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오페라 4. 프랑스 오페라와 베리스모
10월의 오페라 네 번째입니다.(제가 정리가 필요해서 쓰고 있지만 샘들은 괴로운 듯 합니다.ㅠㅠ)
오늘은 절대로 골치 아프지 않게(ㅎㅎ) 손 대면 데일 듯 뜨거운 오페라를 소개하기로 합니다. ^^
"습기와 우울을 날려버리는"
"음표 한 개도 버릴 게 없다."
오페라의 대중적 흥미와 예술성을 모두 거머쥔 비제의 역작 "카르멘'에 대한 니체의 평입니다. 19세기 중반, 철학계의 프로메테우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제의 <카르멘> 공연을 보게 되지요. 길을 걷다 무심히 들어간 재즈바에서 첫 사랑을 만나듯 니체는 바로 카르멘에 빠져 듭니다. 20번을 넘게 봤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물론 입방아일 수도 있지만요.ㅎ) 어둡고 무겁고 진지했던 바그너는 이제 '안궁안물'이 됩니다. ^^
프랑스의 관능미, 이탈리아의 경쾌함, 독일의 장엄함을 독립적으로 섞어놓았다고 하니 그 인기가 짐작이 가시겠지요? 카르멘은... '숨겨놓은 나', '감춰놓고 싶은 원형질의 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카르멘의 '하바네라'부터 들어보시겠어요?
카르멘은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입니다. 메조 소프라노지요. 지난 시간 베르디가 오페라의 문법을 바꾸었다고 했지요? 그동안 소프라노가 맡았던 여주인공의 자리를 당당히 메조가 차지합니다. 그리고... 관능적이고 주체적인 여인을 탄생시키지요. 그녀는 자유로운 집시이고 화려하며 크레파스에서 가운뎃 줄을 차지하는 색채감 있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돈 호세라는 바스크 출신의 군인을 유혹합니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지면상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하지만 팜프파탈의 원조가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야'인지 '클리타임네스트라'인지는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오페라계의 팜프파탈 지존은 역시 <비제>의 '카르멘'입니다. <카르멘>은 '오페라 꼬미끄'라는 새로운 쟝르의 대표 모델입니다.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성립해 19세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간의 오페라가 이탈리아어를 썼다면 이제 자국의 언어를 쓰기 시작하고 중간에 대사가 들어갑니다. 놀랍게 변신했지요?
한 곡 더 듣겠습니다. 모두 아시는 곡입니다.
프랑스 오페라를 하나 더 소개할게요. 샤를 구노의 <파우스트>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곡을 붙인 거지요.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오로지 젊음을 주시오."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것은 향락이 아니라 '인식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구원한 건 인식이 아니라 마르그리트의 숭고한 사랑 때문이었지요.
전 합창을 좋아해 <병사들의 합창>으로 선정했습니다. 익숙하신 곡이라 충분히 음미하실 수 있을거예요.
역사는 개관을 잃지 않고 가는게 중요합니다. 지금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오페라 안내 중입니다. 이러다보니 다시... 딱딱해지는뎅!!! 우이쒸 이쯤해서 <마농>을 소개하면 좋은데 마농은 좀 느리고 지루합니다. 프랑스 예술영화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모두 생략하고 객원 투수 마냥 영화 <마농의 샘>의 OST 듣고 넘어가겠습니다. 글구 포스팅 읽으면서 순서대로 음악을 들을 수 없어요. 길~~거든요. 그러니 읽고 난 후 한 곡 씩 여유 있을 때 들어보세요.
19세기의 러시아 오페라는 전쟁과 혁명, 또는 회한과 우울을 주제로 다룹니다. 러시아 혁명이 1917년이니 그 직전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겠어요. 보로딘의 음악은 탁월하지만(전 귀가 깊지 못해 탁월한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제겐 러시아 음악이 좀 낯설어요,ㅠ) 무대 효과가 빈약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많은 오페라 중 보로딘이 작곡한 <프린스 이고르> 들어보세요.
1890년 산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초연입니다.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선율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오페라에 익숙치 않은 분들을 위해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플로베츠인들의 춤> 골랐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은 예술과 사회 전반에 걸친 일대 변혁의 시대입니다. 홉스-로크-루소로 이어지던 사상계의 지진은 '사회계약론'이라는 용암을 분출합니다. 나폴레옹은 '자유,평등,박애'라는 새로운 시대의 거푸집이었습니다. 세계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뜨겁고 강력한 도그마에 휩싸이지요. 미술은 도시화, 산업화, 세속화라는 기존 가치를 전복시킬 '추상'의 지평을 더듬기 시작합니다. 밴친님들이 아시는 피카소, 마티스 등의 지인들이(ㅎㅎ)나타납니다. 미래주의 , 구성주의, 디자인의 산실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지요.
오페라는 사실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시간을 토해 냅니다. 이탈리아에서 노동자와 농민, 어민의 삶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무대에 올려집니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입니다. 시칠리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운전하다 들으면 왠지 차를 갓 길에 세우고 담배 한 대 피워야 할 것 같은 곡입니다. 담배 연기가 폐에 고인 슬픔을 위로하는 듯 합니다. 이 곡은 <대부 3>의 마지막 주요 장면으로도 나옵니다. 40초 정도 지나면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립니다.
베리스모 오페라에서 결코 2위 자리를 내 주지 않으려는 <팔리아치>입니다.. 액자 소설처럼 오페라 극 안에 연극이 있고 오페라의 주인공과 연극의 주인공은 같은 처지, 같은 상황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강렬하고 현실과 연극의 구분이 모호해 지는 오페라입니다.
'팔리아치'는 '광대들'이라는 뜻입니다. 길어질까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자막이 있으면 내용 이해가 쉬워 자막 있는 영상으로 띄웁니다.
푸치니는 다음으로 넘겨야 겠군요.
이미 넘 길다고, 읽는 사람은 고려에 없다고 돌 날아오는 소리 (슁~~슁~) 들립니다. 헤~~
인간의 알몸은 바다와 가장 가깝다고 하지요. 양수속에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어서 일까요?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빗물이 차 오르는 우물에서 아이를 낳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증명합니다. 포유류의 숙명처럼 탯줄에서 탯줄로 이어지는 삶의 지속을 봅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분리되어 오랜 길을 걸어 온 지금, 인간의 분리 불안이 사회 혼란을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