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주 - 작가 미상 스타비아이에서 발굴된 <꽃을 꺾는 처녀>
봄은 이렇게 걸어올까요?
풀물이 든 맨발로 한 뼘씩 한 뼘씩, 우리의 서늘한 꿈속을 디뎌 올까요?
계절의 여신 중 한 신녀가 신화(神話)의 벽 속에 갇혀있다 부풀어 오르는 공기에 놀라 걸어 나왔나 봐요. 봄은 벽에도 꽃을 피우니까요.
하지만 봄에 피는 꽃은 애처롭습니다. 수시로 기면증에서 깨어나는 매운 겨울의 눈치를 봐야 하고, 다투어 피는 무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고, 사나운 바람에게 몰매를 맞아 오래 피우지 못하고 바로 스러지니까요. 마치 우리의 삶처럼 애달프고 애틋하지요.
새들이 잎눈더러 숨지 말라고 종알거리는 오늘, 오래전 폼페이 인근 도시 스타비아이에서 발굴된 프레스코 한 점을 보여드립니다.
잠자리 날개를 빌려 옷을 지었나 봅니다. 가볍고 투명한 그녀의 치맛자락에 하얗고 노란 봄이 물들고 있습니다. 이천 년의 시간을 맨발로 건너온 그녀의 옷자락에서 봄의 꽃향이 풍겨납니다. 그녀는 왼손에 풍요의 풀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꽃을 꺾고 있네요. 꽃을 꺾는 가녀린 손가락은 그늘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햇빛이 빚은 조각입니다. 손끝에 부러지는 꽃잎조차 비명 대신 노래를 부를 듯합니다.
전 머리를 틀어 올려 가늘고 긴 목이 드러난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 돌려세우고 싶습니다. 혹시 절 바라보실 수 있을까요? 당신의 맑은 눈동자와 작은 잎새 같은 입술이 보고 싶군요. 말소리는 물방울이 되어 풀밭 위로 또로록 또로록 떨어지겠지요. 제 다정한 소리를 그녀는 듣지 못하나 봅니다. 여전히 청초한 모습으로 꽃을 따고는 신화의 세계로 총총히 걸어가 버렸습니다.
이 프레스코화를 그린 화가는 떠나버린 연인을 그렸던 건 아니었을까요? 다시는 고개를 돌려 날 다시 볼리 없는 연인, 심장에 그리움을 꽂아놓고 무심히 떠나가버려 봄비가 눈물이 되게 한 연인 말입니다.
녹슨 시간을 버티며 어두운 땅 속에서 돌아온 옛 스타비아이 여인을 그리워합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인간의 감정이 담백하고 풍요로왔던 시대를 읽습니다. 인류문명의 봄이었던 시기였지요. 꽃의 봄은 왔으되 인간의 봄은 오지 않은 지금! 혹 '나의 봄', 그 찬란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깨를 돌려 눈망울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