 아니라 익룡도 몸을 숨길만한 통이었어. 겨우 마니또를 정할 종이 오십 여개를 넣을 통이었는데 크기는 생각도 않고 통 모양만 보고 네게 부탁했던 내 머리를 쥐어박았구나. 쯧쯧!!!
결국은 다시 반품하기로 했는데 더 큰 사달이 났어. 배달된 박스를 아무 생각 없이 열다 보니 제비뽑기 통을 싸고 있던 파손 방지용 뽁뽁이를 다 찢어 버린 거야. 이리저리 뜯긴 뽁뽁이를 테이프로 붙여 얼기설기 살려 재포장했단다. 그나마도 포장용 뽁뽁이가 부족해, 버리려던 베갯속 스펀지까지 박스에 채워 깨지지 않게 고정시켰지 뭐니. 반품 신청을 해 놓고 나니 새삼 느루가 친구랑 찍어 보낸 사진이 생각나더라.
사진엔 색색깔의 발그레한 전구가 은은한 빛을 내고, 벽엔 "HELLO 2021"이라는 헬륨 풍선이 붙어 있었지. 그리고 지금의 엄마에겐 너무나 부러운, 스물다섯이라는 빛나는 때를 보내는 두 명의 친구가 서로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어. 한 눈 팔지 않고 뛰다가 가뿐 호흡으로 잠시 멈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었지. 둘 다 아직은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고 둘 다 남자 친구도 없지만 서로에게 기운을 북돋고 싶어 사진 찍었다고 했지? 엄마도 너희 둘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선물하고 싶구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비테프스크 위에서>라는 작품이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마르크 샤갈 <비테프스크 위에서>
어린아이가 뭉툭한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이 담백해. 화려한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그림 오른쪽을 보렴. 꼭대기가 돔 모양인 러시아 정교의 교회가 있고, 아래 야트막한 건물엔 지붕이 하얗게 빛나. 화면의 아래쪽도, 다른 건물의 지붕들도 모두 흰 눈에 덮인 듯 하얗구나. 숨이 멎듯 고요해. 그 위에 지팡이를 들고 커다란 보따리를 맨 남자가 있어. 덥수룩한 수염에 모자를 쓰고 외투를 걸친 걸 보니 어디론가 떠나려나? 그의 결심은 단단해. 지팡이가 굳세게 앞으로 나와 있잖아. 그는 누구고 저 하늘을 날아 어디로 가려는 걸까?
아마도 꿈을 이루려 이곳저곳을 떠돌던 샤갈이 자신의 방랑을 저 나그네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너희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칠 공간을 찾기 위해 연구소로, 고시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나그네의 아래를 봐. 왼쪽 집 울타리 앞에 두 연인이 꼭 끌어안고 있어. 그의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벨라일 거야.
샤갈은 벨라를 사랑했단다. 하지만 쉽지 않았어. 샤갈은 청어를 파는 가난한 유대인 가정의 아홉 남매 중 장남이었고, 벨라는 보석상을 하는 부유한 집의 딸로 문학, 철학, 역사를 공부한 수재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미모에 노래 잘하는 소녀였거든. 샤갈은 후원금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지만 사랑했던 연인 벨라는 그녀 부모님 반대로 함께 떠나지 못했어.
등에 커다란 자루를 메고 유학길에 오른 샤갈과 애틋한 이별을 한 벨라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절인 청어만큼이나 주름지고 오그라들었을 샤갈의 청춘이 헬륨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수 있을까? 러시아의 보드카 같이 독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느루와 느루 친구야, 오늘은 엄마가 샤갈의 그림과 그의 사랑 얘기를 해줄게.
마르크 샤갈 <방랑하는 유대인, 1923~25>
샤갈은 러시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어. 유대인이었지. <방랑하는 유대인, 1923~25>이라는 그림 속 나그네는 모자와 긴 수염으로 그가 유대인임을 나타내. 우린 흔히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이 유럽에서 심했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 또한 유대인에 대해 오랜 차별을 둔 나라란다. 그러기에 러시아에서 자란 샤갈은 숙명적으로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움을 찾는 예술적 DNA를 추구하게 되었는지 몰라.
가난과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그의 재능은 숨길 수 없었구나.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스무 살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그림을 배우러 가. 그는 사진 수정 작업 조수로 일하면서 간판 그리는 일을 했어. 느루야, 샤갈도 처음부터 화단을 들썩이는 놀라운 화가는 아니었단다. 그는 사진 작업의 조수로, 간판 그리는 페인트 공으로 지냈고, 나중 이때의 경험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어. 그는 자신의 붓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화가가 되기를 소망했어. 결국 프랑스로 떠난단다.
당시 "별은 파리의 하늘에만 뜬다."라고 할 정도였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지상에 내려와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오르피즘 등을 캔버스 위에 실험하던 놀라운 시기였지. 그는 예술과 창작의 도시, 파리에 있으면서 회화에 관한 새로운 시도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추구했어. 그러면서도 끝내 자신의 고향과 벨라를 잊지 못했지.
마르크 샤갈 <농부의 삶, 1925>
그가 고국 러시아의 농부를 그린 <농부의 삶, 1925>이라는 작품이야. 이가 빠진 농부의 순수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농부는 흰 말에게 푸른 나뭇잎과 작은 꽃을 주고 있어. 창들은 모두 열려있고 사람들은 나지막한 전등 아래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춤을 추기도 하지. 정장을 하고 마차를 타고 이웃 결혼식에 가기도 할 거야. 그는 자주 소박한 일상을 동화책 속의 삽화처럼 그렸어. 그가 그의 그림에 뿌린 MSG는 "환상"
느루가 보듯 이 그림의 따스한 분위기는 색채에 있어. 마르크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라고 한단다. 느루야, <농부의 삶, 1925>에서 보이는 파란색을 보렴. 웃음이란 수줍은 미소와 파안대소가 함께 있는 것처럼 같은 파랑인데도 화면 안에 너무나 다양한 색채의 프리즘이 나타나지 않니? 삶의 환희와 약동은 풍요로운 색깔로 넘쳐흘러. 쉴새없는 도전 끝에 그는 마침내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강한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룬단다.
벨라를 잊지 못한 샤갈은 1914년, 파리에서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어. 샤갈이 러시아로 입국한 2주 후에 서유럽에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러시아는 유럽과 맞닿은 국경을 폐쇄했지. 귀국을 조금만 미루었더라도 샤갈과 벨라는 만나지 못했을 거야. 전쟁은 인간이 가진 미덕 중 많은 것을 쏘아 명중시켰지만 샤갈의 사랑만큼은 조준하지 못했어. 샤갈은 벨라와 결혼했어.
느루야, 샤갈이 벨라와 처음 만났던 때를 한 편의 시처럼 읊었구나. 들어보겠니?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마르크 샤갈 <산책, 1917~18>
1917년 작품, <산책>이야. 사랑할 때,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말이 '말'만은 아닌 것 같구나. 그림 속 벨라는 하늘을 둥둥 떠다니며 샤갈을 끌어당기고 있어. 연인에겐 그들을 잡아당기는 지구의 중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나 봐? 샤갈은 작품 속에서 자신을 주로 초록색으로 묘사했거든. 봐. 초록이 뒤덮인 대지가 출렁거리고 그는 사랑하는 이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로 우리를 감염시키고 있잖아. 성탄을 축하하는 포인세티아의 초록과 붉은 잎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축복이 넘치지.
또 그의 작품 속 지붕은 모두 그가 자란 비테프스크를 상징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비테프스크는 환상적인 분위기, 물결치는 꿈의 근원이야. 비테프스크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흰 소는 커다란 눈으로 우리에게 말을 붙이고, 지붕 위 바이올린은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춤추지. 낯선 사물들이 서로를 포옹하는 곳, 가난한 삶에도 아름다움이 있고, 평등한 햇살 속에 말이 꽃이 되어 상대에게 건너가는 곳이야. 샤갈의 캔버스는 환상으로 가득해.
그리고 춤추는 지붕들이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인단다.
"내일은 수수께끼예요.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오늘 당신이 할 일이에요."
마르크 샤갈 <결혼, 1950>
느루야, 너희는 스물다섯이지. 연애도 하고 싶고, 학업이든, 일이든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나이지. 하지만 12월이 된 지금, 느루의 얼굴은 조금은 지치고 고단해 보이는구나.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도 깨어 있고, 가끔은 핸드폰이 나르기엔 과부하가 걸릴 정도의 하소연이 들리고, 때로 거울을 돌려놓고, 드물게는 혼자 술을 마시니 말이야.
끊임없이 네가 누구인지 증명하라는 사회에서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지. 그 한 문장에 담겨 있는 무수한 말들을 엄만 알고 있단다. 자꾸만 남과 비교하게 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같아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드는 거겠지. 다리에 힘을 주어 힘껏 달리는 대도 늘 같은 높이만큼 올랐다 한없이 추락하는 롤러 코스트의 레일 위에 있는 것 같은 불안, 이런 볼품없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줄 사람은 없는 것 같은 절망,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게 마치 '여자로서 매력 없음'의 증거인 듯하고, 아직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게 '독립된 인격체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능력'도 갖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이 드는게지.
그래, 그 마음 이해한단다. 수시로 얼마나 자신을 나무라겠니!
"좀 더 열심히 공부하지 그랬어."
"좀 더 예쁘게 태어나지 그랬어."
"좀 더 똑똑한 머리를 갖지 그랬어."
느루야, '좀 더'는 '부사'지. 부사는 문장에서 행위를 꾸며주는 말이야. 행위를 하는 주체가 없다면 있을 수 없는 단어란다. 공부하는 주체가 없이 '좀 더 열심히'는 존재하지 않아. 아름다운 주체 없이 '좀 더 예쁜'은 상상할 수 없어. 네가 없다면 '좀 더'는 없다는 말이야. 혹시 '너'는 없고 '좀 더'만 있는 문장을 살고 있지 않니?
샤갈은 사진 작업의 조수, 간판 공으로 일하면서도 자신을 다독였어. 자신을 나무라지 않았지. 벨라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어. 아마도 그는 "좀 더"라는 말보다 "나"라는 말에 더 집중했을 거야.
스물다섯의 시간을 보내며 뭔가 부족한 게 있었다면, 그것이 너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그건 돌려보내면 돼. 취직이 안되었다면 그간의 시간을 '시행착오'라는 수주처에 반품하고 다시 준비하면 돼.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뽁뽁이로 잘 싸서 말이야. 남자 친구가 없다고? 그럼 당장 난 어떤 남자에게 끌리는지부터 고민해. 의외로 선택당하기만 바라고 나와 맞는 남자친구를 선택하지 못하더라. 매력이란 자신이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믿지 않는 한, 매력적일 수 없어. 미니스커트의 완성은 쭉 뻗은 다리에 있지 않고 당당한 걸음걸이에 있단다. 스물다섯은 믿지 않겠지만 쉰다섯이 되면 다 아는 사실이야.
샤또 무똥 로칠드라는 와인의 명가에서 1970년 샤갈의 그림으로 라벨을 빚었지. 가격을 산정할 수 없는 와인이라고 하는구나. 엄마가 본 사진 속 2021년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2022년은 느루도 느루 친구도 가격으론 가늠할 수 없는 매력적인 스물여섯이 되길 바라본다.
'행운'이란 이마가 훌떡 까져 놓치기 쉬운 대머리라지?
행운이 느루와 느루 친구를 지나차며
"아가씨~ 오, 나 좀 봐요." 라고 윙크하면? 망설이지 말고
"저요~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