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농담 55. 아메리칸 팝 아트 거장전을 다녀와서 (로이 리히텐슈타인)
쩔쩔 끓는 여름, 느루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낮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서관과 집을 씩씩하게 오가고 있지만 밤엔 늦도록 잠 못 이루니까요. 전 눈치가 백 단인 엄마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겉 다르고 속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밥 먹어."라든가, "친구 만나고 와." 하며 느긋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하는 딸이 책상 위에서 시험만 보다 끝나는 이십 대가 될까 봐 안절부절입니다. 지금은 시험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자, 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도전해야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안쓰럽네요.
목을 조였다 놓았다 조였다 놓았다 하는 촘촘히 숨 막히는 하루를 벗어나라고 함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마침 <아메리칸 팝 아트 거장전> 소식이 들렸거든요.
예상치 못했던 문제는 팝 아트(Pap Art)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제스퍼 존스 등등 내노라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280여 점 있었지만 "이해하기 어렵다"가 주된 소감이었습니다. 느루만요? 아니에요.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자들 대부분이 "저게 그리 비싸다고?" 또는 "뭘 표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둥둥 떠다니는 걸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팝 아트의 특성상, 행사 포스터물이 상당수 있다 보니 작품에 대한 아우라는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젊은 관람자들은 앤디 워홀의 <마를린> 연작 앞에서 "색이 화려해서 사진은 잘 나오겠는걸"하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맞습니다. 팝 아트의 특징 중 하나가 '캔디 칼라'입니다. 마치 혀를 붉고 파랗게 물들이는 색사탕처럼 유치하고 화려한 색을 내세웁니다. 키치스럽지요. 세련이나 우아하고는 한참 먼 거리입니다. 또 대중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표나 상품, 대중스타, 만화 등의 대중적 이미지를 차용합니다. 뻔뻔하고 속된 느낌이 듭니다.
팝 아트는 1958년 로렌스 앨로웨이가 '예술과 매스미디어'라는 글에서 'popular art'라는 말을 사용한 이후 미술사에 하나의 양식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런 글은 다소 딱딱하고 지루해질 수 있지만 느루가 궁금해했던 지점을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의 <키스 5, 1990>를 보며 설명해 드릴게요. 저 키스처럼 부~드럽게...ㅎ
키스하고 있는 두 남녀를 클로즈 업 했습니다. 진하고 두꺼운 검은색 테두리 안에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의 벤-데이 점(Benday Dot)으로 구성된 형태입니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해 놓은 것 같지요. 실제로 이 작품은 <걸스 로맨스>라는 만화 중 한 컷을 차용했습니다. 초기엔 알루미늄판에 구멍을 뚫어 망점 하나하나를 직접 그렸습니다. 이후 그래픽 아트용 벤 데이 판을 구입해 스텐실 기법으로 균일하게 점을 찍었습니다. 1900년 이전에는 화가가 직접 손으로 그리지 않고 인쇄기법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발상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기술적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미술에서 화가가 직접 그린 '원본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중적 이미지를 빌려오고, 직접 그리지도 않으며, 단순하고 유치한 색으로 완성한, 어찌 보면 참으로 조악한 이런 작품이 현재는 미술관에 전시되고 비싼 값에 거래되며 20세기 중후반, 미술의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이상하지요? 관점을 고정하면 변화를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볼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지만 어딘가에 제일 먼저 가 있는 사람들, 그들이 아방가르드적 사람들이다."
20세기 초반, 대상이나 서사(敍事)를 재현하던 미술가들에게 '사진기의 발명'은 시대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모방이나 재현은 인간보다 사진기가 더 잘할 수 있으니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시기, 선구자들이 착시와 환상을 일으키는 원근법을 캔버스에서 몰아냈습니다. 곧이어 피카소는 형(形)을 파괴했고, 마티스는 색(色)을 독립시켰고 뒤샹은 대상(objet)의 개념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이제 사과는 동그랗거나 빨갛지 않아도 화가의 예술세계에 따라 사과일 수 있게 되었지요.
예술은 시대가 낳지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미덕인 1960년대가 되었습니다. 인류의 문명에 이토록 풍요롭다고 인식한 시대가 있을까요? 끝도 없이 쏟아지는 상품은 위태로웠던 전통의 둑을 무너뜨렸습니다. 예술가들은 점차 자신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것,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박물관에서 본 것이 서로 관련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삶의 현장에 미켈란젤로의 영웅인 다비드는 없었지만 미키마우스는 수시로 도시에 출몰했고 배트맨은 밤마다 하늘을 날았습니다. 헨델의 메시아는 숭고한 성당에서 노래하지 않았으며 라디오에서는 재즈와 팝을 종일 연주했습니다. 예술가들은 광고와 영화, 만화, 상품과 팝, 잡지 등 삶과 면밀히 소통하는 대중문화에서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서둘러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제 문화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렸습니다.
그동안의 예술이 귀족이나 부르주아를 대상으로 한 고급스러운 우월함이었다면, 팝 아트는 사회 현상을 반영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즉 예술의 허세를 거부하는 민주적이고 차별 없는 평등함을 추구했습니다. 추상과 환상 대신 냉정한 구상과 감각적 화려함, 일시적인 재치를 원료로 대중적이고 소모적이며 값이 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예술을 지향했습니다. 팝 아트는 20세기까지 가문의 문장(紋章)이 살아있던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그 태생적 기질은 기능적인 디자인만 살아남은 미국의 정서에 딱 알맞았습니다. 팝 아트는 고향인 영국의 바다, 대서양을 헤엄쳐 미국에 도착한 후 폭풍성장합니다.
누군가는 팝 아트가 '저속하고 선정적이며 아름답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제 미술이,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게 된 것일 겁니다. 미술은 대상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미술' 그 자체가 되려 하거든요. 미술비평가였던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미술 매체의 순수성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림은 평면을, 조각은 입체와 볼륨을, 건축은 공간을"
1950~1960년 이후 미술은 더욱 물질화되고 미니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미술사'라는 큰 흐름에서 보면 끊임없이 인간의 시지각적인 측면에 색다른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다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볼까요?
전시 작품에 포함된 1964년 작 <희망을 잃은, 1964>입니다. 작품을 확대해 보면 벤 데이 점이 균일하지 않게 뭉쳐있거나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본능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점을 합쳐 하나의 전체로 인식합니다. 그는 작품에서 점들의 크기를 키우거나 거리를 떨어뜨림으로써 전통적인 명암, 채도, 원근 등이 평면에서 어떻게 지각되는지 실험했습니다.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의 창시자라 일컫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l, 1859~1891)의 시도를 뒤이은 것이지요. 교과서에 실렸던 이 작품을 모르는 이는 없을 듯합니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1886>입니다. 쇠라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Red), 파랑(Blue), 초록(Green)이 만나는 곳은 백색광이 나타나고, 색의 삼원색은 청록(Cyan), 진홍(Magenta), 노랑(Yellow)이 섞이면 검은색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됩니다. 빛은 합할수록 밝아지고 색은 섞을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실제 물감의 색과 우리가 보는 색은 차이가 난다는 걸.
그는 우리의 눈이 색을 인식하는 방법 -예를 들어 색이 포개지거나 가까운 거리에 나란히 있으면 다른 색깔로 보이게 되는 현상, 또는 어떤 색을 보면 반대되는 보색의 잔상이 나타나는 현상-에 따라 색을 혼합하지 않고, 치밀한 계산을 통해 원색의 점을 병치시키는 다양한 시지각적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점묘법'이라 부릅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그의 작품 소재로 만화처럼 반복되고 복제되고 표준화된 이미지를 들고 왔습니다. 소비사회의 이미지들은 인쇄나 방송 매체를 통해 재생산된다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동시에 형식에서 쇠라의 점묘법을 다른 형태로 실험하거나, 중세의 삼면 제대화를 연상시키는 삼면화를 제시했습니다. 삼면 제대화는 신을 기리는 성스러운 형식이었지만 작가의 삼면화는 전쟁을 하나의 게임처럼 소비하고 희화화하는 집단의식을 빗대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작품으로 말했고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거나 소비되었습니다.
팝 아트 작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욕망했던 '창조자'의 자격을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노동자라 자칭합니다. 앤디 워홀은 고전적 아뜰리에를 '팩토리(공장)'이라 명명했으니까요. 그것이 의도이든 아니든 대중의 관심을 끌자 곧 '자본화' 되어 작품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의 작품은 작품 자체가 주는 조건, 즉 색이나 구도나 명암을 통해 우리의 미의식을 자극하거나 감동을 주는 부분이 극히 약합니다.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가져 옴으로써 '원본의 아우라'도 상실했지요. 그러니 전시관에 가서 옛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듯 자세하고 오래 머무를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예술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느냐?" 또는 "예술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질문에...
전시관을 뚜벅뚜벅 돌며 그 대답을 찾으려 한다면 팝 아트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술은 문화나 정치, 경제 등의 인간 사회를 이루는 일부로서 사회의 조건들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하는 사회를 보는 '독립된 창'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
PS : 현대미술에 대해 어려워하시는 분들을 위해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빌어 팝 아트의 기본 성격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감상의 Tip이 전달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구요. 키스하듯 부드럽게 하려 했는데 시선만 교환한 '썸'으로 끝나지 않았나 싶네요. 쯧쯔... 시원해지는 오후, 제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장하은의 <보헤미안 랩소디>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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