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1년생 윤옥기

아버지가 꾼 태몽

by 남쪽열매

나는 일제가 우리 땅을 강제로 차지한 후

20년이 지났던 1931년에 충청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파평 윤 씨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15살에 해방의 기쁨에 벅차했던 소녀였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94년을 살아낸 국민이다.


30세 청년 선비인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만나기 전에 미리 나를 보았다.


(아버지의 꿈)​

어느 날, 아버지는 하늘에서 나는 큰소리에 놀라 눈을 들었다

"석만아~석만아~석만아~ 이 불을 받아라! 이 불을 받아라! 이 불을 받아라!" ​

집채 만 한 불덩이가 내 아버지를 향해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놀랐지만 본능적으로 불을 받으려고

입고 있던 한복 저고리 옷자락을 한껏 펼쳐 들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어느 순간 그 불덩이는,

그의 품 안에 쏙 안기어 있었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내가 태몽을 꾸다니!"

내 아버지는 놀랍고도 기뻤다고 했다.


(출산준비)

나의 태몽을 꾼 아버지는

"하늘이 첫딸을 주시더니 이제 아들을 주시려는구나."

하며 너무 기뻤다.

그래서 직업을 선비에서 농부로 바꾸어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집을 새로 짓고 논도 서마지기 반을 샀다.

그리고 동네의 농부 고수인 부잣집 할아버지에게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러면서 아내의 출산을 돕기 위한 볏짚 고르기 등 온갖 준비를 손수 다 하셨다.


​(출산-아들 아닌 딸)

24세 어머니가 산통 끝에 낳은 아이,

나는 기대와 다르게 딸이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

그러나, 아버지는 태몽이 심어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커갈수록 살갑고 영리한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 후 농사일도 매우 잘 되어서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져 논도 아홉 마지기로 늘어났다.

여동생이 태어난 4살 때부터는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특히, 명절에 큰집에 갈 때는

꼭 아버지 두루마기 안에 나를 쏙 넣어

안고 다니는 것으로 동네에서 유명하셨다.


내가 7살 된 해에는 둘째 여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더욱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며, 아들 노릇을 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똑똑하고 예쁘고 효심 깊은 딸을 두어 열 아들이 안 부럽겠습니다.

우리 아들 둘과 바꿉시다."

라는 말을 동네 아저씨에게서 들었다고

나에게 슬쩍 말씀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어머니보다 아버지와 얘기를 더 많이 했다.

나를 업어준 사람도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구술한 내용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