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오페라 1
10월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올려 볼게요. 매주마다 화가와 그의 작품을 소개했는데 이번에 그림과 연관된 오페라를 넣어 강의 준비를 하다 보니 옛 글이 떠올랐습니다. 음악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쉽게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시대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조연으로서 역사적 사건과 그 시대의 그림과 유행했던 오페라를 연결했습니다.
오페라의 기본을 가볍고 쉽게 몇 가지를 정리해 올립니다. 저처럼 그저 좋아 만 하셨던 분들이 가장 상식적인 흐름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음악에 관해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패스하세요~~
저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젊은 날, 크리스마스이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던 푸치니의 <라보엠>을 봤던 것으로 시작했지요. 무슨 말인지는 도통 모르겠는데 깊은 물속 공기 방울들이 수면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의 목소리가 내는 울림이 그토록 감정적인지 몰랐습니다. 그 후 형편 닿는 대로, 기회 되는 대로 듣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B석 끄트머리에서 귀만 열고 있답니다.(오페라 티켓은 넘 비싸요.) 여즉 한이 돼서 오페라 글라스 쓰고 우아하게 부채를 들고 있는 영화 장면(예를 들면, 귀여운 여인)은 몇 번이고 다시 replay~
먼저 샘들이 익히 들었을 <오페라의 유령> OST를 듣고 시작할까요?
오페라는 1597년, 이탈리아 예술가와 귀족들의 모임 <카메라타 Camerata '작은 방'이라는 뜻>를 통해 처음 탄생했습니다. 꽃의 도시인 피렌체, 지금의 두오모 성당에서 초연했다고 합니다.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라는 작품인데 기록만 있고 작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페라(opera. '작품'이라는 뜻)는 르네상스를 여는 새로운 양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 연극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이 실험해 본 종합 예술이었지요.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납니다.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연극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이 오래된 욕망, 억압된 연극적 본성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은 영화, TV, 게임 등 다양한 놀거리가 있지만 16세기 초를 상상해 보세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영주의 농토에서 노동하고, 일요일 성당 미사가가 외출의 전부인 평민들에게 삶이란 '월화수목금금금' 일만 하는 것이었겠죠. 뭔가 재미있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귀족들은 평민들과는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신분 과시의 수단으로 대관식이나 결혼식 축하연 때 평민들을 궁으로 초대합니다.
이 시대의 회화입니다. 나중 루이 13세의 어머니가 된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딸 마리가 화려한 문장이 달린 황금색 배를 타고 마르세이유 항에 도착한 모습입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파울로 루벤스가 마리의 주문을 받아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라는 24편의 연작을 그립니다. 마리는 앙리 4세의 두 번째 부인입니다. 첫 부인은 샘들이 아는 영화 <여왕 마고>의 주인공 마르크리트 드 발루아지요. 서양사를 조금 아시는 분이라면 이 첫 번째 결혼식 때 신교와 구교의 대립으로 인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이 있었다는 걸 아실 거예요. 종교 내란이었죠. 또 이를 계기로 앙리 4세가 신앙의 자유를 선포한 "낭트 칙령"을 발표하지요.
일단 <여왕 마고>라는 영화에서 제가 아는 최고 아름다운 여인 '이자벨 아자니'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보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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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답지요. 역시 여인의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입니다.(쩔ㅎㅎ) 마리와 프랑스 앙리 4세의 결혼식 축하연이 있었던 1600년, 그리스 신화 <에우리디체>가 오페라로 공연됩니다. 물론, 듣고 난 반응은 다양했겠습니다만... 거의 쓰러졌다고 합니다. 안구정화? ㅎㅎ
볼거리라고는 마을 광장에서 마녀 재판을 하거나 공개 처형을 하는 것 정도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중세에 파장이 컸던 게지요. 흑백 TV에서 컬러 TV로의 변화도 획기적인데 3D 입체 게임이 나왔을 때를 생각해 보시면 될 듯합니다. 평민들은 귀족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페라에 빠집니다. 사람은 오감 중에서 후각이 가장 본능적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전조를 '냄새를 맡다'라고 하잖아요. 본능적 감각으로 오페라에서 돈 냄새를 맡은 이들이 오페라 극장을 짓기 시작합니다. 1637년 베네치아에서 '산 카시아노'라는 극장이 문을 엽니다.
몬테베르디를 오페라의 개척자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사용, 대담한 화성과 변화에 넘치는 관현악법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럼 아리아는 뭘까요? 쉽게 이해하자면 샘들이 오페라나 뮤지컬 보러 가시면 오페라 가수가 연극 중 노래하잖아요. 그게 '아리아 aria'입니다. 선율적인 독창 부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럼 '레치타티보 recitativo'는요? 그건 대사에 음을 붙여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노래하듯 대사를 말하는 걸 뜻해요.
시간이 갈수록 오페라에 연극적 요소가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오페라의 고향인 피렌체는 수공업자나 상공업을 하는 이들이 중심이었습니다. 귀족이나 종교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고 외부에 열려 있었지요. 이들은 오페라를 통해 개인의 감정을 발산합니다. 그때의 오페라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보다도 심했던 것 같습니다. 물건을 팔고는 집으로 가지 않고 오페라 극장 앞에서 새우잠을 자며 연속으로 공연을 보고 돈을 다 탕진하면 도박을 일삼아 '오페라 과부'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답니다. 교황이 오페라 상영을 금지할 정도였다니 예나 지금이나 '덕후'가 존재하나 봅니다. ㅎㅎ
오페라는 르네상스의 끝자락이자 바로크의 시작인 시대에 탄생했습니다. 바로크는 1,600년부터 1750년까지를 말합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바흐의 사망연도가 1750년입니다. 그의 사망으로 바로크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하지요. 여하튼 바로크 시대는 '오페라 세리아 opera seria'의 시대입니다. 진지하고 품격 있는 오페라를 말합니다. 이 시대에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이 자리 잡습니다. 또 'A-B-A' 형식의 '다 카포 아리아 da capo aria'가 주를 이룹니다. 끝의 A형식은 가수가 즉흥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박자로 이루어져 있고 춤이나 리듬을 쓰기도 했지요.
'바로크 오페라'의 중심에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있습니다. 귀족들이 왕에게 건의하여 1717년 건립한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헨델은 예술 부문을 담당합니다. 그는 정형화된 연기와 과장된 의상, 무대 장치로 귀족들의 신분과 품위를 강조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을 해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헨델이 음악가 중엔 정치적 욕망이 강한 작곡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50세 이후 오페라에서 성악곡으로 중심 이동합니다.
이 시기, 이탈리아 중심으로 '카스트라토'가 육성됩니다. 중세 이후로 교회나 무대에 여자는 세우지 못했습니다. '불완전하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소프라노 음역이 필요할 때는 '카스트라토'라는 가수를 썼습니다. 여자의 높은 음역대가 가능한 성장한 남자 가수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가 청아한 어린 남자아이를 거세해 변성기를 거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슬픈 카스트라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리넬리>는 아직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울게 하소서' 들어보세요.
이 시기는 루이 14세(1643~1714)의 절대왕정 시기입니다. 북유럽에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이 정점에 다다랐지만 피가 발목을 적셨던 30년 종교전쟁(1618~1648)이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 소개했던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장애인은 그 시대,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합니다.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는 제가 좋아하는 카라바조, 늘 풍만한 여체로 절 위로하는 루벤스,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화단의 서정시인 베르메르 등이 있습니다. 그림을 몇 작품 볼까요.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영감>입니다. 카라바조에게 성화 주문이 옵니다. 마태에게 천사가 나타나 복음서의 구절을 읊어주었다는 일화를 그려 달라는 것이었지요. 카라바조는 1602년 완성합니다. 왼쪽 그림입니다. 하지만 성당에서는 작품 인수를 거부했습니다. 성스러워야 할 마태가 불학무식한 일꾼으로 그려졌다는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자 복음서의 저자로서 도무지 위엄도, 품위도 없다는 것이었지요.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고혈을 빤다는 사회의 지탄을 받는 무리였지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밑바닥 인생이었던 카라바조는 먹거리를 위해 다시 그립니다. 오른쪽 그림입니다. 이번엔 마태를 좀 더 고상하게, 너무 헐하지 않게 옷을 입혀 그렸습니다. 샘들은 어떠신지요? 어느 쪽이 마태 같습니까?
우유 따르는 여인이군요. 이마가 동그랗고 두 볼은 발그레하네요. 스물 정도 되었을까요. 옷차림으로 봐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녀입니다. 투박한 단지를 들고 질그릇 대접에 우유를 따르고 있습니다. '쪼르르' 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유리창에서 비치는 맑은 빛이 조심스럽게 하녀에게 떨어집니다. 식탁엔 빵이 보이는군요. 달달한 잼도, 풍미를 돋우는 치즈도 없습니다. 소박한 식사를 준비하는 아침, 베르메르는 평화가 내려앉는 공간을 그렸습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밖으로 팽창하여 엄청난 부를 일구었지만 경건하고 검소한 생활을 최고의 미덕으로 쳤습니다. 모든 건 신에게서 나오고 인간의 삶은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입니다.
반 고흐가 이 작품 <유대인 신부> 앞에서 스탕달 신드롬(작품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감동으로 인한 일시적 정신강박!)을 나타냈다고 하지요.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의 작품입니다. 렘브란트는 유화를 두텁게 발라 캔버스 자체에서 부조 효과를 낸다고 할 정도로, 빛이 반사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얼굴을 제외한 신체의 부분이 두터워 각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이 난다고 하네요. 이런 작품은 직접 봐야 합니다. ㅠㅠ
다시 오페라로 돌아와서~바로크 오페라의 대표 주자로는 영국의 헨델과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와 비발디,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륄리와 장필리프 라모 등이 있습니다. 이중 륄리의 오페라 보여 드립니다.
루이 14세의 별명은 '태양왕'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발레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발레리노였습니다. 그래서 초상화에도 발레 슈즈를 신고 있습니다. 그는 오페라 공연 시 머리에 후광을 두르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연출을 즐겨했다고 하지요. 그는 아버지 루이 13세가 왕위 계승과 주위의 권력에 의해 얼마나 고단하고 위험한 시간들을 보냈는지 보았기에 왕권 강화에 집중합니다. 수많은 귀족들의 경제 기반을 사치와 방탕에 쓰게 만들었지요. 베르사이유 궁전엔 귀족들만 출입할 수 있다는 기준 외에 또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인들은 허리가 22인치 이하여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네요. 제 허리 사이즈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ㅎㅎ
바로크의 진지했던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의 시대가 가고 18세기엔 '오페라 부파(opera buffa. 막간극)'의 시대가 옵니다. 다음번에 이어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