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르쳐 준 것들

by 안노라


빠삐용이 물었다.
"내 죄명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했다.
"너의 죄명은 인생을 낭비한 죄."

빠삐용은 눈물을 흘리며 인정했다.
판사는 단호히 사망을 선고했다.


(영화 <빠삐용>의 OST, Free as the wind 입니다. 오래 된 영화라 화질이 나빠요. 하지만 옛 향취를 느낄 수 있어 이 영상으로 올립니다. 노랫말이 넘 좋지요.)


자주 들어오셨던 분들은 아셨을거예요. 제가 늦은 공부하고 있다는 걸요. 이번 주까지 00(^^) 업로딩이 있어 마지막 수정 작업하느라 좀 바빴네요. 또 다른 원고마감일도 겹쳐 마음만 볶닥볶닥 했네요. 제 블로그에 글을 쓸 때보다 이 곳에 글을 올리니 괜히 마음이 바빠져요. 기다리시게 하는 것 같아서요. 남들은 매일 글을 올린다는 데 전 일주일에 한번 정도니 속도가 엄청 느리게 느껴질 것 같아요. 하긴 제가 좀 느리기도 해요.(ㅎㅎ)

감사하다는 인사 드리려고요. 이리 새 글도 늦고, 그림이라는 한정된 얘기인데도 불구하고 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들어와 새 글이 올라왔나 보시다 안 올라왔으면 이전 글에 '좋아요' 눌러놓고 가시는 분들이 계시드라구요.) 늘 격려해 주셔서요. 오늘은 감사인사도 드리고 전에 제 블로그에 올렸던 짧은 글 붙여놓고 갑니다. 제가 수요일 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27> 들고 올게요.

날 더운데 물 많이 드시고 썬크림 꼭 바르시고 양산 쓰세요. ^^

<시간이 가르쳐 준 것들>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어수선한 머리를 흔들어 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말 그대로 無爲? ^^) 가만히 숨쉬다 보니 문득, 시간이 가르쳐 준 많은 것들 떠 오릅니다. 혹시... 공감하실런지...ㅎㅎ

하나. '아줌마'라는 말의 푸근함
언제부턴가 '아줌마'라는 말이 좋아집니다. 한동안 이 말을 들으면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며 심통을 부렸었는데 이제는 '아줌마'하고 불러줄 때의 그 단어 속에 '엄마'가 갖고 있는 푸근한 아우라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좋은 상상이 됩니다. 응원하고 품어주는 넉넉한 가슴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얼굴 가득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줌마가 뭐 해줄까?" 엄마가 그랬듯...

둘.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
자연스런 통과의례였는지 못된 습성 때문이었는지 전 지적(知的)인 것을 늘 우위에 두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생활노동을 의미없고 무가치하게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음식하면서는 라디오라도 틀어놔야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났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음식을 만들면서 온전히 몰입하는 절 봅니다. 맛을 내는 과정이 갖고 있는 순환에 감동합니다. 복날 삼계탕을 먹는 의미를 알게 되고 우리 몸이 자연의 순리에 맞춰가는 위대한 과학을 봅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하지요. 주방이 교실입니다.

셋. 머리가 나빠지는 것의 장점
대답을 해 주고서도 같은 질문이었는지 분류하지 못합니다. 이미 내가 들었던 유머를 또 다시 들으면서도 똑같이 빵~ 터집니다. 또 들어도 늘 새 것인 양 낯선 것은 기억이 정보를 들고 오지 않고 느낌만을 나르기 때문이 아닌지... 누군가 정보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굳이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늘 많은 오류 속에 살며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더 깊이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스승입니다.

넷. 지렁이나 벌레에 대한 연민
예전엔 지렁이나 작은 벌레들을 보면 그 꿈틀대는 모습에 아연해져 납량특집을 볼 때 정도의 소리로 주위의 핀잔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산책길에 길게 누워있는 지렁이를 보면 걱정부터 됩니다. 지렁이가 토양에 이로운 동물이어서가 아니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다 살기를 원한다는 단순함의 육중한 무게 때문입니다. 길을 잘못들어 생사의 기로에 선 지렁이를 모자 끝으로 밀어 슬슬 나뭇잎 밑으로 넣어줍니다. 때로는 나뭇잎 한 장이 생명을 살리는 오존층이 되기도 합니다.

다섯. 차이의 아름다움
제가 김훈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변절과 타협과 부정에 침묵하는 우리 모두를 연민의 시각으로 보아주기 때문입니다. 물레 위의 진흙반죽 처럼 이미 정해진 형상 외에 다른 모습을 갖지 못하는 물(物)에게 까지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틀을 벗어나진 못하더라도 달항아리 닮은 백자나 능수버들의 목을 가진 청자가 될 수 있다고 웅변해 주거든요. '어느 것도 빠짐없이 모두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A이면서 B일 수는 없다고 말하는 대립의 날 위에 A이면서도 B일 수 있다는 차이의 관점을 선물합니다.

어제 저녁, 호수를 산책했습니다. 바람이 맑더군요. 뜨겁던 공기를 강하고 센 바람이 밀어대서인지 산책하는 동안의 하늘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좋을 만큼요. 부족하나마(돈도 부족하고, 건강도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용모도 부족하고, 젊음도 지나가고, 그냥 '누구나' 중 하나인 '아무 개'지만)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했습니다. 나를 존중하며 또 타인을 존중합니다.

오늘은 머리를 가볍게 하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 정신보다 몸을 대접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한국의 귀여운 일러스트 '꼬닐리오'의 몇 작품 첨부합니다. 이 분 작품도 다룰 날이 오면 좋겠어요. 저작권 문제가 있어 현대화가는 싣기가 쉽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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