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바르베르니 궁전의 타원 계단> 외

by 안노라

느루의 "다녀올게요."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유리창에 기대어 흐르는 빗물이 보였어. 우산은 준비했으니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 올 일은 없겠지? 하지만 조금 더 커다란 우산을 준비해 줄 걸 그랬나 싶었어. 느루의 목소리가 굳어 있었거든. 50kg 역기를 든 목소리의 긴장을 숨기지 못했지. 존경하는 교수님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난다는데 심호흡을 하는구나 싶어 안쓰러웠어.



느루야, 마음이 복잡하지?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마음 한 켠,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도 하고, 고시에 합격도 했는데 아직 취준생인 자신의 처지를 저울에 올렸다 내리며 마음의 평형을 찾으려 애쓰고 있지? 지금 느루의 일 년은 엄마의 십 년과 맞먹는 시간으로 다가올 테니까. 그만큼 뒤처진 시간 속, 무수한 폭풍우를 우산도 없이 맞고 있는 기분이지?



느루의 방 문을 닫으려다 보니 네 의자가 보이더라. 매번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는 자신감을 주워 올리느라 헤아릴 수 없이 허리를 굽혔을, 방 한가운데 덩그마니 놓여 있는 느루의 의자! 불현듯 '사람도 자기에게 알맞은, 자신이 빛나는 자기만의 자리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느루의 마음이 비에 젖지 않도록 활대가 크고 튼튼한 우산을 준비해 주고 싶구나.


느루야, 너 이 작품 본 적 있니?



보로미니 계단 1.jpg 바르베리니 궁전의 타원 계단 -보로미니 작품, 1631~1633



오리라는 예감조차 없었던 새로운 시대! 누구보다도 앞서 '위대한 바로크'를 로마에 초대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의 초기 작품 '바르베리니 궁전의 타원 계단'이란다.



느루야, 우아하지?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을 상징하는 '벌' 장식이 조각된 나선형 계단이야. 도리아식 기둥에 별다른 꾸밈없는 계단일 뿐인데도 운동화를 신고는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는 기품이 느껴지지. 휘어진 난간은 연잎 가장자리에서 또르르 구르던 빗방울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고요한 파격. 빗방울의 무게만큼 연잎이 눕듯, 성공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만큼 이 계단은 권력을 향해 휘돌았을까?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의 우르바누스 8세 교황(1623~1644 재위)은 전 유럽의 화려한 중심이었어. 그는 신의 대리자로서 그에 걸맞은 품위 있는 집을 원했지. 스포르차 추기경에게서 거대한 빌라를 구입한 그는 1625년, 로마 최고의 건축가였던 카를로 마데르노와 잔 로렌초 베르니니에게 자신의 집(궁전) 건축을 맡겼어. 곧 연회장의 천장은 400미터가 넘은 프레스코화로 채색되었고, 건축, 조각, 그림 등 당대 예술의 걸작들이 이곳에 모였단다. 신(神)의 영원한 집은 교황청이었지만 바르베리니 궁전이 완공되었던 1633년엔, 신도 주소를 옮기고 싶었을지 몰라.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1-horz - 복사본.jpg 작자 미상 <성 야고보의 옷을 입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초상, 1630년 경>



그런 바르베리니 궁전의 한 귀퉁이, 사적인 통로 계단 작업을 맡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1599년 스위스 루가노(Lugano) 호수 근처 비소네(Bissone)에서 태어났단다. 석공이었던 아버지는 보로미니가 9살 때, 그를 밀라노로 견습 보냈어. 이때 보로미니는 석재 절단을 비롯, 다양한 건축과 조각의 기본, 드로잉을 경험해. 하지만 동료와 농담하는 여유, 사회의 언어를 읽히는 문해력(文解力), 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관용은 배우지 못했어. 막일부터 시작한 그의 작업은 실수가 용납될 수 없었고 도움이나 조언을 구할 데도 없었거든. 자존심 강한 그는 갈수록 완벽한 기술을 익혔고 더욱더 고독하게 자신의 안으로 파고 들어갔지. 건축에 대한 열정과 천재적인 두뇌, 냉소적인 마음, 믿음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그는 대리석과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굳센 의지를 가진 청년으로 성장했어.



보로미니는 스무 살이 되자 먼 친척이자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카를로 마데르노(Carlo Maderno, 1555~1629)를 찾아갔단다. 마데르노는 마침 베드로 대성당의 책임건축사로 있었어. 마데르노의 대가(大家)다운 깊고 명민한 시력은 보로미니의 잠재력을 금방 알아보았어. 늙은 스승과 어린 제자라고 해야 할까? 마데르노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상상을 띄우면 보로미니는 그만의 독특하고 이질적인 시선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형상을 입히곤 했지. 느루야, 그들의 시간은 아름다웠구나. 보로미니에게 가장 큰 행운이자 불운은 마데르노와 함께 했다는 것,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마데르노 밑에서 건축을 배우던 중, 어쩌면 혹독한 운명의 시련일 수도 있고, 다른 기회였을 수도 있는 변수가 보로미니의 삶 속에 초대돼.



베르니니 초상.jpg <잔 로렌초 베르니니 자화상, 1623>



보로미니가 세상에 울음을 터트리기 9개월 전, 밝게 빛나는 별이 이탈리아 나폴리, 피에트로 베르니니(Pietro Bernini)의 집에 떨어졌어.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전전긍긍하는 피렌체 출신의 이류 조각가였지. 그에겐 열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여섯 번째 아이가 자신의 평생에 걸친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단다. 그의 이름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지난 수천 년의 예술가를 단번에 무릎 꿇리고 바로크 시대를 황홀하고 찬란하게 조각한 조각가이자 보로미니 평생의 숙적(宿敵)이지.



느루야, 두 사람의 환경은 완연히 달랐어. 보로미니가 밀라노에서 석공의 허드레 일을 배우기 시작한 아홉 살 즈음, 베르니니는 바올로 5세 교황을 면전에서 스케치했어. 탁월함에 감탄한 바올로 5세는 추기경 마페오 바르베리니에게 어린 베르니니의 교육을 맡겼지. 추기경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나중 235대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되는 인물이야. 베르니니는 주위의 칭찬과 기대, 신이 주신 재능에 대한 우월감, 풍족한 환경, 선택받은 자로서 수용되는 환경에서 자라났어. 그에게 두려운 건 자신의 한계뿐이었지.



석공의 아들인 보로미니와 조각가의 아들인 베르니니는 베드로 대성당과 바르베르니 궁전 작업을 통해 만났어. 보로미니는 마데르노의 조수였을 뿐이었고 베르니니는 이미 로마를 깜짝 놀라게 한 젊은 예술가였지. 보로미니의 자리는 기둥 뒤였고 베르니니는 무대 앞이었어. 석공의 지렛대로나 열 수 있을 보로미니의 침묵과는 달리 베르니니의 화술은 미풍에 나부끼는 오월의 꽃잎이었어. 보로미니는 건축가로서 신이 거처할 장엄한 공간을 짓고 싶었고 베르니니는 조각가로서 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어. 열망의 뜨거움은 같았지만 열망을 실현할 도구는 달랐어. 둘의 거리는 세상의 줄자를 다 이어도 잴 수 없을 만큼 멀었지.



느루야, 개성 강한 두 예술 청년이 바르베리니 궁전 확장 공사에서 만났다고 했지. 이번엔 엄마가 바르베리니 궁전의 주 통로가 되었던 베르니니의 계단을 보여줄게. 눈여겨볼래?



03fbc6ab1b9fa215a291fc4169df6818.jpg 바르베르니 궁전의 주계단 - 베르니니 작품



베르니니의 계단은 교황과 교황 가족의 개인적인 공간과 업무적 공간을 연결하는 투박하고 실용적인 계단이야. 가운데 직사각형의 중정(中庭)을 두고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견고한 기둥들로 이어져 있어. 재료가 주는 물성이 전체 디자인을 지배하지. 계단이 있는 위치도 북쪽 중앙에서 각 건물의 내 외부를 연결하는 포트(port) 역할을 해. 남쪽의 우아한 보르미니의 계단이 발 끝을 세우고 돌다리를 건너는 수줍은 왕비라면 베르니니의 계단은 칼집에 칼을 꽂고 말을 달리기 시작한 고대 로마의 장수 같다고나 할까?



느루야, 네가 보기는 어떠니? 어떤 계단이 더 마음에 끌리니?



이 바르베리니 궁전은 후대의 사가(史家)들이 바로크 양식이 태동한 건물이라고 명명했어. 또 조각가였던 베르니니가 이 건축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건축 일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어. 마데르노와 수석 조수였던 보로미니가 설계와 기초를 다졌다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마데르노 사망 이후인 1629년, 베르니니가 총감독을 맡아 1633년 완성했단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만 이 건물의 최종 책임자였던 베르니니가 설계비의 대부분을 독점했기에 이후로 보로미니와 사이가 나빠졌다는 말이 전해지는구나.



엄만 둘 사이가 왜 나빠졌는지,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다만 엄마가 늘 사회의 낮은 자리에 있어서인지 자꾸 보로미니의 입장을 살펴보게 돼.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견딜 수밖에 없는 짐이 있다면 보로미니에겐 너무 무거웠던 것이 아닌지. 보로미니는 위대한 스승의 상속자가 되지 못했어. 마데르노가 죽고 난 뒤, 베드로 대성당의 총감독자는 수석 조수였던 보로미니를 제치고 베르니니가 임명되거든. 베르니니의 탁월한 재능은 의심할 여지없지만 그에 더하여 어릴 때부터 남다른 인연이었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베르니니의 강력한 후원자였기 때문임을 부인할 순 없을 거야. 서른을 맞는 보로미니는 스승의 죽음과 거듭되는 좌절 속에 홀로 있었어. 햇살의 따사로움 말고는 공평한 것을 찾기 어려운 세상에, 홀로.



Pietro_da_Cortona_-_Portrait_of_Urban_VIII_(ca._1624-1627)_-_Google_Art_Project_-_edited.jpg 피에트로 다 코르도나 <우르바누스 8세 초상, 1624~27>



살다 보면 느루도 보로미니와 같은 날을 맞닥뜨릴 거야. 정말 열심히, 쉬지 않고 살아낸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 미래조차 흑백 TV처럼 어둡고 세상에 놓아둔 상냥한 말들은 길고양이가 다 먹어버린 것 같은 날! 엄마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단다.



그녀는 욕심 많고 능력도 많은 동료였지. 같은 직위, 이웃한 관할 지역으로 우린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어. 업무 상 많은 부분에서 협력이 요구되었지만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갈등도 수반되었지. 나이도 비슷했는데 우린 친하지 않았구나. 보로미니와 베르니니처럼 지나치게 다른 성격 탓도 있었고 일을 대하는 철학도 상이했지. 그녀는 나의 원칙적인 경직성이 싫었을 테고 나는 결과만을 추구하는 그녀의 업무추진 방법이 거슬렸어. 하지만 둘 다 업무성과가 뛰어났구나.



불씨가 있다면 바람이 부는 법. 바람은 회원 전입 전출 문제였고 주위의 색깔 있는 관심과 불필요한 간섭은 불쏘시개가 되어 지점 안팎으로 시커먼 연기를 피워 올렸어. 그때 난 그녀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 즉 여론전을 감행해 날 모함한다고 느꼈어. 엄만 긴 문장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았지. 그 건을 상위기관에 위임했고 그곳에서 엄마의 손을 들어주었어. 그녀는 분쟁 조정에 실패했어.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지. 이후 엄마는 건강 악화로 퇴사하게 되었구나.



엄마가 매일매일 실패한 삶을 두 다리에 매달고 공원을 뛰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어. 바라던 직위로 진급했다는 소식이 수화기를 통해 건너오더구나. 다시 복직한다면 자신의 권한으로 예전의 직위를 고려해 보겠다는 말도 덧붙였어. 그녀의 목소리에서 꽃가루가 날리고 축포가 터졌어. 그녀 몫의 승리였지.





느루야, 조심히 가고 있지? 엄마도 네 방 유리창 밖, 빗방울에 휘청거리는 나뭇잎을 보며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부었어. 받쳐 놓은 컵에 내려지는 커피의 조로록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갈아 놓은 커피 원두에서 안개처럼 향이 피어 올라오네. 코를 대고 커피 향을 맡고 있다 보면 생각이 원두 사이사이로 들어가서 생각을 맡을 수 있게 되지.



그때의 엄마 생각을 맡아볼까?

“직장이라는 영역에서 본다면 나는 철저히 패배했어. 두 말할 여지가 없지. 인정할 밖에. 대신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아보자. 평소 꿈꾸던 대학원에 도전하고, 쉽지 않겠지만 강의 자리를 알아보고, 부족한 대로 글을 써보자. 세상을 잊고 나를 기억해야 해.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었는지, 난 어디서 행복한지, 난 무얼 잘하는지…”



세상을 잊었던 엄마완 달리 보로미니는 베르니니를 잊지 못했어. 그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낙하산 인사 정도가 아닌 직위 강탈로 여겼어. 건축의 기초가 부족한 베르니니가 치사스러운 모함과 친구의 권세를 이용해 존경했던 스승의 자리, 또 이어받을 나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말이야. 그의 뱃속은 모멸과 억울함으로 뒤틀렸지만 그의 재량권은 없었어. 베르니니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명령을 수행하고 작업을 돕는 수밖에. 용암이 약한 지맥을 찾아 끓어오르듯 그의 분노는 가끔씩 더 약한 자를 향한 냉정한 말투와 독선적인 태도로 드러나기도 했어. 느루야, 그는 감기를 앓듯 열등감을 앓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베르니니에겐 라틴어로 쓰인 성경처럼 신성하고 값비싼 주문 장부가 빼곡히 채워졌어. 성직자와 귀족들의 요청이 줄을 이었지. 그는 자신감과 우월감이 흠뻑 밴 걸음으로 바삐 건축 현장을 돌아다녔어. 그의 얼굴에 주름은 찾아볼 수 없었지. 베르니니의 젊은 날은 다림질을 한 듯 반듯했고 조밀한 사포로 다듬어 매끈했어.



골인지점을 코 앞에 둔 달리기 선수처럼 이 시기, 베르니니의 에너지는 폭발했단다. 마치 올림푸스 산에서 일하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손을 빌려온 듯했지.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모루를 내리칠 때마다 신들의 무기가 쏟아졌듯, 베르니니의 끌이 닿는 곳마다 영웅과 미녀의 살과 피가 튀었어. 그는 밤새 창조의 불을 밝혔고 작업실엔 이글이글 열정이 불타 올랐어. <다비드, 1623~24>, <페르세포네의 겁탈, 1621~22>, <아폴로와 다프네, 1622~25> 등이 모두 이때의 작품들이지. 느루야, 그중 <페르세포네의 겁탈>을 보여 줄게.



잔 로렌초 베르니니 <페르세포네의 겁탈, 1621~22>



페르세포네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딸이야. 그녀가 초원에서 꽃을 따고 있는 모습을 본 저승의 신 하데스는 그만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구나. 꽃을 따는 그녀의 발 밑을 벌려 순식간에 시커먼 지하의 세계로 그녀를 납치했어. 사랑하는 딸을 찾는 데메테르의 얼어붙은 심장은 땅 위의 어떤 곡식도 자라지 못하게 했지. 대지는 쩍쩍 갈라졌고 한 톨의 소출도 없었어. 인간들의 아우성이 올림푸스를 흔들었지. 나중 제우스와의 약속을 통해 페르세포네는 3개월은 하데스와 나머지 기간은 어머니 데메테르와 살게 돼.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겨났다고 하지.



느루야, 탁월했던 베르니니는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지하세계로 데려가려는 바로 그 순간에 초침을 맞췄어. 모든 호흡을 빼앗고 오로지 페르세포네의 간절한 외침만 남겨 놓았지. 페르세포네의 허벅지를 움켜 쥔 하데스의 손과 이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페르세포네가 밀치는 하데스의 구겨진 얼굴은, 경건한 수도사들에게 살아있는 인간을 냉동시킨 것 같은 창백한 관능을 배달했어. 이 작품을 의뢰한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은 완성된 조각을 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했어. 잠시 뒤, 그는 베르니니가 신이 피조물의 깊고 넓은 영혼 속에 숨겨 놓았던 태초의 에덴동산으로 모두를 초대했다는 걸 알았지.





보로미니 역시 다른 사람 못지않게 베르니니를 인정했지만 건축과 공학에 대한 지식은 자신보다 부족하다 여겼어. 그리고 여태 쌓은 자신의 헌신, 노력, 열정이 고작 교황의 권위라는 파도 한 방에 쓸려버린 허약한 모래성이었다는 무력감과 열등감에 시달렸어. 보로미니는 무대를 떠났어. 그는 홀로서기로 결심했구나.



느루야, 보로미니와 베르니니가 경쟁하고 성장하는 얘긴 커피 한 잔 마시고 마저 얘기해 줄게. 지금은 지하철 차창 밖을 보며 차분히 이 말을 먼저 들어보겠니?



느루야, 너의 재능과 잠재력을 응원하고 한껏 격려해 주시던 교수님께 취준생의 모습으로 인사를 드리려 가는 걸음이 무겁지? 기대에 부응해 누구보다도 빨리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고 싶었던 교수님이라고 했으니 엄마도 느루의 고된 마음이 짐작돼. 또 원하던 기업에 입사했거나 이미 고시에 합격해 편안하게 참석하는 친구들을 보며, 축하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급해질 마음도 예상돼.



그런데 느루야, 헌신과 열정, 노력은 보로미니만 한게 아니란다. 그 이상으로 베르니니도 노력했지. 그는 직접 자신의 팔과 다리를 불로 지져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관찰했어. 그리고 차디찬 대리석 속에 가두어 두었던 번득이는 눈알과 이를 악문 비명을 터트리게 했지. 관람자로 하여금 대리석을 보며 살덩이가 타는 냄새를 맡게 했어. 진정 어린 실험과 고민을 통해 그는 살아있는 조각을 빚었던거야. 엄마의 직장동료 역시 엄마 이상으로 쉬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란다. 현명했고 의지가 강했고 성과를 내기위해 자신의 지위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했지. 그녀는 책임감 강한 본받을 점이 많았던 동료였어.



네가 도착하면 화사하게 웃고 너스레를 떨 친구들도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야. 남몰래 한 동이의 땀을 흘렸다는 것을, 넘어진 자리에 주저앉아 무수히 눈물을 쏟았다는 것을. 두려움에 이를 꽉 물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래방에서 핏줄이 터지듯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찢어진 자존심을 기우는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는 것을!



느루야, 그 모든 애씀을 토닥이며 진심을 다해 함께 나누고 즐기고 오려무나. 그들의 성취를 축하해주고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려무나. 네 마음속에 쑥쑥 자라는 우정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하고 오려무나. 너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 넌 이제 새로운 세계로 한 발 내디뎠을 뿐이야. 배우고 성장할 기회란다. 엄마가 엎어진 자리에서 잊고 있었던 ‘나’를 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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