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 - 장 레옹 제롬 <배심원 앞의 프리네>
생명의 근원인 신의 성기와 생명의 자궁인 바다로부터 잉태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땅에 여신의 품위를 지닌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었어요. 자신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소식에 질투로 얼굴이 벌게진 아프로디테는 날이 밝자 서둘러 그리스 크니도스 섬으로 향했습니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신전 한가운데, 이제 막 목욕을 하려고 옷을 벗은 듯 나신의 조각상이 새벽빛을 머금고 유혹하듯 서 있었지요.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이 마치 실제 살아있는 자신인 양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녀는 이 조각상을 만든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를 찾았습니다.
“저 것이 누구이냐? 너는 어디서 나의 나체를 훔쳐보았는가?”
프락시텔레스는 “저 조각상은 바로 여신님이옵고 아레오파고스에서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여신상에 모델이 된 그리스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름은 프리네(Phryne)입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아테네에 살았던 최고의 헤타이라입니다. 헤타이라(hetaira)라는 말은 ‘매춘부’라고 옮겨야 하지만 정치, 예술, 철학 등의 지적인 교양을 갖추고 당대의 지성인들과 토론과 논쟁이 가능하며 미적인 우월함으로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자의 아레테를 입증한 ‘뇌섹녀’들이었습니다.
프리네는 많은 기부와 뛰어난 지성으로 사회에 참여했으며, 문학적, 음악적 재능 못지않게 아프로디테의 현신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탁월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명한 정치가, 철학가, 예술가, 장군들이 다투어 그녀에게 사랑을 구했지만 웅장한 기개와 빛나는 논리, 섬세한 감각을 가진 자만이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그리스의 고관대작인 에우티아스는 애달았습니다. 보내는 꽃들은 번번이 되돌아왔습니다. 그녀가 그를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지요. 에우티아스는 졸렬했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녀에게 모함의 그물을 던집니다.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종교행사 중 ‘포세이돈의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프리네는 자신의 풍성한 머리를 풀어헤치고 발가벗은 몸으로 아프로디테처럼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행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본 에우티아스는 곧 그녀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합니다. ‘신성모독죄’는 사형에 이르는 중죄였습니다. 그의 비뚤어진 마음이 일으킨 복수였지요. 이제 그녀는 올가미에 걸린 새,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그리스의 법정인 아레오파고스에서 그녀의 변론자이자 정부(情夫)였던 아테네의 정치가 히피리데스(Hypereides)는 어떠한 논리나 이성적인 말로도 배심원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마지막 변론에서 그녀에게 천을 씌워 법정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동상의 제막식을 하듯 천을 단숨에 벗깁니다. 이 그림은 이 순간을 포착한 장 레옹 제롬(Jean-Leon Gerome 1824~1904)의 <배심원 앞의 프리네>라는 작품입니다.
“신의 의지가 빚어낸 아름다움을 인간이 파괴할 수 있을까요?” 이슬에 젖은 한 떨기 백합 같은 프리네의 알몸을 본 순간, 경탄과 감탄의 눈길과 신음소리가 법정을 전율케 합니다. 배심원들은 신이 내린 아름다움에 인간의 법은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결과 함께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후로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크니도스의 비너스>를 계승하여 완전한 미(美)를 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 우아함과 관능적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유명한 <밀러의 비너스>는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으로 그리던 아름다움의 원형을 찾아가는 고대로부터의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향한 것이었고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라는 말의 구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