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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 빠진 Oct 07. 2022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빈센트 반 고흐

이상한 밤 하늘 그림


어린 시절 이모집 거실에는 이상한  하늘 그림이 걸려있었다. 이모는 이사를 가도  하늘 그림을 거실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나는  하늘 그림이 이상했다.  그린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그린 그림도 아니었다. 붓으로 그렸다기보다 물감을 캔버스 위에 직접  바른 듯해 나도 그릴  있겠다 생각했다.  방 슬램덩크 포스터가 훨씬  그려 보였다.  이모가  그림을 애지중지하는지 이해가  됐다. 고등학교 진학  미술 교과서  귀퉁이에서  하늘 그림을 발견했고  이상한 그림은 세상에 가장 유명한 빈센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1889)라는  알았다. 나의 슬램덩크 포스터가 ‘지못미  순간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1889)


서양 미술사  가장 대중적 사랑을 받는 작가를 뽑으라면 단연 빈센트  고흐다. 지구인이라면 그의 이름을 몰라도 그의 그림은  적은 있을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의 대표작이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레미의 밤하늘을 그린 작품이다. 농익은 코발트 블루의 밤하늘에 노란 달과 별들 주위로 빛이 구불구불 굽이치고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린다.  붓으로 캔버스에 바로 물감을 칠해 그림이 생동감이 넘친다. 고흐 후반기 화풍의 특징인데 풍경이나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기보다는 마음으로 거친 붓터치놔 강렬한 채로 그려냈다.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매력이 넘친다. ‘볼매라고 하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생전 그를 알아주는  동생 테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야 작품성, 흥행성을 모두 겸비한 우주 슈퍼스타급 화가지만  그때는 무명 화가에 불과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흐린 뒤에야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걸까.  해답은 그가 ‘마음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상은의 노랫말처럼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의 마음을 읽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혼의  씨앗


고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화풍을 알아야 한다.  네덜란드 작은 마을 목자의 아들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 재능은 있었지만 그의 꿈은 아버지를 따라 목자가 되는 것이었다. 미술이 가난한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이유였다.  불행하게도 어릴 적 정신질환은 목자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여전히 그림에 열정이 남아 테오의 권유에 따라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의 처음 중요 작품으로 꼽히는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은 후반기 그림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다. 농부들이 석유램프 아래서 감자를 먹는 이 작품은 어둡고 창백하다. 색채와 소재는 무겁지만 고흐가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아름다움을 그리기보다 소외된 이들을 목자의 따뜻한 마음처럼 정성스레 그리고자 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


화풍의 변화는 파리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고흐가 파리로 간 19세기 후반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보이는 대로 그려내는 인상주의, 빛을 과학적으로 표현한 신인상주의, 일본 목판화 우끼요에가 유행했다. 인상주의 전까지 유럽 미술은 르네상스로 시작된 원근법, 명암법 등으로 얼마나 자연을 똑같이 그려낼 것인가, 자연 모방이 목표였다. 인상주의는 오랜 시간 이어지던 미술 전통을 거부했다. 작가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했기에 색체가 밝아졌고 우끼요에의 영향으로 깊이감보다는 평면감을 솔직하게 들어냈는데 이는 반 고흐 화풍에 큰 밑거름이 됐다.



<탕기 염감>(1887)_ 그림 배경으로 후지산, 게이사, 매화 등을 볼  수 있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별은 빛난다


파리에서 그림은 밝아졌지만 보이는 빛만을 객관적으로 그리는 인상주의 작품에 그는 결핍을 느꼈다. 그는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싶었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다. 동생 테오와 불화가 시작됐고 그는 더 이상 마음을 둘 곳을 없었다. 그림과 달리 그의 인생은 어두워져만 갔다.

그는 파리의 삶을 정리하고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로 향했다. 그는 그곳 해를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흐린 날씨가 많은 네덜란드와 달리 아를의 해는 강렬했으며 밤하늘은 맑았다.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1888)과 <밤의 카페테라스>(1888) 등 200점이 넘는 작품을 아를에서 그렸다. 이 시기 고갱과 함께 작업을 했지만 둘 사이가 악화되어 반 고흐는 스스로 귓불을 잘라 버린다.  고흐의 정신 질환이 심해져 정신병원으로 스스로 찾아가 1년을 보내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이 시기에 그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삶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걸작을 그렸다. 병원에서 나온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로 가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강렬한 터치로 코발트블루의 하늘과 황금의 밀밭을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가 그곳에서 그려졌다. 그림이 따뜻해지고 강렬해질수록 그의 삶은 절절해져만 갔다. 결국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쏘고 짧을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37세.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

 

고흐의 삶을  알고 나서야 나는 이모를 이해하게 됐다. 삶의 벼랑 끝에서 아름다움을 피워낸 고흐를 보며 녹록지 않던 본인의 삶을 위로받았던 건 아닐까. 고흐는 진정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봤고 색을 칠해 나갔다. 비록 그의 삶이 비루했고 고통스러웠지만 진실한 마음을 진하게 덧칠한 그의 그림은 빛이 난다. 우리가 그에게 열광하는 건 그의 그림과 삶에서  우리의 삶을 보기 때문이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별이 빛나는 것처럼 삶이 서럽고 버거울지라도 진실한 마음만은 별처럼 빛난다고 고흐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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